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 터지는 불량한 연애가 재미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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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 터지는 불량한 연애가 재미있는 이유

코스모폴리탄 2026-03-13 00: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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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느슨해진 ‘연프’ 시장에 새롭게 불을 지핀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넷플릭스 일본 연애 예능 〈불량 연애〉다. 이 프로그램이 기존 연프와 달랐던 지점은 출연진의 화려한 이력 때문이었다. 소위 말해 거친 인생을 살아온 ‘불량한’ 남녀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했으니까. 이들의 과거는 화려했다. 전직 야쿠자, 폭주족 리더, 현직 호스트까지. 그러나 흥미로운 건, 이들의 연애 방식만큼은 예상보다 덜 ‘불량’했다는 점이다. 서툴지만 진심을 담아 마음을 전하고, 감정 앞에서 솔직해지는 모습은 오히려 순수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반면, 진짜 ‘불량한 연애’는 최근 시즌 5로 화려하게 돌아온 〈솔로지옥〉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번 시즌 화제의 중심에는 단연 매력적인 여성 출연자, 최미나수가 있다. 세련된 분위기와 수려한 외모, 거침없는 솔직함으로 무장한 그녀는 등장과 동시에 시선을 사로잡았지만, 회차가 거듭될수록 그녀의 이미지는 점차 ‘빌런’에 가까워졌다. 여러 남성 출연자에게 동시에 관심을 보이고, 감정의 방향을 제멋대로 바꾸는 그녀의 모습은 패널들뿐 아니라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뚜렷한 호불호를 불러일으켰다. 결국 그녀는 ‘역대급 캐릭터’라는 수식어와 함께 이번 시즌 가장 뜨거운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리저리 갈대처럼 흔들리는 그녀의 마음을 정말 탓할 수 있을까? 하나같이 잘생기고 매력적인 남자들이 동시에 호감을 보이는데, 마음이 요동치는 건 어쩌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사실 그녀의 행동이 불량하게 비친 이유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예능이라는 특성 장르의 속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일상적인 상황에서 여성이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호감의 대상을 바꾸는 일은 결코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문제는 그 모든 과정이 공개되고, 편집되고, 끊임없이 모니터링과 평가의 대상이 되는 리얼리티 쇼 안에서 벌어졌다는 점이다. 자극적일수록 주목받고, 그래야만 콘텐츠가 소비되는 구조 속에서 그녀의 선택은 과장되고 단순화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최미나수는 불량한 연애의 가해자가 아니라, 그 서사를 필요로 했던 예능 시스템의 피해자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질문은 여기서 다시 개인의 영역으로 돌아온다. 과연 그녀의 태도는 정말 그렇게 낯설고 이질적인 것이었을까?


좀 더 솔직해져보자. 우리 모두 한 번쯤은 ‘불량한’ 쪽이었거나, 불량한 사람을 만났거나, 혹은 그 두가지를 동시에 경험해본 적이 있다. 어떤 날은 고고한 척 답장을 일부러 늦추는 사람이었고, 또 어떤 날은 종일 휴대폰만 들여다보며 상대의 반응을 기다리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솔로지옥 시즌5〉의 최미나수를 보며 “왜 저래?”라고 말했던 사람들 역시 가만히 자신의 과거를 되짚어보면 비슷한 순간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상대에게 마음이 있다고 믿었지만, 더 매력적인 사람이 등장하자 흔들렸던 경험. 혹은 진심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관계가 깊어질 기미를 보이자 부담스러워 한 발 물러섰던 순간들. 우리는 그런 마음을 종종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아”라는 말로 포장하지만, 결국 그 안에는 갈팡질팡 이리 재고 저리 재는 감정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사실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본래 사람의 마음이란 종잡을 수 없고, 변덕스러운 것이니까. 문제는 그 불확실함을 어떻게 다루느냐다. 솔직하게 털어놓을 것인가, 애매한 상태로 끌고 갈 것인가. 정리할 것인가, 아니면 계속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갈 것인가.


