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직장인이 대장암 3기 판정을 받고, 40대 초반의 건강하던 사람이 췌장암으로 쓰러진다. '노인의 병'이라 불리던 소화기 암들이 20~40대 젊은 연령층에서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인 추세일 뿐 아니라 한국은 더욱 두드러진 경향이다.
가장 최근 발표된 2023년 국가암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20~49세 성인의 대장암 발생률은 인구 10만 명당 약 12.9명 수준이다. 최근 10년 사이 20~40대 대장암 발병률은 매년 약 4.2%씩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췌장암은 여전히 60대 이상 고령층에서 가장 많이 발생(약 80%)하지만, 40대 이하에서의 증가세도 심상치 않다. 2023년 발생 기준 국가암통계에 따르면 췌장암 신규 환자 중 40대 이하의 비중은 약 3~5% 내외다. 수치 자체는 낮지만, 지난 20년간의 추이를 보면 젊은 층의 췌장암 발생률은 약 1.5배 이상 증가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한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분석이 눈길을 끈다. 가디언은 최근 유럽과 미국 청장년층 사이에서 벌어지는 20~40대 대장암, 췌장암 급증 현상을 분석하면서, 두 가지 핵심 원인을 꼽았다. 바로 초가공식품 섭취와 그로 인해 파괴되는 장내 미생물 생태계(마이크로바이옴)의 변화다.
초가공식품이란 원재료의 형태를 알 수 없을 만큼 여러 단계의 공정을 거치고, 집에서는 쓰지 않는 착색료·감미료·보존제 등의 화학 첨가물을 대량 넣어 맛과 보존성을 극대화한 식품을 말한다. 소시지, 베이컨, 햄과 같은 가공육, 가당음료, 포장된 스낵, 라면과 즉석 면류, 냉동 간편식(피자, 치킨 너겟 등) 등이다.
핵심 원인 ① 초가공식품 : 매일 먹는 음식이 장 세포를 공격한다
수십 년에 걸친 식습관 변화가 마침내 생물학적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경고는 이제 가설 수준을 넘어섰다.
하버드 의대·매사추세츠 종합병원 공동 연구팀이 2만 9000여 명의 여성 간호사를 대상으로 24년간 추적한 대규모 코호트 연구는 결정적 단서를 제공했다. 초가공식품을 가장 많이 섭취한 참가자들은 가장 적게 먹은 참가자들에 비해 대장암 전구체인 선종 발병 위험이 45% 높았다. 이 결과는 JAMA Oncology에 게재됐다.
체질량지수(BMI), 2형 당뇨, 식이섬유 섭취량 등 다른 위험 인자들을 모두 보정한 후에도 초가공식품과의 연관성은 여전히 유효했다. 단순히 살이 찌거나 당뇨가 생겨서가 아닌, 초가공식품 자체의 독성 효과가 따로 존재한다는 의미다.
초가공식품은 왜 암을 키울까? 초가공식품은 장(대장 포함)에 염증을 유발하여 손상됐을 때 스스로 회복하고 종양을 억제하는 능력을 저하시킨다. 높은 수준의 염증은 일반적으로 암과 관련이 있다. 여기에 더해, 초가공식품은 장내 미생물 생태계와 장 보호막을 변형시켜 만성 염증을 유발하고 대사 과정에서 독성 분자를 생성할 가능성이 있다.
핵심원인 ② 파괴된 장내 미생물 : 어릴 때 심어진 '독'이 30년 후 발화한다
초가공식품이 직접적인 '방아쇠'라면, 장내 미생물 생태계의 붕괴는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된, 어쩌면 유년기부터 시작된 '뇌관'이다.
2025년 4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된 연구 결과가 눈길을 끈다. UC샌디에이고 연구팀이 4개 대륙, 11개국, 981명의 대장암 환자 종양 조직을 분석한 결과, 대장암과 20여 년 전부터 연관돼 온 장내 독소 '콜리박틴(colibactin)'이 젊은 층 대장암 급증에 기여하고 있을 가능성이 확인됐다. 특히 40세 미만의 조기 발병 대장암 환자에서 콜리박틴 관련 DNA 돌연변이가 3.3배 더 흔하게 발견됐다.
특정 대장균(E.coli) 균주가 생산하는 이 독소는 장 세포의 DNA를 직접 손상시키고, 이러한 유전적 병변이 암을 유발하는 돌연변이로 가는 길을 열어준다. 주목할 점은 손상 시점이다. 연구 결과, 참가자들의 콜리박틴 노출은 10세 이전에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초기 '타격'이 사람들로 하여금 대장암을 20~30년 앞당겨 발병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무엇이 이 박테리아를 더 공격적으로 만들까? 가공식품이 많은 식단, 항생제 사용, 장내 세균 전파가 활발한 어린이집 이용 등이 어린 시절 이 미생물의 장착을 촉진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건강한 장내 미생물 생태계는 다양한 세균 종으로 풍성하며, 이 중 많은 종이 단쇄 지방산(SCFA)과 같은 항염증·항암 특성을 가진 유익한 대사산물을 생성한다. 그러나 초가공식품이 많고 섬유질이 적은 식단은 유익균을 고갈시키면서 유해균의 증식을 촉진한다.
이 불균형, 즉 '장내 세균 불균형'은 장 투과성을 높여 유해 세균 부산물이 혈류에 들어가 만성 염증을 유발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암 진행의 핵심 동인이다.
맥마스터대 영양학자 러셀 드 수자 교수는 "초가공식품 섭취를 줄여야 한다. 이런 식품들은 흔히 당분·소금·건강에 해로운 지방으로 가득 차 있지만 영양소는 부족하고, 더 많이 먹도록 설계돼 있다. 가능하면 신선한 통식품(whole food)을 선택하라"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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