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대한민국 R&B의 결을 바꿔 놓았던 한 목소리가 있다. 무대 위에서 감정을 밀어 올리듯 노래하던 그 가수의 이름은 故 휘성이다. 2026년 3월 10일, 휘성이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또렷하게 남는 것은 한 사람의 부재가 아니라, 그가 남긴 음악의 기억일지도 모른다.
2000년대 초반 한국 대중음악계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발라드와 댄스 음악이 중심을 이루던 시기, R&B라는 장르를 대중의 감정 속으로 깊이 스며들게 만든 목소리가 등장했다. 2002년 발매된 데뷔 앨범 ‘Like A Movie’는 그 변화의 시작점이었다. 그 안에 담긴 노래 ‘안되나요’는 한 시대의 감정 풍경을 바꾼 작품으로 기억된다.
‘안되나요’를 처음 들었던 순간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숨을 참고 끌어올리듯 이어지는 창법, 감정을 한 번에 폭발시키는 후렴은 당시 가요계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방식이었다. 노래를 부른다기보다 마음을 토해내는 듯한 느낌이었고,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 목소리에 깊이 공감했다.
이후 발표된 ‘일년이면’, ‘Insomnia’, ‘결혼까지 생각했어’, ‘가슴 시린 이야기’ 같은 곡들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많은 이들의 플레이리스트에 남아 있다. 설렘보다 이별의 감정을 더 깊게 건드리는 노래들이었고, 그래서 그 음악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오래 머물렀다.
가수로서 휘성의 또 다른 면모는 창작자였다. 휘성은 자신의 노래뿐 아니라 다양한 가수들의 음악 작업에도 참여하며 감정선을 섬세하게 풀어내는 가사를 남겼다. 사랑과 이별의 감정을 현실적인 언어로 풀어낸 가사는 많은 공감을 얻었다.
당시 한국 R&B는 대중음악의 중심 장르라기보다는 실험적인 영역에 가까웠다. 그러나 휘성의 등장 이후 분위기는 달라졌다. R&B 창법과 감성이 한국어 가사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휘성이 보여줬고, 이후 많은 보컬리스트들이 그 길을 따라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무대 위에서 휘성은 늘 강렬한 에너지를 보여줬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끊임없는 싸움도 있었다. 성대결절과 같은 신체적 고통, 개인적인 논란과 여러 사건 속에서도 휘성은 공연 무대를 포기하지 않았다.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순간만큼은 음악에 온전히 몰입한 모습이었다.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은 그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노래가 끝난 뒤 짧은 침묵 속에서 휘성이 숨을 고르며 고개를 숙이는 장면은 무대의 여운을 더 깊게 만들었다. 그 순간 공연장은 가수와 관객의 경계를 넘어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휘성의 음악은 누군가에게 특별한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로 남았다. 어떤 이에게는 첫사랑의 기억이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힘든 시절을 버티게 해준 위로였다. 음악이 사람의 시간을 담아내는 예술이라는 사실을 휘성의 노래가 보여줬다.
세월이 흐르며 음악 시장의 풍경도 크게 달라졌다. 새로운 장르가 등장하고 새로운 스타들이 무대를 채웠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 플레이리스트에서 휘성의 노래가 다시 흘러나올 때가 있다. 그 노래는 자연스럽게 한 시절의 공기와 감정을 떠올리게 만든다.
2025년 3월 10일, 휘성의 갑작스러운 부고가 전해졌을 때 많은 이들이 깊은 충격을 받았다. 목소리는 여전히 음악 속에서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노래 속에서 휘성은 여전히 감정을 담아 노래하고 있었고, 그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더욱 큰 여운을 남겼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휘성의 노래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흘러나온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다. 음악이 끝나도 목소리는 기억 속에서 계속 이어진다.
어쩌면 아티스트라는 존재는 시간이 지나도 다른 방식으로 우리 곁에 남는 사람들인지 모른다. 누군가 이어폰을 꽂고 휘성의 노래를 다시 듣는 순간, 그 목소리는 또 한 번 현재의 시간이 된다.
그래서 휘성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한국 대중음악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대한민국 R&B의 황금기를 지나온 목소리,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청춘에 함께했던 노래. 그 음악은 지금도 조용히 시간을 건너 우리 곁에서 흐르고 있다.
※새로운 문화, 그리고 사람. ‘뉴컬에세이’는 예술의 순간을 감각적으로 포착하고, 그 여운을 글로 옮기는 코너입니다. 공연, 전시, 음악, 영화 등 다양한 문화 현상속에서 ‘지금 이 시대의 감성’을 발견합니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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