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리콜 배터리 숨기고 전기차 팔았다…공정위 “소비자 기만 첫 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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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 리콜 배터리 숨기고 전기차 팔았다…공정위 “소비자 기만 첫 제재”

뉴스로드 2026-03-10 15:01:28 신고

벤츠코리아 사장/연합뉴스
벤츠코리아 사장/연합뉴스

[뉴스로드] 메르세데스-벤츠가 화재 위험으로 리콜된 전기차 배터리 셀을 사용하고도 이 사실을 숨긴 채 차량을 판매한 것으로 드러나 역대 최고 수준의 공정거래위원회 제재를 받았다. 공정위는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의도적으로 누락·은폐한 행위를 ‘부당한 고객유인’으로 판단하고, 독일 본사와 한국 판매법인인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를 모두 검찰에 고발했다. 전기차 배터리 정보 조작으로 자동차 제조·판매사가 제재를 받은 것은 처음이다.

공정위는 10일 전원회의 결과를 발표하며 메르세데스벤츠 악티엔게젤샤프트(독일 본사)와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에 총 112억3천9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두 법인은 전기차 EQE·EQS 모델에 중국 파라시스(Parasis)사가 만든 배터리 셀을 탑재하고도, 판매 지침과 영업 과정에서는 마치 중국 CATL(닝더스다이) 배터리 셀이 들어간 것처럼 안내한 것으로 조사됐다.

파라시스 배터리 셀은 2021년 3월 중국에서 화재 위험으로 대규모 리콜을 겪은 이력이 있다. 국내에서 판매된 전기차 가운데 이 셀이 사용된 차량은 EQE와 EQS뿐이었고, 공정위 조사 기간 동안 약 3천대가 판매됐다. 판매 금액은 약 2천810억원에 이른다.

벤츠코리아와 독일 본사는 파라시스 셀 사용 사실을 인지하고도, 2023년 6월 작성·배포한 판매 지침에서 이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CATL을 선택한 이유”, “업계 최고의 기술력”, “전 세계 시장점유율 1위” 등 표현으로 CATL의 우수성을 강조하며, 소비자 문의 시 CATL 배터리의 장점을 적극 홍보하라고 딜러사에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지침에 따라 국내 딜러사들은 실제로 파라시스 셀 탑재 차량임을 모른 채 CATL 셀이 들어갔다고 설명했고, 소비자들은 이를 믿고 구매를 결정했다. 공정위는 “딜러사를 앞세워 영업했더라도 소비자를 기만한 행위의 주체는 제조·판매업자인 벤츠 본사와 벤츠코리아”라고 규정했다.

벤츠의 은폐 행위는 2024년 8월 13일, 차종별 배터리 셀 제조사를 뒤늦게 공개하기 전날까지 이어졌다. 그 직전인 같은 달 1일, 인천 서구 청라지구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주차돼 있던 파라시스 셀 탑재 EQE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차량 수십 대가 전소·손상되면서 논란이 폭발했다. 벤츠는 이 사고로 사회적 비판이 거세지자 다음날에서야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전면 공개했다.

공정위는 배터리 셀 제조사 정보가 “국민의 생명·안전과 직결되는 핵심 정보”라는 점을 강조하며, 공정거래법이 허용하는 최대 수준의 부과 기준율을 적용해 과징금을 산정했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부당한 고객유인 등 불공정거래행위에 관련 매출액의 최대 4%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이번 제재는 위계(僞計)에 의한 고객 유인 사건 가운데 과징금 규모로는 세 번째, 부과율로는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보다 큰 과징금이 부과된 사례는 2024년 쿠팡의 검색 알고리즘 조작 사건(1천628억원)과, 2012년 통신 3사·휴대전화 제조 3사가 휴대전화 출고가를 부풀린 뒤 ‘할인’인 것처럼 판매한 사건(총 463억원)에 그친다.

황원철 공정위 상임위원은 “자동차 제조·판매업자가 전기차 배터리 셀 제조사 정보를 누락·은폐해 소비자를 기만한 행위를 제재한 첫 사례”라며 “딜러사를 매개로 한 기망행위라도 책임은 제조·판매사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결정은 소비자들의 손해배상 소송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공정위에는 “CATL 배터리가 탑재된 것으로 알고 차량을 샀다”는 취지의 민원이 이미 90건 넘게 접수됐다. 공정위는 벤츠의 기망행위와 소비자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상당 부분 확인된 만큼, 집단소송 등 민사 책임을 묻는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벤츠가 배터리 정보를 공개한 이후 파라시스 셀 탑재 모델의 판매량은 CATL 셀 모델에 비해 눈에 띄게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벤츠코리아가 판매지침 작성 전 딜러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약 3분의 1이 “배터리 셀 제조사 정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는 이를 근거로 “배터리 제조사 정보가 구매 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인정했다.

배터리 시장 상황도 두 제조사 간 격차를 뚜렷이 보여준다. CATL은 2024년 기준 세계 배터리 셀 점유율 1위 업체로, 기술력과 인지도, 시장 지배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파라시스는 글로벌 점유율이 1∼2% 수준에 불과해 주요 순위권 밖으로 분류된다. 공정위는 “벤츠가 CATL 브랜드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워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고 리콜 이력이 있는 파라시스 셀을 사실상 ‘숨겨 판’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찰 수사도 불가피해졌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가 판매 지침의 주요 내용을 사전에 독일 본사에 보고했고, 독일 본사가 배터리 관련 내용 보완을 요구하거나 이 지침을 ‘우수 사례’로 선정해 해외 법인에까지 전파한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독일 본사가 불법 행위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했다”고 보고 두 법인 모두를 고발했다.

검찰이 공정위 판단을 토대로 형사 책임을 어디까지 물을지, 또 벤츠가 국내 소비자 신뢰 회복을 위해 어떤 후속 조치를 내놓을지에 업계와 소비자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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