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AI가 만드는 산업 구조의 패러다임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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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 AI가 만드는 산업 구조의 패러다임 변화

이슈메이커 2026-03-12 09:28:01 신고

[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AI가 만드는 산업 구조의 패러다임 변화

생성형 인공지능(AI) 경쟁 속 반도체 시장에 훈풍이 불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가 연일 고공 행진을 이어가며 코스피 지수를 견인하고 있다. 이러한 반도체 호황을 두고 ‘슈퍼 사이클’을 넘어 ‘메가 사이클’에 진입했다는 진단까지 나오고 있다.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패러다임 변화가 반도체 산업의 지형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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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을’로 거듭난 메모리 반도체
지난해 초만 하더라도 삼성전자는 실적 악화로 인해 경영진이 사과를 해야할 정도였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차세대 반도체 시장에 제때 대응하지 못하며 경쟁력을 잃어 주가가 추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년 뒤 주가는 급등했고 지난 2월 4일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한국 기업 최초로 1,000조 원을 넘어섰다. 여기에 HBM 선두주자인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삼성전자를 뛰어넘는 영업이익을 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질주하자 코스피는 5000의 문턱을 훌쩍 넘어섰다. 지난해 말과 비교해 2월 20일 종가 기준 삼성전자의 주가는 58.5%, SK하이닉스는 45.8% 급등한 상황이다.


  그간 ‘메모리반도체 겨울’을 부르짖던 외국계 투자은행(IB)도 태세를 전환했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2027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합산 영업이익이 542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약 91조 원)보다 6배 가까이 뛴다는 것이다. 올해는 두 기업의 합산 영업이익이 300조 원을 넘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생성형 인공지능(AI) 경쟁 속 반도체 시장에 훈풍이 불며 ‘슈퍼 사이클’을 넘어 ‘메가 사이클’에 진입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Pixabay
생성형 인공지능(AI) 경쟁 속 반도체 시장에 훈풍이 불며 ‘슈퍼 사이클’을 넘어 ‘메가 사이클’에 진입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Pixabay

 


  반도체 산업은 과거 4~5년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을 반복해 왔다. 이른바 ‘실리콘 사이클’이다.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가격이 상승하면 제조사들은 설비 투자 확대에 나서고, 그 결과 공급이 과잉으로 돌아서면 가격이 다시 하락하는 흐름을 보였다. ‘슈퍼 사이클’은 이런 패턴 속에서 특정 수요처의 폭발적 성장에 힘입어 2년 이상의 장기 호황이 이어지는 시기를 의미한다.


  지난 슈퍼 사이클은 2017년 전후의 ‘클라우드 붐’이 꼽힌다. 당시 구글과 아마존, 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들이 클라우드를 위한 데이터센터를 공격적으로 증설하면서 서버용 D램 수요가 폭발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당시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웠다.


  현재 반도체 호황을 견인하는 핵심 동력은 단연 AI 데이터센터다. 생성형 AI 경쟁이 ‘학습’을 넘어 ‘추론’ 단계로 진화하면서 더 많은 데이터를 더 빠르게 처리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자연스레 HBM 등 고성능 메모리 수요가 급증하게 됐고, 이 때문에 엔비디아 등 AI 가속기 제조사들이 물량 확보에 사활을 걸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가 ‘슈퍼을’로 거듭난 셈이다.

 

지난 2월 4일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한국 기업 최초로 1,000조 원을 넘어섰다. ⓒ삼성전자 뉴스룸
지난 2월 4일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한국 기업 최초로 1,000조 원을 넘어섰다. ⓒ삼성전자 뉴스룸


  이는 생산을 갑작스레 늘릴 수 없는 HBM의 특성 때문이다. HBM은 범용 D램과 달리 고객사 요구에 맞춰 생산하는 주문형 반도체다. ‘선 주문, 후 생산’ 방식인 만큼 메모리 업체들이 수요를 초과하는 비효율적인 투자를 감수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1년 내내 이어진 공급 부족 현상으로 인해 현재 세계 반도체 시장은 공급자 우위 시장이 형성됐다.


