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만나는 걸 안 좋아한다는 말의 이면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사람 만나는 걸 안 좋아한다는 말의 이면

나만아는상담소 2026-03-13 13:08:00 신고

금요일 저녁,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과의 모임이 잡혔다. 들뜬 마음으로 원피스를 고르다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는 그에게 묻는다. 같이 갈래? 다들 너 한 번 보고 싶대. 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이내 피곤한 얼굴로 고개를 젓는다.

  • - “난 원래 사람 만나는 거 별로 안 좋아하잖아. 시끄러운 데서 영양가 없는 얘기 떠드는 것도 딱 질색이고. 난 그냥 이렇게 너랑 둘이 있는 게 제일 좋아.”

그 다정한 거절에 서운함보다 묘한 안도감이 먼저 차오른다. 남들처럼 무의미한 인맥에 목매지 않고 우리 관계에만 온전히 집중하는 진중한 사람.

얕고 가벼운 세상 속에서 나라는 단 한 사람만 깊게 사랑할 줄 아는 낭만적인 사람. 서둘러 약속을 취소하고 그의 품으로 파고든다. 나를 선택해 준 그 특별한 안목에 보답하기 위해 기꺼이 둘만의 아늑한 세계로 문을 걸어 잠근다.

고립을 향해 걸어가는 달콤한 최면이다.

내성적이라는 착각을 걷어내면 보이는 민낯

내현성 나르시시스트가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사람 만나는 걸 안 좋아한다’는 말은 순수한 내향성의 고백이 아니다. 속을 뒤집어보면 뻣뻣하게 굳어있는 거만한 우월감이 똬리를 틀고 있다.

이들은 타인과 동등한 위치에서 평등하게 교류하는 법을 모른다. 누군가 자신보다 잘나 보이면 견딜 수 없는 열등감에 시달리고, 만만해 보이면 속으로 한없이 무시한다.

건강한 관계를 맺을 능력이 없으니 아예 판을 엎어버리고 ‘내가 안 만나는 거다’라고 정신 승리를 하는 셈이다.

이들은 자신의 좁은 인간관계를 고상한 취향으로 둔갑시킨다. 다른 사람들은 다 가볍고 세속적이라 섞이기 싫다는 거다.

  • - “내 주변엔 다 이기적인 인간들뿐이야. 진심으로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은 세상에 너 하나밖에 없어.”

가슴이 벅차오르는 고백처럼 들린다. 숨은 뜻은 서늘하다. ‘내 입맛에 맞게 엎드려 비위를 맞추는 사람은 너 하나뿐이니, 앞으로도 영원히 내 곁에서 나를 떠받들어라’라는 음침한 선언이다.

타인을 깎아내려 자신을 높이는 얄팍한 수법에 완벽하게 속아 넘어간 거다. 까다롭고 고고한 그의 세계에 유일하게 입장권을 얻은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는 우월감에 취해버린다.

서서히 닫히는 방문과 탁해지는 공기

둘만의 세계는 처음엔 아늑한 오두막 같다. 바깥세상의 거친 바람을 막아주는 따뜻한 방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하게 숨이 막혀온다. 그는 당신이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꼴을 절대 보지 못한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러 가겠다고 하면 대놓고 화를 내지 않는다. 대신 가장 불쌍한 얼굴을 장착하고 교묘하게 발목을 잡는다.

  • - “재밌게 놀다 와. 난 그냥 집에서 혼자 대충 밥 챙겨 먹고 쉴게. 내 신경 쓰지 마.”

배려가 아니다. ‘내가 이렇게 외롭고 불쌍하게 혼자 남겨지는데 네가 감히 나가서 웃고 떠들 수 있는지 두고 보겠다’는 족쇄다.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무거운 돌덩이가 가슴을 짓누른다.

친구들과 마주 앉아 밥을 먹으면서도 온통 혼자 있을 그의 생각뿐이다. 혹시 끼니는 굶고 있지 않을까,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건 아닐까.

