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바젤의 새로운 거점, 카타르 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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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바젤의 새로운 거점, 카타르 도하

더 네이버 2026-03-12 10:01:34 신고

지난 2월, 세계 문화 예술계의 이목이 아트바젤 카타르가 개최되는 도하로 향했다. 중동 지역에서 열리는 최초의 글로벌 아트페어라는 상징성뿐만 아니라, 1인당 GDP 약 8만 달러의 세계 최상위권 국가 카타르의 문화국 수장 알 마야사(Al Mayassa) 공주가 직접 주도한다는 점에서 초미의 관심을 모았다. 그녀는 1983년생, 현 국왕의 여동생으로 듀크 대학에서 정치학과 문학을 전공했으며, 영화, 미술, 패션, 교육 등 카타르의 문화 콘텐츠 전반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녀의 압도적인 영향력은 이미 여러 사례로 증명된 바다. 2011년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을 약 2800억원에 구매하며 화제를 모았고, 베르사유궁전에서 개최되었던 다카시 무라카미의 전시를 도하 현대미술관에 유치했으며, 데미안 허스트, 우르스 피셔, 올라프 엘리아슨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대형 설치 작품을 카타르 전역에 설치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카타르를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강력한 배경 덕분에 카타르 아트바젤은 첫 개최임에도 불구하고 미술계의 플레이어들을 무서운 속도로 끌어모았다. 2025년 초, 행사 개최 소식이 처음 발표되었을 당시만 해도 50여 개의 갤러리와 함께 소규모 부티크형 아트페어로 시범 운영을 해보겠다고 했지만, 참여 갤러리는 총 87개로 대폭 늘어났다. 참가 갤러리 면면을 보면 가고시안, 하우저 앤 워스, 페이스, 페로탱, 화이트 큐브, 데이비드 즈워너 등의 글로벌 메이저 갤러리와 아쿠아벨라 같은 마스터피스 전문 갤러리는 물론 타데우스 로팍, 글래드스톤, 리만 머핀, 사디 콜, 컨티누아, 샹탈 크루젤, 마시모 데 카를로, 노이게림 슈나이더 등 현대미술을 주도하는 갤러리가 대거 참여했다. 여기에 로리 샤비비, 워딩톤 쿠스토, 카본 12, 레일라 헬러, 더 써드라인 등 중동 지역의 예술적 정체성을 대변하는 주요 갤러리가 가세했다. 전 세계의 미술 관계자, 컬렉터, 인플루언서가 모여 카타르는 연일 베니스 비엔날레를 방불케 하는 열기를 뿜어냈다. 
특별전을 포함 모두 84명의 작가가 참여한 가운데, 한국 갤러리로는 바라캇에서 2022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의 작가였던 김윤철을, BB&M에서는 2012년 올해의 작가상 파이널리스트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인 임민욱을 소개했다. 한편, 악셀 베르부르트는 김수자를, 에스더 쉬퍼는 아니카 이를 선보였다. 또한 소방서를 개조한 아티스트 레지던시 도하 파이어 스테이션 전시장에서는 정서영 작가의 대규모 개인전이 개최되어 K-아트의 위상을 널리 알렸다.  

1 도하 므셰이레브 M7에서 열린 제1회 아트바젤 카타르. 카타르 국기 색을 메인 컬러로 전체 홍보물을 디자인했다. 2 도하 시내 시드라 산부인과 앞에 설치된 거대한 데미안 허스트 공공미술. 3 M7 내부의 거대한 꽃 조각은 이자 겐츠켄의 작품으로 상시 전시 중인 공공미술. 4 므셰이레브 중앙 광장. 

작가 중심의 새로운 아트페어 

이번 아트페어의 가장 큰 특징은 갤러리 중심을 벗어나 작가 중심의 새로운 포맷을 선보였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아트페어에서 작가는 작품의 디스플레이에 관여하기 어렵고, 부스에는 다양한 작품들이 맥락 없이 진열되기도 한다. 총감독을 맡은 이집트 작가 와엘 샤키는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한 부스당 한 작가를 심도 있게 소개하는 형태를 선택했다. 참여 갤러리 선정 과정 또한 파격적이었다. 갤러리의 이력을 우선시하는 통상적인 방식과 달리, 출품 작가를 먼저 검토해 참여 여부를 결정했다. 덕분에 신진 갤러리가 아트바젤의 문턱을 넘기도 했다. 중동 지역 미술시장이 아직 충분히 성장하지 않은 탓에, 유럽이나 미주 갤러리와 비교해 견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충분한 역량을 지닌 중동 및 아프리카 지역 작가를 소개할 수 있는 갤러리라면 다소 경륜이 짧아도 글로벌 무대에 참여시키는 편이 장차 이 지역 예술 생태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아트페어가 미술시장을 넘어서 작가와 컬렉터, 갤러리스트와 큐레이터가 한데 모여 경험을 나누는 플랫폼으로 거듭나겠다는 취지다. 그런 점에서 이번 행사의 주제인 ‘변화(Becoming)’는 여러 가지를 의미한다. 유목사회에서 농업사회, 그리고 도시사회로의 변화뿐 아니라, 아트페어의 역할, 나아가 이 시대의 모든 변화와 발전에 대한 열망을 대변하는 것이다.  