  이러한 수요 폭증으로 범용 DRAM 라인이 HBM 라인으로 전환되면서 일반 제품의 가격까지 동반 폭등했다. HBM 생산 비중이 높아질수록 범용 D램과 낸드플래시 생산 여력이 줄어드는 구조여서다. 최근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1분기 범용 D램과 낸드플래시 계약가격이 전 분기 대비 각각 90~95%, 55~60% 급등할 것으로 예측했다. 트렌드포스는 “AI 서버 수요 강세가 지속되면서 D램과 낸드플래시의 평균판매단가(ASP)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며 “특히 HBM3E와 같은 차세대 제품의 비중 확대가 반도체 제조사의 수익성을 극대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도체 호황은 세계적인 추세다. 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는 지난해 7,720억 달러이던 글로벌 반도체 시장 규모가 올해 9,750억 달러로 25%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고, 메모리 반도체 성장률도 30% 이상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말과 비교해 2월 20일 종가 기준 SK하이닉스의 주가는 45.8% 급등한 상황이다. ⓒSK하이닉스 뉴스룸
지난해 말과 비교해 2월 20일 종가 기준 SK하이닉스의 주가는 45.8% 급등한 상황이다. ⓒSK하이닉스 뉴스룸

 

인재 유출 방지 전전긍긍
이로 인해 반도체는 한국 수출을 떠받들고 있다. 지난해 12월 반도체 월 수출액은 200억 달러 시대를 열었다. 올해 1월도 205억 4,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작년보다 수출액이 2배 이상 증가했다. 전체 수출 비중을 살펴보면 반도체가 32%를 차지한다.


  다만 일각에서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반도체 시장이 호황과 불황 사이클을 오간 만큼 언젠가는 ‘중력의 법칙’이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현재의 상승세가 2023년 무렵 시작됐다는 점을 보면 2027년 이후에는 정점을 지나 하락 국면에 접어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대 리스크는 ‘AI 거품론’의 현실화다. 글로벌 빅테크들은 AI 인프라 확대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하고 있으나 여전히 명확한 수익 모델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만약 AI 사업이 기대만큼의 수익을 내지 못하면 설비 투자는 자연스레 축소될 수밖에 없다. 특히 스마트폰이나 PC 등 범용 제품 수요에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AI 데이터센터에 대한 공급이 줄어들게 되면 현재의 슈퍼 사이클을 지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HBM 공급 과잉과 중국의 범용 반도체 저가 공세 가능성도 반도체 업황 전환을 불러올 수 있는 요소로 지목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직접 한국 AI 칩 디자인 엔지니어를 대상으로 공개 구인에 나서고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X’ 계정 화면 갈무리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직접 한국 AI 칩 디자인 엔지니어를 대상으로 공개 구인에 나서고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X’ 계정 화면 갈무리


  산업적 측면에서도 현재의 호실적을 ‘초격차 재확립’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AI 반도체 시장의 변화 속도가 워낙 빨라 한 번의 기술 변곡점을 놓치면 한순간에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다. 그래서인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최근 삼성 임원들에게 “숫자가 좀 나아졌다고 자만할 때가 아니다”며 “지금이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삼성전자의 실적이 완벽하게 회복했지만 HBM 등 초격차 기술에서 겪었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말고 기술 경쟁력 확보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는 메시지다.


  인재 전쟁도 만만치 않다. 최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한국 AI 칩 디자인 엔지니어를 대상으로 공개 구인에 나서는 등 빅테크의 한국 인력 빼가기가 가속화되는 모습이다. 비단 테슬라뿐만 아니라 AI 가속기 시장의 강자인 엔비디아를 비롯해 구글, 브로드컴 등 글로벌 빅테크들은 고액 연봉과 막대한 주식 보상을 내걸고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고성능 AI 반도체 기술을 자체 확보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핀셋 영입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인재 유출 방지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제시하는 파격적인 인센티브와 비교하면 국내 대기업의 처우는 상대적으로 열세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 빅테크로 인재 이동이 이어진다면 기술 개발 속도도 자연스레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진짜 문제는 국내 소·부·장 업계다. 대기업 인력 쏠림 현상에 더해 외국계 장비사들까지 가세하며 인력난이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평가다. 업계에서는 소·부·장 인력 기반이 약화할 시 국내 반도체 생태계 전반에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기술 축적이 흔들리면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 역시 장기적으로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단순 보조금 지원을 넘어 산학 연계 강화나 장기 재직 인센티브 확대, 연구 인프라 공동 활용 체계 구축 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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