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전세라 기자】 올해 벚꽃은 지난해보다 조금 더 일찍 우리 곁을 찾아올 모양입니다. 평년보다 포근한 기온이 이어지며 제주는 3월 말경부터, 서울은 4월 첫 주면 흐드러진 벚꽃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길고도 길었던 겨울이 끝나고 따뜻한 봄바람이 하루빨리 불어오길 기다리며 이번 주도 어김없이 ‘무엇을 볼까’, ‘어디를 갈까’ 고민하시는 분들을 위해 엄선한 문화예술을 선보여드립니다.
영화 파리, 텍사스
천재는 태어나는 법
학창 시절 친구들과 밤새 논쟁했던 주제가 있었습니다. 음악을 들을 때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가사’인지 ‘멜로디’인지에 대한 것이었죠. 이와 비슷하게 영화에서도 ‘이야기’냐 ‘영상미 등의 연출’이냐를 두고 치열한 설전을 벌이곤 했습니다.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기는 어렵다’는 옛말처럼 ‘스토리’와 ‘연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놓치는 작품들을 종종 접하며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는데요. 그런데 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영화감독들의 감독이자 독일 현대 영화의 거장으로 불리는 빔 벤더스의 작품을 극장에서 다시 만나볼 수 있게 된 것이죠.
빔 벤더스 감독은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의 웨스 앤더슨 감독부터 <라이프 오브 파이> 의 이안 감독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이 감독의 작품을 ‘인생 영화’로 꼽으며 존경을 표하는 인물인데요. 그는 최근 영화 <퍼펙트 데이즈> 를 통해 80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섬세하고도 건재한 연출력을 증명하며 다시 한번 거장의 품격을 보여주었죠. 퍼펙트> 라이프> 그랜드>
그런 그의 마스터피스 중 하나로 손꼽히는 영화 <파리, 텍사스> 는 미국 서부를 배경으로 기억을 잃은 채 사막을 걷던 남자가 4년 만에 나타나 아들과 함께 헤어진 아내 제인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그려냈습니다. 제37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이 영화는 고독한 인간의 내면을 압도적인 미장센과 강렬한 색채로 그려낸 시각적 미학의 정수로 평가받는데요. 세계 3대 영화제인 칸, 베를린, 베니스를 석권한 거장답게 <파리, 텍사스> 는 1984년에 개봉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봐도 세련된 영상미와 감각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파리,> 파리,>
세계적인 거장의 마스터피스를 스크린에서 직접 경험할 기회, 영화 <파리, 텍사스> 는 현재 전국 일부 극장에서 상영 중입니다. 파리,>
전시 보라, 저 여자가 노래하고 춤춘다
미칠 수 밖에 없는 여자들
지난 3월 8일이 무슨 날이었는지 아시나요? 바로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해 제정된 ‘세계 여성의 날’이었는데요. 다른 분야에서도 그렇듯, 서양 미술계를 포함한 한국 미술계 역시 오랜 시간 동안 여성을 남성 작가의 시선 아래 수동적인 피사체로만 박제하며 철저히 타자화해 왔죠.
이런 수동적인 대상화가 만연했던 미학적 풍토 속에서 한국 페미니즘 미술의 대모이자 사진계의 거장으로 불리는 고(故) 박영숙 작가의 개인전 <보라, 저 여자가 노래하고 춤춘다> 가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열렸습니다. 작가는 평생에 걸쳐 여성을 관찰의 대상이 아닌 스스로 노래하고 춤추는 서사의 주체로 세우며 사진을 통해 여성의 사회적·심리적 현실을 치열하게 탐구해왔는데요. 이번 전시는 그런 작가의 40여 년 작품 인생을 총망라하는 회고전입니다. 보라,>
시인 김혜순이 작가에게 선물한 시의 시구에서 차용된 이번 전시명은 ‘여자’의 주체성을 재조명합니다. 전시에는 1999년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대표작 ‘미친년 프로젝트’를 포함해 42점의 작품이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는데요. 특히 ‘미친년 프로젝트’에는 공단 베개를 끌어안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여자, 한복 치마끈이 풀려 가슴이 열리자 웃어대는 여자, 살림과 육아의 난장 속에서 외모를 단장한 여자 등 세상이 쉽게 비난하고 규정해왔던 여성들의 모습을 전면에 내세우죠. 이를 통해 관객은 남성 중심적 관습 속에서 정신을 놓아버릴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어쩌면 지금도 어딘가에 남아있을 여성성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이외에도 1960년대 초기 흑백 사진부터 디지털로 복원된 영상 작품 <자궁의 노래> 등을 통해 작가가 던진 ‘여성’에 대한 화두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여전히 세련되고도 묵직한 울림을 줍니다. 자궁의>
남성에 가려진 ‘여성’이라는 피사체를 포착하는 것을 넘어 시대의 억압에 저항하고 그 에너지를 분출해낸 작가의 작업은 왜 그가 ‘거장’으로 불리는지를 몸소 증명합니다. 세계 여성의 날의 의미를 되새기며 시대를 앞서간 한 예술가이자 페미니스트였던 박영숙 작가의 기록을 마주하는 전시, <보라, 저 여자가 노래하고 춤춘다> 는 오는 4월 18일까지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관람할 수 있습니다. 보라,>
공연 A여고 사서의 영광과 비극
고도로 발달한 우정은 때론 사랑과 구별할 수 없다
사랑에 관한 논쟁을 펼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선택지가 있죠. 바로 우정인지 사랑인지를 선택하는 난제인데요. ‘고도로 발달한 우정은 사랑과 구별할 수 없다’고 믿는 저는 주로 우정을 선택하는 편입니다. 사회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사랑의 형태인 우정의 정점은 결국 사랑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특히 친구가 세계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학창시절의 유대감은 사랑보다 더 깊은 생의 흔적으로 남기도 하는데요. 그 시절 우리가 나눴던 우정의 에너지를 무대 위로 소환한 공연이 찾아왔습니다. 지난주 [TN 위클리 컬처]에서 소개한 작품에 이어 이번에도 공연예술창작산실에 선정돼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이번 작품은 뮤지컬 <팬레터> , <개와 고양이의 시간> 에서 최고의 호흡을 보여준 한재은 작가와 박현숙 작곡가가 다시 만나 탄생시켰습니다. 탄탄한 서사와 서정적인 넘버가 어우러져 극의 몰입감을 점차 높일 뿐만 아니라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연출을 보는 것 역시 작품을 보는 또 다른 묘미였는데요. 여기에 더해 교복을 입고 나와도 어색하지 않게 어울리는 배우들과 그들의 케미스트리를 보고 있으면 어느새 관객들도 1990년대에 함께하는 여고생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개와> 팬레터>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던 우정의 소중함과 순수했던 청춘의 에너지를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뮤지컬 은 오는 4월 26일까지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링크아트센터드림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Copyright ⓒ 투데이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