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임나래 기자] 중장년 투자자의 전유물로 통하던 법원 경매 시장의 주인이 바뀌고 있다. 매매 시장의 매물 부족과 토지거래허가제(토허제) 등 촘촘한 규제를 피해 실거주 집을 마련하려는 30대 수요자가 대거 유입되면서다. 권리관계 분석과 명도(거주자 내보내기) 등 까다로운 숙제가 남지만, 법원이 주관하는 ‘투명한 거래’라는 점이 정보에 밝은 청년층을 끌어당기도 있다.
◇“아저씨들 시장은 옛말”…낙찰자 10명 중 3명은 ‘30대’
경매 시장의 연령대별 지형도가 가파르게 변하고 있다. 10일 법원경매 전문기업 지지옥션에 따르면, 올해 1~2월 서울 주택 경매 매수인 914명 중 30대는 529명으로 전체의 28%를 차지했다. 50대(25%)와 40대(20%)를 제치고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들이 경매로 눈을 돌린 이유는 명확하다. 청약 가점이 낮은 상황에서 서울 주요 지역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자, 일반 매매로는 진입이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경매는 토허제 구역 내에서도 실거주 의무 등 규제 적용 방식이 달라 상대적으로 문턱이 낮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최근 경매에 참여하는 30대 상당수는 투자보다 실거주 목적이 강하다”며 “마포·성동·동작·강동 등 준상급지의 15억 원 이하 아파트를 중심으로 매수세가 몰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대출 가능한 가격대이면서 정주 여건이 좋은 곳은 낙찰가율도 높게 형성되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권리·명도’ 리스크 크지만…“사기 걱정 없는 투명함이 매력”
경매는 채무 관계가 얽힌 물건을 다루는 만큼 위험 요소가 적지 않다. 가압류나 전세권을 꼼꼼히 따지지 않으면 낙찰자가 빚을 떠안을 수 있고, 기존 거주자와의 퇴거 협상(명도) 과정에서 진통을 겪기도 한다. 실물 내부를 확인하기 어려워 낙찰 후 뒤늦게 하자를 발견할 가능성도 상존한다.
낙찰가가 시세보다 높게 치솟는 ‘과열’ 현상도 경계 대상이다. 지난달 마포구 성산시영 전용 50㎡는 감정가(9억3300만원)를 훌쩍 넘긴 15억9999만원에 낙찰됐다. 낙찰가율 171.5%로, 역대 매매 최고가보다도 2억원가량 비싸다. 재건축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지만, ‘경매=저렴하다’는 공식이 깨진 사례다.
그럼에도 청년층이 경매를 선호하는 이유는 ‘거래의 신뢰성’에 있다. 최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최근 경매 시장이 대중화되면서 권리 분석 절차만 익히면 위험을 충분히 관리할 수 있게 됐다”며 “법원이 절차를 주관하므로 사적 거래에서 발생하는 이중 계약이나 사기 위험이 낮다는 점이 매력”이라고 진단했다.
◇숨 고르기 들어간 낙찰가율…“공급 부족에 열기는 지속”
최근 강남권 아파트값이 조정기에 접어들며 서울 아파트 낙찰가율은 2월 기준 101.7%를 기록, 전월(107.8%) 대비 6.1%포인트 하락했다. 무분별한 고가 낙찰은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인기 지역의 입찰 경쟁은 여전히 뜨겁다. 이 연구원은 “강남 3구는 매물 증가로 분위기가 진정됐으나, 15억원 이하 실거주 단지는 여전히 수요가 탄탄하다”며 “공급 부족 상황이 이어지고 있어 실수요자 중심의 강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경매가 사실상 ‘또 다른 매매 시장’으로 자리 잡은 만큼 철저한 사전 검토를 당부한다. 시세 차익에만 매몰되기보다 권리관계와 명도 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냉정하게 입찰에 참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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