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N문화] 장터 난장에서 문화유산으로…'안성남사당풍물놀이'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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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N문화] 장터 난장에서 문화유산으로…'안성남사당풍물놀이'의 기억

뉴스컬처 2026-03-11 00:00:00 신고

[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장터가 문화의 중심이던 시대, 길 위의 예인들은 삶과 예술을 함께 짊어지고 떠돌았다. 그들이 펼친 놀이판은 공연장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 공간 한가운데였다. 북과 꽹과리가 울리면 장터의 소란은 곧 하나의 판으로 바뀌었고, 사람들은 관객이자 참여자가 되었다. 이러한 민중 문화의 현장에서 형성된 풍물 전통이 바로 '안성남사당풍물놀이'다.

안성남사당풍물놀이는 경기 남부와 충청 북부 지역에서 전해 내려온 형성된 풍물 예술이다. 이 가락은 장단의 흐름이 크고 선명하며, 리듬의 상승과 확장이 강하게 드러나는 특징을 지닌다. 이러한 음악적 구조는 농경 사회의 집단적 움직임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두레 노동이나 공동 작업의 호흡이 풍물 장단 속에서 예술적 형태로 변모한 결과다.

사진=국가유산포털
사진=국가유산포털

안성남사당풍물놀이의 배경에는 남사당패라는 독특한 예인 집단이 존재한다. 남사당패는 조선 후기 전국을 유랑하며 연희를 펼치던 전문 예인 조직이었다. 이들은 일정한 거처 없이 장터와 마을을 이동하며 공연을 펼쳤고, 걸립을 통해 생계를 유지했다. 예술 활동과 생활이 구분되지 않는 구조 속에서 풍물과 곡예, 탈놀이가 결합된 종합적인 연희 문화가 형성되었다.

안성은 이러한 남사당 문화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다. 삼남 지방의 물산이 모이던 교통의 요충지였던 이곳은 상업과 교류가 활발한 공간이었다. 장터와 난장이 자주 열렸고, 농악 경연과 놀이판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풍물놀이는 이러한 장터 문화 속에서 공동체의 활력을 드러내는 예술로 자리 잡았다.

안성 남사당 전통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우덕이다. 조선 후기 안성 출신으로 전해지는 그는 남사당패의 꼭두쇠로 활동하며 뛰어난 재주로 이름을 남겼다. 구전 민요 속에서 바우덕이는 줄타기와 소고놀이의 명수로 묘사된다. 이러한 노래는 한 인물의 명성을 넘어 남사당패가 민중 문화 속에서 차지했던 위치를 보여준다.

남사당패의 전승은 여러 상쇠들의 계보를 통해 이어졌다. 바우덕이 이후 김복만, 이원보, 김기복 등의 인물이 가락과 판제를 이어갔다. 이 가운데 김기복 상쇠는 안성 지역 풍물 가락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공연 형태로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안성 남사당 바우덕이 풍물단의 야외 공연 모습. 사진=풍물단
안성 남사당 바우덕이 풍물단의 야외 공연 모습. 사진=풍물단

풍물판에서 상쇠는 음악과 움직임을 동시에 이끄는 중심 존재다. 꽹과리의 쇳소리는 장단의 방향을 제시하고, 장구와 북, 징은 그 흐름을 확장한다. 연희자들은 진풀이를 통해 원형과 선형, 교차의 동선을 만들어 내며 공간 전체를 무대처럼 변화시킨다.

진풀이는 농악의 미학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다. 원을 이루는 움직임과 대열의 변화는 공동체의 질서와 협동을 상징한다. 풍물놀이가 몸의 움직임과 공간 구성이 결합된 종합 예술로 평가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남사당패의 연희는 풍물놀이에만 머물지 않았다. 버나, 살판, 어름, 덧뵈기, 덜미 등 다양한 연희가 함께 어우러졌다. 접시돌리기와 줄타기, 탈놀이와 인형극까지 이어지는 구성은 하나의 놀이판을 완성하는 구조였다. 이 가운데 풍물놀이는 전체 연희의 흐름을 이끄는 중심 축 역할을 맡았다.

안성남사당풍물놀이는 종합 연희 체계와 깊은 관계를 지닌다. 풍물 장단이 연희의 흐름을 열고, 판 전체의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리듬의 변화에 따라 연희자들의 동작과 관객의 반응이 함께 움직이며 하나의 공동체적 공연 경험이 형성된다.

또한 농경 사회의 생활 문화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정초의 집돌이 풍물, 논매기와 김매기 두레 풍물, 마을 굿과 장터 놀이 등 다양한 생활 의례 속에서 풍물 장단이 사용되었다. 풍물은 축제와 노동, 의례를 연결하는 문화적 매개였다.

버나놀이를 하고 있는 바우덕이 풍물단. 사진=안성시청
버나놀이를 하고 있는 바우덕이 풍물단. 사진=안성시청

안성 지역의 풍물 가락은 경기와 충청 지역의 음악적 특징을 동시에 지닌다. 남사당패가 여러 지역을 이동하며 활동했던 특성 때문에 가락은 넓은 지역에서 공유되었다. 이러한 흐름이 오늘날 ‘웃다리풍물’이라는 이름으로 정리된다.

풍물 장단의 리듬은 예인들의 이동 경로와 문화 교류의 흔적을 보여준다. 안성, 평택, 천안, 진천 등지의 농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공통된 음악적 구조를 형성했다. 이는 풍물 전통이 지역 문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발전해 왔음을 보여준다.

안성에는 남사당패의 기억을 간직한 장소도 남아 있다. 청룡사와 그 주변의 불당골은 남사당패가 겨울을 보내던 공간으로 전해진다. 유랑 예인들이 잠시 머물며 다음 길을 준비하던 장소는 남사당 문화의 역사적 흔적을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이다.

1980년대 이후 이러한 전통은 지역 예인들의 노력으로 다시 정리되었다. 풍물 단체가 조직되고 전국 민속예술 경연대회에서 성과를 거두며 안성 풍물의 가치가 널리 알려졌다. 이후 전승 활동과 교육을 통해 가락과 연희 방식이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 안성남사당풍물놀이는 공연 예술의 형식으로 무대에 오르지만, 그 뿌리는 길 위에서 형성된 민중 문화에 있다. 장터의 소란과 농촌 공동체의 리듬, 유랑 예인의 삶이 풍물 장단 속에 함께 남아 있다. 북과 꽹과리의 울림은 오랜 시간 이어져 온 문화적 기억을 현재로 불러오는 소리이기도 하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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