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시는 3월 14일부터 4월 30일까지 갤러리 누보(대표 송정희)에서 개최된다. 이 공간은 자연과 돌 문화로 유명한 제주돌문화공원 안에 자리한 갤러리로, 자연 풍경과 함께 동시대 미술을 만나는 독특한 장소다. 이번 전시는 갤러리 누보가 새롭게 시작한 신진 작가 발굴 프로젝트 'New Face 2026'의 첫 번째 기획전이기도 하다.
전시 제목인 'CRAVE'는 말 그대로 ‘갈망’을 의미한다. 작가는 인간 존재의 깊숙한 곳에 자리한 욕망, 그리고 그것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과정에 주목한다. 작품 속 인물들은 대부분 정면 혹은 약간 비켜선 시선으로 화면에 등장한다. 표정은 거의 움직이지 않고, 감정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화면 속에는 작은 상징들이 흩어져 있다. 꽃, 개미, 별, 화살 같은 이미지들이 인물 주변을 맴돌며 보이지 않는 감정의 흐름을 드러낸다.
이러한 상징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은유적 장치다. 꽃은 욕망의 피어남을, 개미는 끊임없는 삶의 노동과 욕망의 축적을, 별은 희망과 동경을, 화살은 욕망이 향하는 방향과 상처를 동시에 상징한다. 정지아의 화면은 겉으로는 고요하지만, 그 안에서는 감정의 파동이 미세하게 일렁인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작가의 문제의식을 담은 신작 20여 점이 공개된다. 인물의 얼굴은 화면 중심에 배치되지만, 그 얼굴은 단순한 초상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정체성을 넘어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감정적 풍경을 담은 하나의 상징적 존재에 가깝다. 작품 속 인물들은 말없이 화면을 바라보지만, 그 침묵은 오히려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정지아의 작업이 흥미로운 이유는 전통 회화의 언어와 동시대 감각을 동시에 품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한국화의 전통적 채색 기법을 바탕으로 작업하면서도 화면 구성에서는 현대적 감각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부드럽게 번지는 색면과 절제된 구성은 동양 회화 특유의 정적인 미감을 떠올리게 한다. 반면 강렬한 색채 대비와 상징적 이미지들은 현대적이고 팝적인 감각을 드러낸다.
이러한 미학적 결합은 작가의 이력에서도 비롯된다. 정지아는 한국화 기반의 교육을 받은 뒤 중국 베이징의 Central Academy of Fine Arts에서 중국화를 전공했다. 동양 회화 전통의 두 흐름을 경험한 그는 전통 채색화의 섬세한 표현력과 현대적 이미지 감각을 결합한 새로운 인물화를 구축해 가고 있다.
특히 그의 작품에서 눈에 띄는 것은 색채의 사용이다. 화면은 부드러운 색조로 채워져 있지만, 그 안에는 예상치 못한 강렬한 색이 등장해 긴장을 만든다. 이 색채들은 단순한 시각적 효과가 아니라 감정의 온도를 드러내는 장치다. 고요한 얼굴 위로 흐르는 색은 마치 마음속 감정의 층위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미술평론가 김종근은 정지아의 작업을 두고 "젊은 세대의 감수성과 동양 회화 전통이 결합된 새로운 인물화"라고 평가한다. 전통적 재료와 기법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현대적 이미지 감각을 통해 동시대 감정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는 것이다.
작가 역시 자신의 작업이 특정한 개인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의 감정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작가노트에서 이렇게 쓴다. "그림 속 얼굴들은 흔들림을 수용하며 각자의 속도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이러한 시선은 젊은 세대가 경험하는 불안과 욕망, 그리고 삶의 아름다움에 대한 사유로 이어진다. 작가가 그리는 얼굴들은 완전히 평온하지도, 완전히 불안하지도 않다. 그들은 흔들리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그 흔들림 속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다. 바로 그 지점에서 정지아의 인물화는 단순한 초상을 넘어 동시대의 정서를 담는 하나의 장면이 된다.
미술계에서도 그의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정지아는 지난 2023년 미술 평론가들이 선정한 K-Artist 그랑프리 대상에 이름을 올렸고, 2024년에는 아트코리아 평론가상을 수상하며 젊은 작가로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등단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비교적 분명하게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 높게 평가되고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송정희 갤러리 누보 대표는 "올해부터 젊은 작가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하려 한다"며 "인간의 얼굴을 통해 존재의 흔들림과 욕망, 삶의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정지아 작가의 작업이 그 출발점이 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제주라는 공간 역시 이번 전시의 분위기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돌과 자연 풍경으로 이루어진 제주돌문화공원은 인공적인 도시 갤러리와는 전혀 다른 환경을 제공한다. 자연 속에서 마주하는 인물화는 관람자에게 또 다른 감정적 경험을 만들어낸다. 고요한 자연 풍경과 정지된 얼굴들이 서로 호응하면서 전시 전체에 묘한 정적과 사유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한편 전시 오프닝은 오는 3월 14일 토요일 오후 4시에 열린다. 이 자리에서는 작가와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작가와의 대화' 프로그램도 함께 마련된다. 관람객들은 작품 제작 과정과 작가의 생각을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다.
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지만 제주돌문화공원 입장료는 별도로 지불해야 한다. 관람 시간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이며, 월요일은 휴관이다.
젊은 작가의 인물화는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정지아의 그림 속 얼굴들은 분명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감정을 발견하게 된다. 욕망과 불안, 그리고 그 사이에서 흔들리는 존재의 모습. 정지아의 인물화는 바로 그 미묘한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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