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싱가포르는 이슬람과 힌두교, 불교와 기독교가 공존하는 도시국가다. 다층적인 종교·민족 구조에도 갈등이 일상화되지 않는 배경에 대해 현지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나누면 갈등은 사라진다." 싱가포르 사회를 묶는 힘의 중심에 음식이 있다는 뜻이다.
그 상징이 '호커 문화'(hawker culture)다. 호커는 원래 길거리에서 음식을 팔던 행상을 가리키지만, 오늘날에는 국가 정체성을 보여주는 생활 미식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일부는 미슐랭에 이름을 올릴 만큼 수준을 끌어올렸다. 동시에 각 민족의 전통을 정교하게 구현한 파인 다이닝도 도시 곳곳에 포진해 있다. 길 위의 한 그릇에서 최고급 레스토랑의 코스까지, 음식은 싱가포르 사회를 하나로 묶는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강력한 언어다.
◇ 길거리 미슐랭에서 파인다이닝까지…싱가포르의 호커 문화
과거에는 상인들이 식재료와 조리도구를 어깨에 메고 다니며 즉석에서 음식을 만들어 팔았다. 이 비공식적 거리 음식 문화인 호커는 위생 문제가 대두된 뒤 도시 정비를 거치며 20세기 중반 '호커 센터'라는 공공 공간으로 흡수됐다. 오늘날 호커 센터는 단순한 먹거리 공간을 넘어, 싱가포르의 생활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가이드 와히다 엔젤 씨의 안내로 호커 센터 두 곳을 찾았다. 리틀 인디아의 테카 센터와 차이나타운의 차이나타운 컴플렉스다. 테카 센터에 들어서자 향신료 냄새가 먼저 코끝을 자극했다. '델리 라호리'는 미슐랭에 이름을 올린 난 전문 호커로 숯불로 직접 난을 굽는다. 이곳에서 버터 난과 버터 치킨을 주문했다. 역시 미슐랭 가이드에 이름이 올라간 '알라우딘스 브리야니'에서는 머튼(양고기) 비리야니를 주문했다. 진한 버터 향이 밴 난을 치킨 소스에 찍어 먹고, 향신료가 깊게 스민 머튼 브리야니를 먹으니 서로 다른 느낌의 인도식 풍미가 입 안에서 어우러진 느낌이었다.
두 번째 목적지는 차이나타운 콤플렉스였다. 이곳은 규모부터 달랐다. 여러 층에 걸쳐 음식점과 좌석이 빼곡히 들어서 있고, 관광객과 현지인이 뒤섞여 끊임없이 오간다.
이곳에서는 식사 대신 오래된 커피점 '오십년대'를 찾았다. 빨간색 미슐랭 마크가 분명한 간판 아래에서 중년의 남성이 정성스럽게 진한 색의 커피 농도를 조절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주문한 냉커피를 한 모금 들이켜자 쓴맛 뒤로 단맛이 또렷하게 따라붙었다. 주변 테이블에서는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두 곳의 호커 센터는 분위기와 음식이 확연히 달랐다.
그러나 값비싼 장식 없이도 사람을 불러 모으고, 바쁜 일상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게 하는 식탁이라는 점에서는 닮아 있었다.
특히 눈에 들어온 것은 할랄 음식과 일반 음식 접시 반납 코너가 나란히 붙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종교와 피부색은 달라도, 같은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 서양 파인다이닝의 진수 카펠라 이탈리아 식당 피아마
카펠라 호텔 1층 '피아마'는 서양 파인 다이닝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마침 카펠라는 이탈리아 남부 아말피 지역의 한 호텔 셰프를 초청해, 아말피 요리 특별 코스를 선보이고 있었다. 이날 제공된 메뉴는 아말피 해안에서 자주 쓰이는 해산물과 올리브유, 감귤류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첫 코스는 올리브유에 가볍게 손질한 제철 채소와 해산물 전채였다. 접시에는 불필요한 장식 없이 재료가 정갈하게 놓였고, 입에 넣자 레몬 껍질의 산미가 먼저 느껴진 뒤 해산물의 염도가 차분히 이어졌다. 기름기는 가볍게 정리돼 있었고, 시작부터 부담을 줄여줬다는 느낌이다.
이어 나온 파스타는 면의 식감이 분명했다. 포크로 들어 올리자 면이 쉽게 끊어지지 않고 탄력이 있었다. 토마토를 베이스로 한 소스는 과도하게 졸이지 않았고, 해산물의 감칠맛이 입안에서 또렷하게 남았다. 허브는 향을 보태는 정도에 그쳤다.
생선 요리는 팬에 빠르게 구운 조리법이 인상적이었다. 표면은 단단하게 잡혀 있었지만 속살은 촉촉했다. 올리브유와 감귤 계열의 산미가 곁들여져 생선의 기름기를 정리했고, 포크를 대자 살결이 자연스럽게 갈라졌다.
메인으로 나온 육류는 소스 사용을 최소화해 고기의 풍미를 중심에 두었다. 겉면은 잘 구워졌고, 내부는 과하게 익지 않았다. 곁들임 채소는 맛을 보조하는 역할에 머물렀다. 디저트는 레몬을 활용한 구성으로 마무리됐다. 단맛보다는 상큼함이 먼저 느껴졌고, 식사 후 입안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는 역할에 충실했다.
피아마 위에는 '밥스 바'가 자리 잡고 있다. 피아마와 비교하면 맥주와 함께 간단하게 식사할 수 있는 메뉴다. 가볍게 생각하고 주문했는데, 의외로 정찬 뺨치는 메뉴들로 채워져 깜짝 놀랐다. 특히 꼬치 요리를 뜻하는 '사테' 메뉴의 풍미가 훌륭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6년 3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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