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 만에 꺼내든 석유 최고가격제...공급 축소 등 우려도(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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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 만에 꺼내든 석유 최고가격제...공급 축소 등 우려도(종합)

이데일리 2026-03-12 19:15:4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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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정두리 강신우 김형욱 기자] 정부가 중동발 유가 급등에 대응해 29년 만에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한다. 정부가 정유사 공급가격을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방식인 만큼 공급 축소와 재정 부담 등 부작용 우려도 뒤따른다. 또 공급가만 규제하는 구조여서 실제 주유소에서 체감할 만한 가격 안정 효과가 나타날지도 미지수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12일 구윤철 경제부총리 주재로 열린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대책반(TF) 회의에서 이번주 중 정유사의 석유제품 공급 가격을 일정 한도로 제한한다고 밝혔다. 적용 가격은 시행 전 확정 예정이다.

중동 전쟁에 따른 국제 유가가 급등으로 국내 석유가격 변동성이 커진 데 따른 조치다.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정부의 첫 석유 가격 직접 통제다.

정부는 이날부터 2주 단위로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석유제품 3종(보통휘발유·경유·등유) 가격에 상한을 설정하게 된다. 13일 적용되는 첫 상한은 중동 사태가 발발하기 직전인 2월 4주차 평균 공급가격에 국제 석유제품가격 변동률을 곱하고 세액을 더해 정한다.

전국-평균-석유제품-가격-추이.(그래픽=김정훈 기자)


◇정부 가격통제 따른 시장 왜곡 우려

그러나 정부의 석유 가격통제가 시장을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가장 큰 우려는 정유사의 국내 공급 축소 가능성이다. 정유사는 민간 기업인 만큼 국내 판매에서 손실을 보게 되면 해외 수출 등 다른 방안을 찾게 된다. 정부도 이를 고려해 수출 물량도 지난해 수준에서 제한하는 장치를 마련했지만, 공급과 수출을 동시에 규제하는 ‘이중 규제’로 시장 경직성이 커질 수 있다. 실제 한국이 1997년 유가 자유화를 도입한 것도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면서 시장 내 공급과 소비 조정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가격 상한이 정해지고 수출이 막히면 정유사는 생산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가 된다”며 “정유사가 정유설비를 정비하는 식으로 생산량을 줄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중동 전쟁 여파로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주유소 기름값이 소폭 하락한 가운데 12일 서울 한 주유소에서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표시돼 있다. 이날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오전 9시 기준 전국 휘발유 평균 가격은 리터당 1,901.27원으로 전날보다 3원 내렸다. 아울러 정부는 조만간 석유제품 상한을 설정하는 최고가격제도 본격 실시할 전망이다.


이는 소비 억제 신호를 약화하는 결과로도 이어질 수 있다. 국제 유가가 오르면 국가 전체의 에너지 비용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소비 절감이 필요하지만, 가격을 인위적으로 낮추고 이를 정부 재정으로 보전하면 소비 조정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

재정 부담 확대 우려도 뒤따른다. 정부는 정유사 공급가를 억제하는 대신 손실분을 분기 단위로 측정해 그 손실을 보전해줄 계획인데, 정부도 그 비용은 아직 추산 중이다. 업계에서는 국제 유가 상승세가 지속될 경우 정유사 손실 보전 비용이 월 1조원을 넘어설 수 있다는 추정도 나온다.

정부가 과거 유가 급등기 때 가격 통제 대신 유류세 인하 같은 세제 정책을 우선 활용해 온 것도 이 같은 부작용 때문이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에도 정부는 유류세 인하를 통해 유가 상승 충격을 완화했다. 정부는 이번에도 세제 인하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당장은 최고가격제 카드를 먼저 꺼내든 상태다.

◇“소비자가 모니터링하고 매점매석 단속”

이번 조치가 실제 소비자가 체감할 만큼 가격을 낮출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최고가격제가 정유사 공급가격에만 적용되고 주유소 판매가격은 직접 규제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결국 주유소 가격표를 통해 결과를 체감할 수밖에 없다.

업계는 정부가 정유사의 현 휘발유 공급가는 리터(ℓ)당 약 1830원에서 50원 가량 낮출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게 현실화하면 휘발유 소비자가격도 이론상 50원 낮아지게 된다. 12일 기준 1900원이던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이 1850원까지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소비자가격이 공급가 만큼 내린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정부는 주유소 가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매점매석 행위도 단속하며 실효를 높인다는 계획이지만, 구체적인 가격 안정 효과는 제시하지 못했다.

업계는 일단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분위기다. 안국헌 대한석유협회 실장은 “정유사들도 내용을 검토하는 단계”라며 “실제 시행해봐야 그 영향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충청 지역의 한 자영주유소 사업주는 “공급가 상한이 설정되면 가격 수준을 예측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면서도 “안 그래도 마진 경쟁이 극심한 상황에서 유가 급변에 따른 재고 관리 리스크가 커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미 석유 최고가격제가 시행되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단기적인 한시 조치여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제언이다. 유 교수는 “공급 안정성이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는 만큼 어디까지나 위기 상황에서 짧고 굵게 사용하는 조치여야 한다”며 “정부가 국민에게 현 상황을 솔직히 설명하고 유류세 인하나 수입선 다변화 같은 정책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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