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교회가 하나 있다. 교회가 성장하면서 예배 인원이 늘어났고 자연스럽게 주차 공간의 필요도 커졌다. 교인들의 편리한 교회 생활을 위해 교회 가까이에 있는 공터를 주차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매입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땅 주인은 팔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뜻밖의 연락이 왔다. 땅 주인이 먼저 교회에 전화를 한 것이다. 교회가 주일마다 그 땅을 주차장으로 무료로 사용해도 좋다는 말이었다. 단, 조건이 하나 있었다. 1년 52주 가운데 51주는 사용할 수 있지만 1주는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교회는 그 제안을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1년, 2년, 3년 시간이 지나도록 교회는 한 주일을 제외하고 그 주차장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교인들 사이에서 작은 불평이 생기기 시작했다.
“왜 한 주일은 사용할 수 없는가”, “특별히 사용하는 것도 아닌데 1년 내내 쓰게 해주면 좋지 않을까”.
그래서 교회는 조심스럽게 땅 주인에게 물었다. “왜 한 주일은 사용할 수 없는 건가요.” 그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래야 이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삶에는 값을 치르지 않고 선물로 누리는 것이 너무나 많다. 사람은 하루에 약 2만번 숨을 쉰다고 한다. 숨을 쉬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숨을 쉬면서도 값을 치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감사하지도 않는다.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필자는 24년간 살던 일반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 집에서의 시간은 참 좋았다. 13년 전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를 따라 아랫마을 하동사람과 윗마을 구례사람들이 어우러져 장을 펼치던 화개장터에서 매실나무 한 그루를 사다 심었다. 봄이 오면 새순이 돋고 열매가 맺히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대문 밖에 심은 벚나무는 해마다 온 동네를 환하게 물들이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밝게 해줬다. 대문 안 작은 정원에 심어 둔 라일락 꽃이 피면 그 향기가 얼마나 그윽한지 모른다.
그런데 아파트로 이사 와 보니 또 다른 감사가 있다. 집이 따뜻해서 좋고 조용해서 좋다. 창문 밖으로 들어오는 환한 햇살도 좋다. 아침마다 승강기에서 만나는 이웃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 일도 참 반갑다. 환경이 달라졌을 뿐인데 감사의 이유는 여전히 많다.
필자는 매일 하루를 마무리하며 감사일기를 쓴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돌아보며 좋은 만남과 가슴 벅찼던 순간을 글로 기록한다. 그렇게 하루를 정리하고 나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행복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게 된다. 몇 년 동안 감사일기를 쓰다 보니 삶이 풍성해졌다. 마음이 정리되고 시선이 섬세해졌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하고,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선물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평범한 하루도 기적이 된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 자체는 이미 기적의 연속이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 숨을 쉬는 것, 사람을 만나고 하루를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선물이고 기적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잊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가끔은 우리 삶에도 ‘한 주일’이 필요하다. 잠시 멈춰 이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 돌아보는 시간 말이다. 그때 우리는 깨닫게 된다. 감사하면 보인다. 그리고 우리의 평범한 하루가 이미 기적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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