대학생 시절, 2명의 남자에게 동시에 고백받은 적이 있었다. 착하고 다정한 같은 과 동기 A와 유머러스하고 매력적인 동아리 선배 B였다. 둘의 매력은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A는 조용히 도서관 자리를 맡아주며 매일같이 커피를 바치는 타입이었다면, B는 새벽 2시에 뜬금없이 “나와, 지금 라면 먹자!”라고 불러내는 타입이었다. 기껏해야 20대 초반이었던 나는 두 남자의 애정 공세에 모호한 태도를 고수할 수밖에 없었다. 도무지 둘 중 하나를 고를 수 없었으니까. A와 제법 진지한 대화를 나누다가도, 이내 지루해지면 어김없이 B가 생각났다. 머리로는 ‘더는 안 돼!’라고 외쳤지만, 쉽게 마음이 어디 하나로 기울지 않았다. 매일같이 A와 카톡을 주고받고, 늦은 밤엔 B와 긴 통화를 했다. 나는 두 사람 사이를 교묘하게 줄타기하며 일말의 죄책감을 즐겼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둘 다 놓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 시절의 나는 A의 안정감과 B의 자극을 동시에 원했다. 하지만 이런 관계가 오래갈 리 없었다. 어느 금요일 밤, 새벽까지 B와 이자카야에서 술을 마시는 걸 A의 친구가 목격했다. 그리고 다음 날, A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혹시 어젯밤에 뭐 했어?” 당황한 나는 친구들과 있었다고 둘러댔지만, 그의 싸늘한 말투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는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내 어장 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고, 그들의 추궁 앞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조차 변명처럼 들릴 것 같았으니까. 그때 깨달았다. 선택하지 않은 것도 하나의 선택이며, 어쩌면 가장 비겁한 선택일 수 있다는 걸. 내가 결정을 미루는 동안 결과적으로 두 사람 모두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결국 나는 두 사람을 모두 잃었고, 무엇보다 내 이기적인 태도에 스스로 가장 크게 실망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나는 그때의 나를 떠올리게 하는 남자를 만났다.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업계 동료 C였다. 그는 회의 때마다 내 의견에 귀 기울여주었고, 새벽까지 야근할 땐 무심히 다가와 초콜릿이나 젤리 같은 걸 건네곤 했다. 가끔 의미심장한 농담을 던지다가도, 막상 진지하게 물으면 “그냥 장난인데?”라며 웃어넘겼다. 알다가도 모를 듯한 C의 매력에 나는 점차 빠져들었다. 그가 보내는 플러팅이 진심인지 장난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불확실함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그와의 관계는 거의 연애 같았지만 정확히 말해 연애는 아니었다. 확실한 시그널이 없었으니까. 단둘이 술을 마시기도 했고, 어느 주말엔 함께 심야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지만, 스킨십은 일절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C의 스튜디오에 갔다가 그가 다른 여자 동료와 스스럼없이 대화하는 걸 봤다. 서로 농담을 주고받고, 어깨를 가볍게 치며 웃는 모습은 그가 내게 하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앞에선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나도 모르게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뭐지? 내게만 특별한 게 아니었나? 이 모든 게 그저 내 착각이었던 걸까?’ 며칠 후, 그에게 술김에 물었다. “우리 대체 뭐야?”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좋은 동료?” 그때 깨달았다. 그는 나를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한 적 없다는 걸. 결국 그와의 관계도 서서히 시들어갔다. 그가 먼저 멀어진 건지, 내가 지친 건지도 모호했다. 어느 순간, 우리의 관계는 그냥 페이드아웃됐다. 이 일을 겪은 후 나는 10여 년 전, A와 B에게 내가 했던 짓이 바로 이런 종류의 일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선택하지 않으면서 관계를 유지하고, 확답은 주지 않으면서 상대의 기대는 놓아주지 않는 것. 나는 C를 통해 그때 A와 B가 느꼈을 혼란과 상처를 고스란히 경험한 셈이었다.


이렇듯 불량한 연애의 끝은 대부분 좋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그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져든다. 왜냐하면 불량한 연애는 미치도록 매력적이니까! 예측 가능한 관계보다 훨씬 드라마틱하고, 안정적인 관계보다 훨씬 흥미진진하다. 답장이 언제 올지 모르는 그 설렘과 떨림, 만날지 말지 저울질하는 그 긴장감은 밤잠까지 설치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패턴에 점점 익숙해질수록 문제가 시작된다. 건강한 관계의 상대를 만났을 때 오히려 밋밋하고 재미없는 관계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한 번 폭풍 같은 관계에 중독되고 나면, 고요한 호수처럼 잔잔한 연애는 그저 심심하고 지루해 보인다. 관계의 일관성과 안정성을 ‘노잼’으로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다시 불량한 연애의 늪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그러나 불량한 연애에는 언제나 대가가 따른다. 예능 속 최미나수처럼 자유롭고 솔직한 감정 표현은 자신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분명 상처가 된다. 내게는 가벼운 호기심이었지만 상대는 진심이었을 수도 있고, 내겐 여러 선택지 중 하나였던 관계가 상대에게는 전부였을 수도 있다. 우리는 종종 “난 그저 솔직했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솔직함과 무례함은 한 끗 차이다. 내 감정에 솔직하면서도 상대의 감정을 고려하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확신이 없다면 그 사실을 명확히 말할 수도 있다. 애매하게 관계를 끌고 가며 기대를 심어주는 것과 불확실함을 솔직하게 전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연애를 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연애를 하며 실수도 하고, 후회도 하고, 때로는 누군가에게 씻을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한다. 이건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통과하는 관문이다. 중요한 건, 그 과정을 어떻게 대하느냐다. 불량한 연애를 경험했다는 사실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같은 패턴을 반복하는 것이다. 나의 이기적이었던 마음을 인정하고, 그랬던 자신을 직시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불량한 연애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 아닐까? 드라마나 예능 속 도파민이 터지는 관계가 재미있다고 해서 평생 롤러코스터만 타는 연애를 하며 살 수는 없다. 자극적인 관계는 짜릿함을 주지만, 진정한 사랑은 깊은 안정감 속에서 서서히 자라난다.


부드러운 바람이 일렁이는 3월, 새로운 시작의 계절이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불량한 연애를 정리하고, 다음 챕터로 넘어가기 가장 좋은 타이밍일지도 모른다. 너무 심각해질 필요는 없다. 잠시 한 발 물러서서 자신을 돌아보고, 좀 더 성숙해진 마음으로 다음 사랑을 맞이할 준비를 해보자. 자, 이제 착한 연애로 넘어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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