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전효재 기자】 SK온이 ‘안전’에 중점을 둔 배터리로 차세대 에너지 시대를 연다. 배터리 기술 경쟁의 기준을 ‘에너지 밀도’에서 소비자 신뢰를 반영한 ‘신뢰 밀도’로 확장하며 안전 중심 전략을 내세웠다. 배터리가 전기차를 비롯해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에 탑재되며 일상에 스며드는 만큼 배터리 산업의 핵심 경쟁력도 ‘소비자의 신뢰’에서 나온다는 판단이다.
SK온은 1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진행 중인 ‘인터배터리 2026(InterBattery 2026)’에 참가해 전기차를 넘어 에너지저장장치(ESS)와 로봇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는 배터리 포트폴리오와 차세대 기술을 선보였다.
SK온은 ESS 안전 기술을 전면 배치했다. 업계 최초로 전기화학 임피던스분광법(EIS) 기반 예방·진단 시스템을 접목한 컨테이너형 ESS DC 블록을 선보였다. EIS는 교류 신호로 배터리 내부 저항과 반응 특성을 분석해 상태를 진단하는 기술이다. 기존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이 놓치기 쉬운 미세 결함과 열화 단계까지 조기 예측이 가능하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SK온은 2023년부터 관련 연구를 진행하며 특허도 출원했다. 이상 징후가 감지된 모듈만 쉽게 교체할 수 있도록 설계해 유지 편의성과 경제성도 높였다. 이는 ‘신뢰 밀도’를 추구하는 SK온의 기술 개발 전략과 맞닿아 있다.
SK온 박기수 미래기술원장(최고기술책임자·CTO)은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의 돌파구로 ‘안전’을 꼽았다. 미래의 기술 경쟁력을 강조하기보다 당장 시장에서 소비자의 신뢰를 얻어야 배터리의 적용 분야를 본격적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박 원장은 배터리 산업이 정체된 것처럼 보여도 구조적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는 시장이라고 진단했다. 전기차 시장은 초기 구매 비용 부담과 충전 인프라, 접근성 문제 등으로 조정을 겪고 있지만, 배터리 수요는 전기차를 넘어 상용차·선박·데이터센터·휴머노이드 로봇 등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박 원장은 “배터리가 우리 생활과 밀접해졌기 때문에 내 생활에 영향을 미쳐선 안 된다”며 “주요 배터리 기업이 성능 측면에서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안전’도 배제할 수 없는 하나의 축”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기조에 발맞춰 SK온은 ‘3P 제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화재 위험을 사전에 줄이는 예방(Prevent), 이상 상황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보호(Protect),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예측(Predict) 등 세 가지 축으로 배터리 안전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예방’ 단계는 셀 자체의 발화 가능성을 줄이는 설계·소재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양극과 음극 소재 반응성을 낮추는 코팅 기술을 적용하고, 고온에서도 수축이 발생하지 않는 내열 분리막 적용을 추진 중이다. 난연성 전해액 등 화재 위험을 낮추는 소재 기술도 연구한다. 박 원장은 “에너지를 저장하는 장치 특성상 화재를 완전히 ‘제로’로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설계와 소재 기술로 위험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보호’ 단계는 디렉셔널 벤팅(Directional Venting), 냉각 기술, 각형 ‘온벤트 셀(On-vent Cell)’이 대표적이다. 디렉셔널 벤팅은 파우치형 배터리의 약점을 극복한 기술이다. 파우치는 화염이 아무 곳에서나 나온다는 문제점이 있었지만, 특정 방향으로만 가스를 배출하게 하는 신물질을 개발해 팩에 적용했다. 박 원장은 “현재 포드 등 글로벌 OEM에 제공하고 있다”고 성과를 밝혔다.
냉각 기술은 전시 부스 중앙에 배치됐다. SK온은 대면적 냉각(LSC) 셀투팩(CTP), 액침냉각 팩 등을 통합 개발 중이다. CTP는 모듈을 생략하고 셀을 팩에 직접 연결해 공정과 부품을 단순화하는 방식이다. 에너지 밀도와 원가 경쟁력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 LSC는 셀 사이 접촉면에 냉각 플레이트를 배치해 냉각 성능을 높이는 기술이다.
액침냉각은 전기가 통하지 않는 특수 절연 냉각유에 배터리 셀을 직접 담가 열을 식히는 차세대 열관리 기술이다. 기존 배터리 냉각 시스템은 하부에만 냉각판을 배치해 온도 차 문제가 발생했지만 액침냉각과 LSC는 이를 극복할 수 있다.
SK온은 모듈 기반과 CTP 방식 액침냉각을 병행 연구하고 있다. 박 원장은 “액체에 담그는 액침냉각과 면 방향 냉각(LSC)을 개발 중”이라며 “안전을 넘어 비용까지 감안한 디자인을 완성해 올해 안에 모든 개발을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폼팩터의 경계를 허무는 통합 각형 팩과 온벤트 각형 셀도 핵심 기술이다. 통합 각형 팩은 알루미늄 캔에 파우치 셀을 넣고 밀봉한 구조다. 디자인을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파우치의 장점과 구조적 안전성이 좋은 각형의 장점을 결합했다. 온벤트 각형 셀은 통합형 배터리 개발을 위한 기반 기술로 풀이된다. 배터리 내부에서 열폭주 발생 시 가스를 효율적으로 배치해 화재 확산을 방지하는 기술이다.
마지막 단계인 ‘예측’ 전략의 핵심은 AI 기반 설계 시스템이다. SK온은 시험 데이터와 양산 데이터, 현장 운영 데이터 등을 통합해 ‘AI 디지털 트윈’을 구축했다. 이로써 AI 기반 설계를 적용해 설계 단계에서부터 가격·성능·안전 수준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
박 원장은 “배터리는 결국 소비자의 신뢰를 얻어야 성장하는 산업”이라며 “개발자가 직접 사용해도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배터리를 만드는 것이 SK온의 기술 철학”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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