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앞 간담회…폭증·혼란 우려 속 적법요건 사전심사로 걸러내기
확정판결 취소로 안정성 저하·분쟁장기화 지적엔 "사후 법적 문제"
(서울=연합뉴스) 이미령 기자 = 헌법재판소가 법원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허용하는 '재판소원제' 시행을 앞두고 "보다 촘촘한 기본권 보장 체계가 구축될 것"이라며 '4심제' 우려를 비롯한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충실히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헌재는 한해 최대 1만5천건의 재판소원이 접수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사건 폭증 우려와 관해선, 상당수가 사전심사 단계에서 각하될 것으로 보이고, 다른 헌법소원 사건 부담이 줄어들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 "사법부 작용도 헌법적 통제…촘촘한 기본권 보장"
헌재는 10일 오후 종로구 청사 별관 브리핑룸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재판소원 준비 상황과 운영 방안 등을 설명했다.
재판소원법은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 심판 대상에 포함하는 것이다. 재판이 헌법에 어긋나는 경우 헌재는 이를 취소하고 법원은 헌재 결정 취지에 따라 다시 재판해야 한다.
사법부를 중심으로 여러 우려가 제기됐으나 국회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이르면 이번 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손인혁(사법연수원 28기) 사무처장은 "재판소원이 가능해지면 기본권 보장에 의미 있고 실질적 진전을 이룬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국민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조기에 안착시킬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는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은 권위주의 체제로부터 국민 기본권 보장을 위해 헌재를 설치했지만, 재판소원 금지로 헌법에 담긴 주권자의 의지가 제대로 발현되지 못했다"며 법원의 공권력 작용도 헌법적 통제 대상이 돼 촘촘한 기본권 보장 체계가 구축될 것이라고 했다.
손 처장은 특히 "재판소원 도입 과정에서 제기됐던 우려를 잘 알고 있다"며 "이른바 4심제라는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헌법재판연구원을 중심으로 외국 판례와 실무 경험을 충실히 검토하고 있고, 여러 전문가와 재판부·연구부 간 소통 기회를 마련해 대비하고 있다"고 했다.
지성수(연수원 28기) 사무차장은 인력 및 예산 증원 필요성과 관련해 "적시 처리를 위해 헌법연구관과 사무처 심판사무인력을 확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인력 증원과 예비비 확보를 위해 예산 당국과 긴밀히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당장 이번 주 중 법률이 시행되는 점을 고려해 시행 즉시 사무처 직원의 근무부서 조정을 통해 사건 접수와 처리가 차질 없이 이뤄지도록 관련 부서에 임시로 지원 인력을 배치해 운영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 시행일 전 30일 내 확정판결부터…판례 쌓여야 요건 정리될듯
헌재는 우선 전자헌법재판센터 시스템의 재판소원 사건 전자접수 기능을 개발해 시행일에 맞춰 시스템 오픈 준비를 마쳤다. 조만간 홈페이지에 재판소원 청구 방법과 청구서 기재 내용에 대한 상세 안내문도 게시한다.
재판소원은 법 시행일 기준으로 직전 30일 이내에 확정된 판결에 대해 청구할 수 있다. 접수되면 법적 요건을 갖췄는지를 사전에 판단해 청구 요건이 부적법하다고 판단하면 본안 심리 없이 종료한다.
손 처장은 재판소원 적법요건 판단에 대해 "앞으로 구체적 판례를 형성해 나갈 것이라 새로운 적법요건이 제시될 예정"이라며 "그전까지는 기존 헌법소원 적법요건이 적용될 것"이라고 했다.
재판소원은 1, 2심에서 판결이 확정돼도 청구가 가능하다. 손 처장은 다만 "헌법소원은 최후적이고 비상적인 권리구제 절차로, 심급제를 통해 위헌성이 시정될 수 있다면 그 절차를 다 거치고 오라는 게 본질적 부분"이라며 "당사자가 2, 3심을 할 수 있음에도 일부러 일찍 확정하면 보충성 원칙 위반으로 각하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헌재가 법원 판결을 취소할 경우 어떤 심급에서 재판이 이뤄질지는 기본적으로는 청구인이 어느 심급 재판에 재판소원을 청구하는지에 달렸다.
