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정책을 통해 국내 증시의 체질 개선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노란봉투법'이 산업 현장과 주식시장에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하청 노동자가 원청 기업을 상대로 직접 교섭을 요구할 수 있도록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고 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이 법이 10일부터 본격 시행되면서 노사 관계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증권가와 산업계에서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특히 법 시행 첫날부터 자동차·조선·항공 등 하청 구조가 복잡한 산업에서 원청 교섭 요구가 잇따르고 삼성전자 노조가 총파업 절차에 돌입하는 등 산업 현장의 긴장감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노동집약 산업의 투자 심리를 위축시킬 수 있는 반면 자동화와 로봇 산업에는 새로운 수혜 요인으로 작용할 거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노란봉투법 시행 첫날부터 '교섭 요구 봇물'…제조업 노사 긴장 고조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가 실질적인 영향력을 가진 원청 기업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도록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고 파업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하청 노동자의 교섭권을 확대하고 노동권 보호를 강화하는 데 있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적용 범위와 책임 주체를 둘러싼 혼선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법 시행 첫날부터 주요 산업 현장에서는 원청을 상대로 한 교섭 요구가 잇따랐다. 자동차와 조선, 항공 등 하청 구조가 복잡한 산업에서 노조의 교섭 요구가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현대모비스 자회사 노조를 비롯해 전국 15개 공항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이날 원청과의 직접 교섭을 요구하며 집회와 결의대회를 열었다.
현대모비스 램프사업부 매각을 앞두고 자회사 노조는 고용 불안정을 이유로 원청과의 교섭을 요구하며 구조조정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램프 사업을 담당하는 자회사 현대IHL과 부품 생산 자회사 유니투스 노조는 원청인 현대모비스에 교섭 요청서를 전달하며 사업부 매각 반대 입장을 밝혔다.
조선업에서도 움직임이 이어졌다. HD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는 원청에 세 번째 교섭 요구서를 전달하며 교섭 압박을 높였다. 현대자동차 하청노조 역시 원청을 상대로 세 번째 교섭 요구서를 준비하며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항공업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나타났다. 전국공항노동자연대는 인천공항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원청인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에 교섭 참여를 요구했다. 전국 14개 공항의 간접고용 노동자를 대표하는 노조는 원청이 교섭을 거부할 경우 투쟁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법 시행 첫날부터 원청 교섭 요구가 잇따르면서 산업 현장에선 긴장어린 기색이 역력하다. 삼성전자도 예외는 아니다. 삼성전자 노동조합은 성과급 상한선 폐지와 임금 인상 등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5월 총파업을 목표로 쟁의권 확보 절차에 돌입했다. 투표 첫날 투표율이 50%를 넘기면서 노조 내부 결집도가 확인된 만큼 실제 파업 가능성도 거론된다. 총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2024년에 이어 창사 이후 두 번째 사례가 된다.
증권가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노동집약 산업의 투자 심리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과거에는 파업으로 인한 손실이 발생할 경우 기업이 일정 부분 손해배상을 청구해 리스크를 완화할 수 있었지만 법 개정 이후에는 이러한 대응이 제한되면서 기업 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협력업체와 하청 구조가 복잡한 제조업에서는 노사 갈등이 반복될 경우 생산 차질과 비용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사 리스크 피하려는 기업들…증시에선 '로봇주 랠리'
노란봉투법 시행이 산업 현장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가운데 국내 증시에서는 예상과 다른 흐름이 나타났다. 법 시행 첫날 로봇 관련 종목들이 일제히 상승세를 보이며 정책 수혜 기대감이 부각된 것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국내 증시에 상장된 산업용·협동로봇 관련 종목 63개 가운데 57개 종목의 주가가 상승했고 보합은 1개, 하락 종목은 5개에 불과했다. 대표적으로 한국피아이엠은 전 거래일 대비 25.85% 상승하며 가장 큰 폭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어 와이투솔루션(15.15%), 아진엑스텍(14.41%), 로보티즈(10.94%), 푸른기술(10.50%) 등 주요 로봇 관련 종목들도 일제히 강세를 보였다.
협동로봇 분야 대표 기업으로 꼽히는 두산로보틱스 역시 상승세를 나타냈다. 두산로보틱스는 전 거래일 대비 5.26% 이상 상승하며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지난해 미국 로봇 솔루션 기업을 인수하며 협동로봇 제조 중심의 사업 구조를 솔루션 기반 사업으로 확대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단순한 단기 테마가 아니라 산업 구조 변화 기대가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기업들이 노사 갈등과 고용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자동화와 로봇 도입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실제 글로벌 제조업에서는 생산 현장의 자동화 속도가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산업용 로봇뿐 아니라 무인 이송 로봇, 건설 로봇, 협동로봇 등 다양한 자동화 기술이 현장에 도입되고 있으며 AI 기술이 결합되면서 생산성과 효율성도 빠르게 개선되는 추세다.
증권가에서는 노동집약 산업과 자동화 산업 간 주가 흐름이 점차 차별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자동차·철강·건설 등 노사 관계 영향을 크게 받는 제조업 종목의 경우 단기적으로 투자 심리가 위축될 수 있는 반면 로봇·AI·콘텐츠 등 규제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은 산업은 투자 대안으로 부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양승윤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제조업에서 노사 갈등 가능성이 커질 경우 기업들은 자동화 투자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며 "투자자 입장에서는 노동 리스크가 있는 업종보다 기술 기반 산업에서 기회를 찾는 전략이 유효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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