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이 전력 인프라와 친환경 소재라는 전혀 다른 두 분야에서 동시에 승부수를 던졌다. 인공지능(AI) 확산으로 전기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고,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가 빠르게 퍼지면서 전력망 안정화는 시대의 과제가 됐다. 동시에 패션·섬유 업계에서는 버려진 자원을 재활용한 소재가 새로운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효성은 이 두 흐름을 각각의 계열사로 정면 돌파하고 있다.
조현준 효성 회장 / 효성 제공
조현준 효성 회장에 따르면 지금의 전력 시장 상황은 ‘슈퍼 사이클’이다. 슈퍼 사이클이란 특정 산업이 장기간에 걸쳐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국면을 뜻한다. 조 회장은 "전 세계 전력 시장은 AI 시대 전환과 신재생에너지 확대가 맞물려 슈퍼 사이클을 맞이하고 있다"며 "효성중공업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구축하고 선제적인 차세대 전력 솔루션 개발을 통해 전력망의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효성이 이 시장에서 내놓은 핵심 카드는 'e-STATCOM'이다. 생소한 이름이지만 개념은 비교적 단순하다. 전력망은 수요와 공급이 실시간으로 정확히 맞아떨어져야 안정적으로 작동한다. 그런데 태양광이나 풍력처럼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오르내리는 에너지가 늘어나면 이 균형이 흔들리기 쉽다. STATCOM은 이런 상황에서 전력망의 전압을 빠르게 조절해 안정을 유지하는 차세대 솔루션이다. 효성중공업은 여기에 초고속으로 충전하고 방전할 수 있는 에너지 저장 기술을 결합해 성능을 한층 끌어올린 e-STATCOM 개발에 나섰다. 2027년까지 국내 최초 상용화를 목표로 잡았다.
효성중공업 창원공장에서 생산된 STATCOM. / 효성 제공
효성은 소재 분야에서도 또 다른 승부수를 던졌다. 계열사 효성티앤씨는 최근 서울패션위크에서 리사이클 섬유 브랜드 '리젠(regen)'의 제조 공정을 공개했다. 리젠은 버려진 자원을 실로 만든 친환경 섬유다. 리젠 오션은 바다에서 수거한 폐어망을 재활용해 만든 나일론 섬유이고, 리젠 폴리에스터는 다 쓴 페트병을 녹여 뽑아낸 폴리에스터 섬유다. 버려진 그물이 수영복이 되고, 버린 생수병이 운동복이 되는 셈이다.
효성티앤씨가 이번에 제조 공정을 직접 공개한 것은 단순한 홍보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최근 패션·섬유 업계에서는 친환경을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이른바 '그린워싱'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원료 수거부터 전처리, 실 뽑기까지 전 과정을 투명하게 보여줌으로써 리젠이 말뿐인 친환경이 아님을 데이터와 공정으로 증명하겠다는 것이다.
효성이 전력망 안정화와 친환경 소재라는 두 전선을 동시에 공략하는 배경에는 AI 확산과 에너지 전환이라는 두 흐름이 앞으로 수년간 산업 전반을 바꿔놓을 것이라는 전망 아래 기술 선점과 소재 경쟁력 강화를 함께 밀어붙이는 전략으로 보인다.
Copyright ⓒ 위키트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