손 처장은 "재판소원은 침해된 기본권과 취소돼야 할 법원 재판을 특정하게 돼 있다"며 "헌재는 어떤 판결이 취소돼야 할지 특정해 그 재판을 취소시켜버리는 것으로, 누가 다시 심판할지는 자명하게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만약 1심에서 기본권 침해가 발생하고 2, 3심에서 시정되지 못해 상소가 기각된 경우 당사자는 그 중 어느 심결이든 선택해 심판 청구를 할 수 있다.
지 차장은 이런 경우 "어떤 기본권이 어느 단계에서 침해됐는지는 이유에서 설시될 것"이라며 "만약 대법 판결 자체가 심판 대상이면 기본적으로는 대법 판결 취소가 원칙적이지만 나머지 부분에 대해선 열려있고 재판부 판단을 봐야 할 일"이라고 했다.
재판 취소시 어느 심급에서 재판이 재개될지와 관련해 법원에선 소송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혀왔으나, 헌재는 "재판을 취소하면 재판은 소급해 효력이 상실되므로 당사자가 상소했는데 그 상태로 법원이 재판을 하지 않는 상태가 유지되는 것과 같다"는 입장이다.
손 처장은 "재판소원 도입으로 기존 법원 절차를 규율할 다른 규정이 필요하단 점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며 "혹시 법원이 발견한다면 협의하고, 저희가 할 문제라면 제도 개선을 통해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연 1만∼1만5천건 예상…"인력증원 예산당국 협의 "
헌재는 1년에 재판소원 1만∼1만5천건이 접수될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 법원의 상고 건수 대비 25∼30%의 불복률을 적용한 수치다. 손 처장은 다만 "헌재는 법원의 법률 적용이나 사실 판단을 다시 들여다보는 게 아닌데 많은 청구가 그런 내용을 다투는 것일 거라 생각한다"며 상당수가 지정재판부 단계에서 각하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존 헌법소원 사건 수도 많은 상황 아니냐는 질문에는 오히려 "재판소원이 도입되면 기존 헌법소원 제도의 무게가 매우 가벼워진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는 당사자가 법원 문을 두드려 보지 않고 헌법소원을 제기한 경우가 많았는데, 앞으로는 법원을 거쳐야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는 권리구제형 헌법소원에는 해당하나, 위헌심사형 헌소에는 해당하지 않는 얘기다. 위헌심사형은 법원 재판을 전제로 한다.
심리 과정에서 재판기록 송수신과 관련해선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각에선 헌재에 법원의 전자기록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아 법원에서 헌재로 종이 기록을 대량배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지 차장은 "헌재법에 따라 심리에 필요한 경우 기록 송부나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며 "현재도 재판기록 사본 제출이나 인증등본 송부 촉탁 형식으로 송수신이 가능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분량이 큰 경우 USB에 담아 제출하는 방안, 법원이 헌재 전자헌법재판센터에 '기관회원'으로 가입해 전자적으로 제출하거나 송달하는 방안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예산 확보 사정에 따라 내부망에 웹하드를 장착해 많은 자료를 송수신할 수 있다고도 했다.
헌재는 효율적 업무 처리를 위해 법원·검찰과 협의를 계속할 계획이다.
헌재는 확정판결에 대한 재판소원으로 법적 안정성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엔 "재판소원 제기로 해당 재판 효력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집행이 가능하고 효력이 유지된다"며 "청구인에게 심각한 불이익이 되는 경우 예외적으로 (가처분과 같은) 잠정적 조치가 가능하단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선 정치인이 당선무효형이 확정돼 보궐선거 후 재판취소 가처분이 되는 경우, 재혼 뒤 앞선 이혼 확정판결 취소시 중혼이 되는지 등 여러 가능성이 제기된다.
손 처장은 "당연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지만 어떻게 적법요건을 만들어 가느냐에 따라 거의 없을 수도, 자주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제했다.
이어 "그 문제는 재판소원 도입으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재판소원을 통해 취소 결정이 생기고 사후 발생하는 법적 문제를 어떻게 정비하느냐의 문제가 남는 것"이라고 했다. 재판소원 사후에 법원이나 헌재가 다툴 수 있는 부분이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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