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굴의 도전자' '투지의 화신' '변방의 승리자'….
송대남 위원장(KH그룹 필룩스 유도단 전 감독, 2012년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게 체육계 안팎에서 붙는 수식어들이다.
송 위원장은 대한민국 유도의 상징적인 선수이자 '비주류에서 정상'에 올라선 '인간 승리의 주인공'으로 평가받는다. 유도 유망주로 젊은 시절부터 주목을 받았지만, 그의 선수 생활은 순탄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여러 차례 큰 대회를 앞두고 부상과 세대교체 속에서 시련을 겪었다. 특히 국가대표로 긴 시간을 보내면서도 올림픽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해 좌절을 겪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도전을 이어갔다.
긴 무명과 어려움을 이겨낸 그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감을 주고 있으며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메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실제 그는 가장 극적인 순간에 세계 무대의 정상에 올라선 '전설의 선수'로도 평가받는다. 바로 2012년 런던 올림픽이 그의 끈질긴 도전이 화려한 빛을 발한 무대였다.
당시 만 33세였던 송대남은 남자 유도 90kg급에 출전했다. 나이가 많은 편이었지만, 풍부한 경험과 강한 정신력으로 경기마다 집중력을 발휘했다. 특히 준결승과 결승에서 보여준 침착한 경기 운영과 기술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결승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그는 마침내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의 금메달은 아직까지 올림픽 유도 종목 최고령이자, 우리나라 올림픽 유도 종목의 마지막으로 기록돼 있다.
좌절을 딛고 오랜 시간 노력 끝에 이룬 금메달이었기에 그의 우승은 단순한 스포츠 성과를 넘어 끈기와 도전 정신의 상징으로 평가된다.
"난 항상 도전자였고, 언더독이었다. 파벌싸움의 희생양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인기 종목이나 스타 선수보다 응원이 필요한 이들에게 관심이 많다." 송 위원장이 언론 인터뷰 등에서 밝힌 말이다.
올림픽 이후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지만 송 위원장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후배 양성에 힘을 쏟았다. 국가대표 지도자로, KH필룩스 유도단 감독 등으로 활동하면서 한국 유도 발전에 기여해 왔다.
또한 방송과 강연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활동하며 스포츠 정신과 도전의 가치를 알리고 있으며 최근에는 대한체육회 지도자위원회 위원장으로도 활동하면서 체육 행정가로써의 길도 걷고 있다.
최근 송 위원장은 또 다른 성취를 일구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이달 초부터 용인대 유도학과 전임교원으로 임용된 것.
특히 '유도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용인대 교수로 임용된 건 송 위원장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유망주였던 고교 시절 슬럼프에 빠지면서 목표했던 유도 명문대인 용인대 진학이 아닌 다른 대학 체육학과에 입학했던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대학시절 유도 종목으론 '변방'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주류로 올라서기 위해 여러차례 시련을 겪었던 경험이 있다. 결국 치열한 노력으로 국가대표에 발탁됐지만, 그는 "마음 한 편에는 늘 비주류의 어려움과 고충이 있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이제 유도 명문 용인대에 선수가 아닌 교수로써 당당히 입성한 셈이다.
송 위원장은 "스스로 비주류라 생각했지만 포기할 수도 없다고, 누굴 원망할 수는 더욱 없었다"며 "'죽을 힘을 다해 쉬지 말고 끝까지 도전해보자'는 스스로에 대한 채찍질이 꿈꾸던 학교의 교수라는 성취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같은 성취에 대해 그는 특히 KH그룹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그룹 차원에서 유도단을 만들고 비인기 종목인 유도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은 KH그룹과 회장님에 대해 감사함을 전한다"고 말한 송 위원장은 "KH그룹 필룩스 유도단은 유도와 체육계에 대한 나의 역할과 노력을 지속하게 한 원동력이 됐다"고 덧붙였다.
배충현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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