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두산아트센터가 매년 봄 선보이는 통합 인문 프로그램 ‘두산인문극장’이 2026년 새로운 주제와 함께 돌아온다. 공연, 전시, 강연을 하나의 흐름 안에 엮어 인간과 사회를 탐구해 온 이 프로그램은 올해 ‘신분류학’을 화두로 삼아 세계를 바라보는 기존의 인식 틀을 다시 정리하려는 시도를 펼친다.
두산인문극장은 2013년 시작 이후 매년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인문학·과학·예술을 교차시키며 동시대의 문제를 사유하는 장을 만들어 왔다. ‘빅 히스토리’, ‘예외’, ‘모험’, ‘갈등’, ‘이타주의자’, ‘아파트’, ‘푸드’, ‘공정’, ‘Age’, ‘권리’, ‘지역’ 등 서로 다른 주제들은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구조와 인간 존재의 조건을 다시 살펴보는 과정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약 13만 명의 관객이 두산아트센터를 찾으며 인문적 사유를 예술적 경험과 연결하는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2026년 두산인문극장은 4월 6일부터 약 4개월 동안 공연 3편, 전시 1개, 강연 8회를 통해 ‘신분류학’이라는 주제를 다층적으로 풀어낸다.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기존의 경계와 구분이 얼마나 유동적인지, 그리고 새로운 인식 틀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사유가 프로그램 전반을 관통한다.
최근 과학 기술의 발전은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포착한 우주의 모습은 기존의 우주론을 재검토하게 만들었고,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장면들이 관측되면서 새로운 설명 체계가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세계를 다시 바라본다고 해서 현실의 문제들이 단순하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국경은 흔들리고 힘의 영향력은 경계를 넘어 작동하며, 번영과 평화, 약자 보호와 같은 가치들 또한 불안정한 균형 위에 놓여 있다. 사회를 지탱해 온 규범과 원칙 역시 다양한 도전에 직면한 상황이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분류’는 단순한 지식의 정리가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작동한다. 분류의 기준은 언제나 임의적이며 완전할 수 없지만, 인간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계를 설정하고 다시 수정해 왔다. 두산인문극장이 제시하는 ‘신분류학’은 바로 이러한 과정에 주목하며 문명과 과학, 생명과 인간, 사회적 약속과 제도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경계를 새롭게 바라보려는 시도다.
강연 프로그램은 총 8회로 진행되며 정치, 사회, 과학, 인문 등 다양한 학문 분야의 연구자들이 참여한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의 ‘문명과 야만 사이의 한국: 정체성에 대하여’를 시작으로 이준호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의 ‘생물과 무생물: 경계를 허무는 생명과학의 시대’, 이동신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의 ‘포스트휴먼 경계학: 사라지는 인간, 드러나는 비인간’, 임종태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의 ‘서양과 동양의 과학: 그 이분법을 넘어서’가 이어진다.
또한 이상길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의 ‘미디어와 언론: 연결에서 파열로’, 손화철 한동대 교양학부 교수의 ‘놀이의 죽음: 첨단기술 시대의 노동과 놀이’, 전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교수의 ‘인공지능과 미래 예측: 판단하는 인간, 예측하는 기계’, 김기창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유죄와 무죄: 그 연약한 구분’이 이어지며 다양한 학문적 관점에서 경계와 구분의 문제를 조명한다.
공연 프로그램은 세 편의 연극으로 구성된다. 첫 작품 ‘모어 라이프’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인공 신체로 되살아난 한 여성이 실험실 밖으로 나오면서 겪게 되는 사건들을 다룬다. 죽음을 넘어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시대라는 가정 속에서 인간의 조건과 자아 정체성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연극 ‘원칙’은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새로운 교장이 절차와 규칙을 중시하는 교칙을 도입하면서 벌어지는 갈등을 그린다. 기존의 자유로운 교육 방식을 유지하려는 교감과 학생, 교사들이 충돌하는 과정 속에서 공동체가 공유해 온 기준과 규칙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하는지를 보여준다.
연극 ‘나는 나의 아내다’는 ‘두산인문극장 2013: 빅 히스토리’를 통해 초연된 작품으로 한 배우가 35개의 역할을 오가는 모노드라마 형식으로 진행된다.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극중 ‘샤로테’의 삶을 통해 기존의 어떠한 분류 기준으로도 단순히 정의되기 어려운 인간 존재의 복합성을 드러낸다.
전시 ‘3개국어’는 인간을 규정하는 분류 체계를 시각예술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전시 제목은 실제 존재했던 한 사람의 별명인 ‘3개국어 할머니’에서 출발했다. 국적, 성별, 언어, 나이처럼 인간을 설명한다고 여겨지는 기준들이 얼마나 유동적인지 살펴보며 김익현, 임영주, 조은영, 정서영 작가의 작업을 통해 고정된 분류 방식에서 벗어난 다양한 시선을 제시한다.
두산인문극장은 관객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도 함께 마련했다. 강연에는 실시간 한글 자막이 제공되며 전시는 음성 소개를 별도로 운영한다. 공연의 경우 수어 통역, 한글 자막 해설, 음성 소개, 터치 투어 등 다양한 접근성 프로그램이 마련되며 운영 방식은 작품마다 다르게 적용된다.
두산연강재단 두산아트센터는 두산 창립 111주년을 기념해 2007년 문을 열었다. 연강홀과 Space111, 두산갤러리를 중심으로 공연과 전시를 선보이며 젊은 예술가들의 새로운 시도를 지원해 왔다. 공연, 전시, 교육 프로그램 등 연간 약 40여 개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예술과 인문학이 교차하는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백상예술대상 ‘백상 연극상’, 동아연극상 ‘특별상’, 대한민국연극대상 ‘예술문화후원상’, 대한민국 디지털경영혁신대상 콘텐츠 대상, 메세나 대상 ‘창의상’ 등을 수상하며 문화예술계에서 의미 있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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