1, 2, 3 도하 이슬람 아트 뮤지엄. 

도하의 럭셔리

아트페어가 개최된 므셰이레브(Msheireb) 지역은 도하 중심부의 뉴 럭셔리 타운이자 카타르의 미래를 상징하는 곳이다. 아랍어로 ‘물을 마시는 곳’이라는 뜻으로, 바다로 흐르던 민물이 있어 사람들이 모여들던 도시의 발원지였다. 현재에도 인근에 대형 전통 시장과 대통령궁이 남아 있어 이 지역의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짐작케 한다. 
이 지역은 2022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본격적인 재개발이 시작된 곳이다. 과거 주요 가문이 거주했던 전통 가옥 4곳은 각각 박물관으로 보존하며 카타르의 전통 생활, 석유산업의 발전사, 노예해방의 역사를 소개하고, 낡은 주거지는 철거해 친환경 스마트 시티로 개발했다. 건물이 서로 그림자를 만들어 자연 냉각을 유도하고, 15분마다 회차하는 무료 전통 트램과 냉방장치가 설치된 통로를 설치해 ‘걸어다닐 수 있는’ 도시를 만든 것이다. 한여름에는 45℃ 이상 올라가는 열기 때문에 대부분의 중동 지역에는 걸어다닐 만한 도시가 없다. 거리에 횡단보도가 눈에 띄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차로 다니거나 지하 통로를 이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반면 므셰이레브는 골목 곳곳에 차와 사람이 편안하게 다니고 있어, 자체가 럭셔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현재 이곳에는 구글 클라우드센터, 마이크로소프트, 글로벌 에너지 기업, 파리 경영대학 카타르 캠퍼스 등이 입주해 있다. 카타르의 젊은 부유층과 엘리트가 모여드는 세련된 커뮤니티가 형성되면서 감각적인 카페와 레스토랑도 곳곳에 들어서 활기를 띤다. 아트바젤 페어 개최 장소를 통상적인 컨벤션센터가 아니라 므셰이레브로 정한 것은 도하의 숨겨진 매력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자 하는 지향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도하 카타르 국립박물관.

현대건축의 각축장 

대규모의 지역 개발을 국가적 이벤트와 결합하는 방식은 신흥 개발 국가들이 즐겨 채택하는 국가 성장 모델이다. 카타르 역시 이러한 전략에 따라 시기별로 거점 도시를 육성해왔다. 1990년대 먼저 손을 댄 분야는 글로벌 지식 허브를 목표로 명문 대학을 유치한 에듀케이션 시티다. 조지타운, 코넬, 카네기멜론 등의 글로벌 명문 대학 캠퍼스를 유치하고, 100만 권 이상의 장서를 갖춘 국립도서관이 들어선 이곳은 건축물을 보기 위해 방문해볼 만한 곳이다. 아라타 이소자키, 렘 쿨하스는 물론 리카르도 레고레타, 만게라 이바르스(MYAA) 등 그야말로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각축장이다. 
에듀케이션 시티 바로 옆에는 파리시립미술관을 지은 건축가, 장 프랑수아 보댕이 참여한 마타프 미술관이 있는데 2010년 개관한 곳으로 곧 대규모 확장 공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레바논 출신으로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여성 건축가 리나 고트메가 참여할 예정이다. 그 바로 옆에는 여성만을 위한 알 무자딜라 모스크 겸 교육관이 있는데 이곳의 독특한 건축은 미국의 여성 건축가가 주도하는 딜러 스코르피디오 앤프로(DS+R)의 작품이다. 또한 도하 해안가의 외교부 신청사는 멕시코 출신의 신예 여성 건축가 프리다 에스코베도를 선정함으로써 그동안 남성 중심적이었던 중동 건축계에 여성 건축가들의 참여 범위를 대폭 확장해나가고 있다. 