서둘러 약속을 앞당겨 집으로 돌아온다. 소파에 잔뜩 웅크리고 있던 그가 쓸쓸하게 웃어 보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다음부터는 아예 사적인 약속을 잡지 않게 된다.

나를 필요로 하는 이 가엾은 사람을 두고 어딜 가겠는가. 스스로 문을 닫고 창문에 못질을 하며 바깥세상과의 연결고리를 하나둘 끊어낸다.

밀실에서 혼자 짊어진 세계

어느새 당신의 인간관계는 앙상하게 말라버렸다. 주말엔 오직 그와 시간을 보내고, 퇴근 후에도 그에게로 직행한다. 방 안의 공기는 탁해질 대로 탁해졌는데 환기할 틈이 없다.

그의 인간관계가 좁다는 건, 그가 받아야 할 모든 사회적, 정서적 욕구를 당신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다. 친구에게 털어놓을 가벼운 짜증부터 가족에게 받을 위로, 동료와 나눌 법한 고민까지 모조리 어깨 위로 쏟아진다.

당신은 연인이자 베스트 프렌드, 부모이자 심리 상담가 역할을 동시에 소화하느라 뼈가 삭는다.

  • - “넌 내 전부인데, 어떻게 내 마음을 이렇게 몰라줘? 넌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아.”

조금이라도 지친 기색을 보이거나 감정을 완벽하게 받아내지 못할 때 날아오는 비수다. 당신이 좁은 세계를 지탱하느라 겪는 고통은 안중에도 없다. ‘네가 감히 내 기분을 완벽하게 책임지지 않았다’며 원망을 퍼붓는다.

세상과 단절된 방에서 그의 거대한 우울과 불만을 홀로 처리하는 감정의 소각장이 되어버렸다. 창문이 꽉 닫힌 방안에 갇혀, 그가 뿜어내는 퀴퀴한 한숨을 폐로 걸러내며 서서히 질식해 가는 중이다.

문고리를 돌려 밖으로 나설 시간

사람 만나는 걸 안 좋아한다는 핑계로 당신의 세상마저 축소시키는 연애는 정상이 아니다. 사랑은 서로의 세계를 넓혀주는 맑은 창문이지, 옴짝달싹 못 하게 가두는 숨 막히는 감옥이 아니다.

그는 당신을 깊이 사랑해서 둘만 있고 싶은 게 아니다. 바깥세상의 사람들과 섞이면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고 텅 빈 인간인지 들통날까 봐 두려워 숨은 것뿐이다. 당신이라는 만만한 벽 뒤에 숨어, 당신의 맑은 일상을 빨아먹으며 연명하고 있다.

그가 외로워 보인다는 이유로 소중한 인연들을 가지치기할 이유가 없다. 당신은 한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짊어질 수 있는 구원자가 아니다.

탁해진 공기를 마시며 좁은 방에서 같이 말라갈 필요 없다. 억지로 환기하려 애쓸 필요도 없다. 밀실의 문고리를 굳게 쥐고 과감하게 돌리면 된다.

밖으로 나오면 신선하고 차가운 공기가 폐를 가득 채운다.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넓고 눈부신 원래의 세상으로 걸어 나오면 그만이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나만 아는 상담소 프리미엄 콘텐츠 에서 더 깊이 있는 심리학적 조언을 확인하세요.

또한, 나만 아는 상담소 네이버 블로그 에서도 다양한 주제의 심리 칼럼을 만나보세요.




나는 왜 함께 있어도 외로울까 책 표지

추천 도서

나는 왜 함께 있어도 외로울까

관계에 휘둘리는 당신에게

사랑이라는 착각에서 허우적거리는 이들을 위한 책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에서 벗어나는 법

황규진 소장 저 | 북스고

The post 사람 만나는 걸 안 좋아한다는 말의 이면 appeared first on 나만 아는 상담소.

Copyright ⓒ 나만아는상담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