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칼럼] `석유 최고가격제`, 3년 전 EU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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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칼럼] `석유 최고가격제`, 3년 전 EU의 경험

이데일리 2026-03-12 18:09:0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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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정훈 논설실장] 지난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유럽연합(EU)으로 수입되는 러시아산(産) 원유가 줄어들자 유럽은 천연가스 공급 부족으로 인해 가파른 가스값 상승에 시달렸다. EU 의회와 주요 회원국 정치권에선 가스값과 물가 급등에 대응할 조치를 내놓으라 압박했고, 결국 EU는 천연가스 가격상한제를 2023년부터 1년 간 한시적으로 도입했다. 당시 독일과 네덜란드, 유럽중앙은행(ECB)까지 나서 반대했지만, 이 가스 가격상한제는 한 차례 연장한 뒤 작년 1월이 돼서야 종료됐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재정경제기획위원회에서 의원들의 현안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스1)


흥미로운 건, 2년이란 시행 기간 동안 ‘네덜란드 TTF(가스거래허브)의 가스 선물 가격이 3영업일 연속 180유로/MWh를 넘는 동시에 글로벌 액화천연가스(LNG) 기준가격보다 35유로 이상 높을 때’ 발동되도록 한 이 상한제는 실제 단 한 번도 발동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EU집행위원회 보고서대로라면 상한제가 가격 급등을 막았다기보단 발동 요건까지 갈 만큼 가격이 다시 오르지 않았다. 우려와 달리 겨울 날씨가 이례적으로 따뜻했고 EU 각국 국민들이 에너지 절약에 적극 나선데다 가스 수입원 다변화도 성공적이었던 덕이었다.

사후에 전문가들은 당시 EU가 가격상한제라는 극단적 조치까지 꺼내 들었던 건 가격통제 효과를 믿었다기보단 에너지 쇼크에 ‘EU가 결코 손을 놓고 있지 않았다’는 신호를 주면서도 반대론자들의 주장까지 반영한 정치적 타협의 결과였다고 봤다. 즉, ‘개입은 하되 시장은 망가뜨리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 EU가 가격상한제를 매우 보수적으로 설계했다는 얘기다. 실제 EU집행위도 제도 도입 당시 “과도한 가격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시장에 던지면서도 시장참가자들에게 예측 가능성을 주겠다”며 정책 목표를 적시했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에너지 시설 피해와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해 국제유가가 뛰고, 이를 틈타 국내 석유류 가격이 급등하자 우리 정부도 1997년 유가 자유화 조치 이후 30년 만에 석유 최고가격제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비상한 각오로 선제 대응책을 마련하라”며 석유 최고가격제 도입을 지시했고, 정부는 다음주 시행을 서두르고 있다.

종전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가운데 석유류 가격 상승까지 겹쳐 일반 국민들은 물론 생계형 운전자와 하우스 농가 등 특정계층의 고통이 커진데 따른 고육지책이라 믿는다. 3년 전 EU의 선택처럼, 정부 스스로가 업계에 “고도한 가격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경고로 혹시나 있을지 모를 과도한 가격 인상이나 사재기 등을 미연에 막고, 국민들에겐 “정부가 손놓고 있지 않겠다”는 안도감을 주는 정치적 고려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고가격제는 어디까지나 다른 제도적 보완책 마련이나 수입선 다변화 전까지 시간을 벌기 위한 한시적, 제한적 조치여야 한다. 정부가 최고가격제 도입과 동시에 시행 기간과 종료 요건 등을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하는 이유다. 최고가격 설정도 고유가로 가장 피해가 큰 계층을 타깃팅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보수적으로 설계돼야 한다. 그래야 가격 통제가 오히려 시장 공급 부족을 초래하는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 또한 가격 통제에 따른 정유사 피해 보상에 투입하는 국가 재정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 EU처럼 국민 스스로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도록 하는 유인도 사라지지 않게 될 것이다.

진보정부든, 보수정부든 늘상 정부가 직접 시장 가격을 통제하거나 개입하고자 하는 유혹에 흔들려 왔다. 가장 손 쉽고 효과적인 수단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시장실패’는 정부가 나서 조정할 수 있지만,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나 규제를 가함으로써 또 다른 문제점을 불러오는 ‘정부실패’는 누구도 조정할 수 없다. 결국 둘 중 덜 피해가 적은 쪽을 택하는 게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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