“약품비 28조, 건보 거덜 난다”···복제약 천국 한국에 약가 인하 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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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품비 28조, 건보 거덜 난다”···복제약 천국 한국에 약가 인하 시동

이뉴스투데이 2026-03-14 15:46:2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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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훈 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지난달 25일 서울 서초구 국제전자센터에서 열린 '제4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형훈 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지난달 25일 서울 서초구 국제전자센터에서 열린 '제4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건강보험 재정이 빠르게 늘어나는 약품비 부담으로 압박받으면서 정부가 복제약(제네릭) 중심의 약가 구조를 손보는 전면 개편에 나섰다. 다만 약가 인하 방식과 산업 지원 수준을 둘러싸고 제약업계와 노동계, 의료계 등 이해관계자 간 의견이 크게 엇갈리면서 정책 추진 과정에서 진통이 이어지고 있다.

14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건강보험 약품비는 최근 4년 사이 약 28조원 규모로 급증하며 재정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이에 정부는 복제약 중심의 약가 체계를 개편하고 약품비 증가 속도를 관리하기 위한 제도 개선안을 마련해 올해 하반기 시행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11일 열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소위원회에서는 제약업계, 노동계, 환자단체, 의료계 등 사실상 보건의료 전 분야 이해관계자가 참석해 약가 제도 개편안을 두고 치열한 논의를 벌였다. 회의에는 민주노총·한국노총 등 노동계를 비롯해 경총, 대한의사협회, 병원협회, 약사회, 제약바이오협회,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이 참여했다.

참석자들은 우리나라 제약 산업이 복제약 매출 의존도가 높고 약가 사후 관리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주요국보다 높은 가격 구조가 유지돼 왔다는 점에는 대체로 공감했다. 그동안 복제약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게 유지되면서 국민 약제비 부담이 커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약가 구조를 어떻게 개편할 것인지를 두고는 의견이 크게 갈렸다. 제약업계는 정부가 추진하는 강도 높은 약가 인하 정책이 산업에 미칠 충격을 우려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제약사들이 이미 매출 상당 부분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하며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급격한 약가 인하는 수익성 악화와 고용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제약업계는 약가 인하를 단기간에 적용하기보다 5년 단위로 약 5%씩 단계적으로 조정하는 등 보다 완만한 방식의 제도 개편을 요구했다. 갑작스러운 가격 인하가 영업 인력 축소나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반면 노동계와 공익위원들은 건강보험 재정 안정이 최우선 과제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 위원들은 정부 개편안에 제약사 지원 성격의 조치가 포함될 경우 재정 절감 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약가 인하를 통해 확보한 재원을 산업 지원이 아니라 국민 의료 보장성 강화에 우선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산업 육성 정책은 건강보험 재정이 아닌 별도의 정부 재정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약가 인하 방식과 관련해서는 복제약 난립을 억제하기 위한 계단식 가격 인하 기준도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정부는 복제약 등재 순서에 따라 가격을 단계적으로 낮추는 구조를 유지하되 당초 검토했던 11번째 품목이 아닌 13번째 등록 품목부터 약가를 인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복지부는 최초 신청 기업과 이후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 자료를 공유하는 ‘1+3 제도’를 고려해 13번째 품목을 기준으로 설정. 제도 간 충돌을 줄이고 시장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약가 인하에 따른 산업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보완책도 함께 마련했다. 연구개발 성과가 뛰어난 혁신형 제약기업에 대해서는 약가 인하를 장기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특례를 부여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현재 논의되는 방안은 혁신형 제약기업에는 오리지널 의약품 가격의 약 48%, 혁신형에 준하는 기업은 45%, 일반 제약사는 43% 수준으로 차등 적용하는 방식이다.

혁신형 제약기업에는 최대 5년의 약가 인하 유예기간을 부여하거나 일반 기업보다 낮은 인하율을 적용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 제도는 매출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중, 신약 개발 성과, 해외 진출 역량 등을 기준으로 보건복지부가 인증하는 제도로 2012년 도입됐다. 현재 48개 제약사가 인증받은 상태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 같은 차등 정책이 또 다른 형평성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원사 296곳 가운데 혁신형 인증 기업은 36곳에 불과해 나머지 중소 제약사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 제도 자체가 도입 약 10년 만에 개편을 앞두고 있어 정책 불확실성도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 정부는 희귀질환·중증질환 치료제 등 신약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에는 비교적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건강보험 등재에 걸리는 기간을 현재 240일에서 100일 이내로 단축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다만 신속한 보험 적용과 함께 실제 치료 효과를 사후 평가하는 관리 체계를 병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빠른 등재와 엄격한 사후 평가를 병행해 환자 접근성과 재정 건전성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번 약가 제도 개편안은 이해관계자들의 추가 의견을 반영해 오는 26일 예정된 건정심 본회의에서 최종 논의될 예정이다. 정부는 민관 협의체를 통해 제약 산업 구조 개선과 약가 정책의 연착륙 방안을 지속적으로 논의할 계획이다. 건강보험 재정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추진되는 이번 약가 개편이 국민 의료비 부담 완화와 제약 산업 혁신이라는 두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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