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시행한 '석유 최고가격제'를 둘러싸고 자영 주유소 업계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중동 지역 전쟁 여파로 급등하는 유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도입된 정책이지만 획일적인 가격 통제와 정유사 중심의 손실 보전 구조가 영세 주유소의 경영 부담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정부가 고가 판매 주유소 명단 공개와 전방위 조사까지 예고하면서 업계에서는 사실상 소매가격 인하를 강제하는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13일부터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했다. 이 제도는 정유사의 도매가격 상한선을 설정하고 그에 따른 손실을 정부가 사후 보전하는 방식이다. 구체적으로 휘발유는 리터(L)당 1724원, 경유는 1713원, 등유는 1320원으로 상한 가격이 정해졌다. 정유사가 가격 통제로 입는 손실은 자체 산정 후 '최고가격 정산위원회'를 통해 분기별로 보전받게 된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1800원대 수준으로 안정되면 제도를 철회할 수 있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공급가격 인하와 함께 소매가격 관리도 강화할 방침이다. 공급가 대비 판매가 상승률이 높은 주유소 상위 30곳의 명단을 공개하고, 해당 명단에 두 차례 이상 포함되는 업소에 대해서는 전방위 조사를 실시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제도 시행일인 13일 개인 SNS를 통해 "폭리나 부당이득 취득 행위에 대해서 엄정하게 조사하고 대응하겠다"며 "제도 위반 주유소를 발견하면 지체 없이 신고해 달라"고 밝혔다.
그러나 자영 주유소 업계는 이러한 조치가 유통구조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정책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가 명시적으로 소매가격을 통제하지 않는다고 설명하지만 고가 판매 주유소 명단 공개와 집중 모니터링 자체가 사실상 가격 인하 압박으로 작용한다는 주장이다. 업계에서는 정부 정책이 가격 인하 효과를 빠르게 나타내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 부담이 대부분 영세 주유소에 전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손실 보전 구조가 정유사 중심으로 설계된 점이 문제로 지목된다. 최고가격제로 발생하는 손실은 정유사가 정부로부터 보전받지만, 실제 유통 단계에서 가격을 조정해야 하는 자영 주유소에는 별도의 지원책이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영세 주유소들은 정부 정책에 맞춰 가격을 낮추더라도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실제로 르데스크 취재 결과 서울의 한 자영 주유소는 정부 기조에 맞춰 휘발유 판매가를 리터당 1990원에서 1920원으로 인하했다. 하지만 해당 주유소는 기존 재고를 리터당 1890원에 공급받은 상태여서 카드 수수료와 운영비 등을 제외하면 사실상 남는 이익이 없다는 하소연이 나왔다. 재고가 소진되기 전까지는 가격을 더 낮추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현재 상황을 '팔아도 손해, 안 팔아도 손해'인 진퇴양난으로 표현했다. 해당 주유소 소장은 "유류 탱크에 남아 있는 물량은 1890원에 공급받은 재고라 당장 가격을 더 낮출 수 없다"며 "새로운 물량을 들여올 때는 정책에 맞춰 가격을 더 낮추겠지만 전쟁 상황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어 막막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일시적인 조치라고 설명하지만 국제 정세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일부 업계 관계자들은 개별 주유소의 입지 조건과 영업 방식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정부가 발표한 '판매가 상위 30곳 명단 공개' 방침이 지역 상권 특성과 영업 전략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서울 강남구의 한 주유소는 지역 평균인 리터당 2025원보다 400원 이상 높은 2440원에 휘발유를 판매하고 있지만 이는 법인 고객 중심 상권 특성에 맞춘 영업 전략이라는 설명이다.
이 주유소는 무료 세차 서비스, 커피 제공, 자체 마일리지 프로그램 등 다양한 부가 서비스를 결합해 차별화 전략을 운영하고 있다. 단순한 가격 경쟁 대신 서비스 중심 전략을 통해 고객을 확보해 온 것이다. 취재 당일에도 해당 주유소에는 차량 행렬이 이어지며 정상적인 영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주유소 관계자는 "전쟁 이후 가격을 인상하지 않고 지난해 12월 기준 단가를 유지하고 있다"며 "지역 특성과 고객 수요에 맞춰 형성된 가격인데 단순히 판매가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조사 대상이 된다면 사실상 영업을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정책이 결과적으로 정유사 직영 주유소의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자본력이 있는 직영 주유소는 본사 차원에서 손실을 흡수하거나 보조금을 활용할 여력이 있지만, 자영 주유소는 가격 인하 부담을 직접 떠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부의 가격 통제가 장기적으로는 유통 생태계를 왜곡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시장 개입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쟁 등 외부 변수로 유가가 급등하는 상황에서는 정부 개입이 불가피할 수 있다"면서도 "영세한 자영 주유소들이 과도한 부담을 지지 않도록 현장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정책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가격 안정도 중요하지만 소비자의 자율적 선택과 시장 경제 논리가 작동할 수 있는 기반 자체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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