1, 2 도하 카타르 국립박물관. 3 아트바젤 카타르, 카본12 갤러리 부스, 사라 알메하이리 (Sarah Almehairi). 4 아트바젤 카타르, 하우저 앤 워스 갤러리 부스, 필립 거스턴(Philip Guston).

문화가 담보하는 미래 

1971년 영국에서 독립해 고작 반세기의 짧은 역사를 지닌 국가에서 이미 30여 년 전부터 이 같은 변화를 모색했다는 것은 일찍이 가스나 석유에만 의존해서는 국가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고갈되거나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라 판세가 달라질 수 있는 천연자원보다는 지식과 문화 기반의 토대를 구축해야만 지속적인 부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은 오늘날 모든 국가가 체감하는 진리다. 그리고 이는 다행스럽게도 한국이 세계 무대에서 약진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카타르가 교육 다음으로 공을 들인 분야는 문화로, 그 결실은 먼저 뮤지엄으로 나타났다. 2008년 개관한 이슬람 뮤지엄은 ‘이슬람’이라는 이름이 붙은 최초의 미술관이다. 그동안 이슬람 전문 뮤지엄이 부재했던 이유는 복합적이다. 서구 사회의 이슬람에 대한 오해와 두려움, 신을 형상화하지 말라는 율법에 따라 회화나 조각이 발달하지 못한 예술적 특성, 그리고 유목 문화의 영향으로 유물을 한데 모으는 수집 문화가 희박했기 때문이다. 이곳의 컬렉션도 회화나 조각보다는 램프, 세라믹, 카펫, 캘리그라피와 책, 주얼리, 가구, 나침반 등 과학도구, 장례용품, 악기 등이 주를 이룬다. 7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이슬람 예술의 정수를 한자리에 모은 세계 최대 규모의 컬렉션으로 손꼽히는데, 요즘은 중동 국가의 힘이 강해지고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짐에 따라 루브르, 메트로폴리탄, 페라가몬 등 세계 주요 도시의 박물관에서도 앞다투어 이슬람 예술관을 별도로 구성하는 추세다. 덕분에 근래 미술시장에서 이슬람 미술품은 현대미술보다도 더 높은 가치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반갑게도 최근 이곳의 소장품 중 일부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상설 전시 중이다. 오늘날의 스마트폰과 같은 역할을 했던 천문 관측 기구 아스트롤라베를 비롯해, 코란, 정교한 공예품 등이 연중 관객을 맞이할 예정이다. 이처럼 카타르 뮤지엄은 세계 곳곳에 컬렉션을 대여하기도 하는데, 영국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 파리의 오텔 드 라 마린의 진귀한 보석 전시회도 카타르의 알 타니 컬렉션을 대여한 것이 많다. 문화재 대여를 통해 자국의 문화를 널리 알릴 뿐 아니라 외교적으로도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윈윈전략이 아닐 수 없다. 
2022년 개관한 카타르 국립박물관도 꼭 들러야 할 명소다. 장 누벨이 설계한 건축물은 사막의 모래 장미를 모티프로 지어졌으며, 내부에는 카타르 왕궁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 외부 인공 연못에는 장 미셸 오토니엘의 거대한 분수 설치 작품이 생동감을 불어넣으며, 내부는 고대부터 현대 석유산업의 발전사를 아우르는 아라비아반도의 역사를 첨단 미디어 아트를 활용해 몰입감 있게 보여준다. 
게다가 또 다른 랜드마크 뮤지엄들이 속속 착공 중이다. 헤르조그 드 뫼롱이 설계를 맡은 루사일 뮤지엄은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오리엔탈리즘 미술 컬렉션을 선보일 예정이며, 칠레 출신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가 참여하는 아트밀 뮤지엄은 대형 제분소를 개조해 현대적인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프로젝트다. 이와 같은 움직임은 다가오는 2030년 도하 아시안게임을 향한 준비이기도 하다. 월드컵에 이어 대규모 국제 스포츠 행사를 통해 국가적 위상을 높이려는 전략으로, 카타르가 오랫동안 추진해온 국가 발전 프로젝트 비전 2030의 목표이기도 하다. 카타르를 비롯한 중동 국가의 역동적인 변화는 이제 막 깨어나 미래를 향해 무섭게 질주하는 젊은이를 보는 느낌이다. 풍부한 자원과 자본도 부러운 조건이지만, 변화에 대한 열정은 이미 그 조건을 훨씬 앞서고 있다. 앞으로 5년 후, 세계의 판세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거침없이 나아가는 카타르를 응원하며, 우리에게도 아직 이러한 젊음이 남아 있는지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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