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리티지 인터뷰 | 90주년을 앞둔 로저 비비에의 꿈결같은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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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티지 인터뷰 | 90주년을 앞둔 로저 비비에의 꿈결같은 상상

마리끌레르 2026-03-10 12:14:13 신고

로저 비비에의 세계는 언제나 꿈과 현실이 맞닿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창립자의 유산을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하고 있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게라르도 펠로니(Gherardo Felloni)에게 그 연결은 과거를 답습하는 일이 아니라 오래된 대화를 오늘의 감각으로 새롭게 이어가는 과정에 가깝다. 그는 아카이브를 현재의 작업 곁으로 끌어오고, 영화적 상상력과 여성들의 실제 삶을 디자인에 스며들게 하며 메종의 언어를 확장해왔다. 신발이 감정과 태도를 바꾸는 매개가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게라르도 펠로니는 디자이너 로저 비비에의 유산 위에 새로운 이야기를 써나가고 있다.

메종의 아카이브와 창립자 로저 비비에의 세계를 조명한 책.



Gherardo Felloni

ROGER VIVIER Creative Director

MC 만나서 반갑습니다. 새로운 보금자리인 메종 비비에를 오픈한지 벌써 3개월이 지났어요. 오피스와 아카이브, 쇼룸이 한 공간에 자리하면서 작업 방식에 변화한 점이 있나요?

Gherardo Felloni 디자인을 할 때 과거의 작품이나 스케치를 바로 꺼내 참고할 수 있어 훨씬 직관적이면서도 정교하게 작업할 수 있게 됐어요. 아카이브를 학자와 학생들에게도 개방하고 있고요. 그들은 로저 비비에를 ‘살아 있는 헤리티지’로 바라보며 연구하고, 그 과정이 메종을 문화적 공간으로 확장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MC 리촐리 출판사를 통해 아카이브 북을 선보였죠. 지금처럼 콘텐츠가 빠르게 소비되는 시대에 책이라는 느린 매체를 선택했어요.

GF 책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오브제고 오래 남잖아요. 이미지는 몇 초 만에 소비되지만 책은 시간을 들여야 하죠. 몇 년 뒤 다시 펼쳤을 때도 그 안에서 새로운 영감을 발견할 수 있고요. 빠른 흐름에 휩쓸리기보다 깊이를 선택하겠다는 일종의 선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MC 이 책은 전통적인 연대기순이 아니라 ‘헤리티지의 살롱(Le Salon de l’Héritage)’, ‘형태의 살롱(Le Salon des Formes)’, ‘장식의 살롱(Le Salon de l’Ornement)’, ‘명성의 살롱(Le Salon de la Célébrité)’, ‘상상의 살롱(Le Salon de l’Imaginaire)’ 이렇게 총 5개의 살롱으로 흥미롭게 구성되었습니다. 이 구조를 선택한 이유, 그리고 이 책이 무슈 로저 비비에의 창작 정신을 어떻게 보여준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GF 18세기 파리의 문학 살롱 문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딱딱한 설명 대신 여러 목소리를 모아 책 전체에 생동감을 불어넣으려 했죠. 서로 영감을 주고받던 파리 살롱의 대화처럼 흐르는 각 장을 통해 로저 비비에가 늘 패션과 영화, 예술, 그리고 삶이 만나는 지점에 존재해왔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무슈 비비에는 끊임없이 새로움을 찾은 미학자였어요. ‘버귤(Virgule)’이나 ‘비브 쇼크(Viv’ Choc)’처럼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힐과 형태를 선보였고, 금속과 PVC, 크리스털, 깃털 등 예상 밖의 소재와 비율을 실험하는 데도 주저함이 없었죠. 기술적 정밀성과 자유로운 상상력이 결합된 이 태도가 오늘날 로저 비비에를 정의한다고 생각합니다.

MC 이번 프로젝트를 계기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자신의 역할을 새롭게 인식한 부분이 있나요?

GF 무슈 비비에는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다고 믿은 인물이에요. “발에 꿈을 신는 순간, 꿈은 현실이 되기 시작한다. (To wear dreams on one’s feet is to begin to give a reality to one’s dreams.)” 그의 말처럼, 그에게 신발은 단순한 액세서리가 아니라 상상을 현실로 바꾸는 매개체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장인정신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죠. 책을 보며 제 역할은 새로운 비전을 앞세우기보다, 오래된 유산을 오늘의 언어로 연결하고 미래로 이어가는 일이라는 걸 더 분명히 느꼈어요.

MC 아카이브를 통해 무슈 비비에의 작업을 가까이에서 접하며, 오늘의 메종과 맞닿는다고 느껴지는 지점이 있었나요?

GF 늘 그의 사고방식이 지금 봐도 놀라울 만큼 현대적이라고 느껴요. 그는 과거를 반복하기보다 언제나 자신의 ‘현재’를 디자인한 사람이죠. 아카이브를 개방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에요. 젊은 세대가 이 유산을 그대로 따라 하기보다 질문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새롭게 해석하길 바라기 때문이죠. 결국 무슈 비비에와의 진정한 연결은 형태를 복제하는 데 있지 않고, 호기심과 열린 시선이라는 태도를 공유하는 데 있다고 생각해요.

MC 로저 비비에를 떠올리면 어떤 순간이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

GF 아주 개인적인 기억이에요. 커리어를 시작하기 훨씬 전, 책에서 분홍색 버귤 힐을 처음 본 순간이요. 그 이미지는 신발을 바라보는 제 시선을 완전히 바꿨어요. 구두가 단순한 신발이 아니라 감정과 상상력, 건축미까지 담아낼 수 있는 작은 오브제라는 사실을 그때 처음 깨달았죠.

MC 매년 오트 쿠튀르 기간에 선보이는 ‘피스 유니크 컬렉션’은 책의 내용이 실제로 구현되는 장이기도 합니다. 아카이브에서 출발한 구체적인 요소 하나를 예로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GF 무슈 비비에는 핑크색 지브라, 그린과 푸크시아 컬러 타이거처럼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의 세계 안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동물 모티프를 자유롭게 표현했어요. 이번 2026 S/S 컬렉션에서는 그 요소들을 쿠튀르 정신으로 재해석했죠. 자수와 표면 처리, 다양한 소재의 조합을 통해 아카이브의 코드를 입체적 오브제로 완성했어요. 각 피스는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제작하며 완성하기까지 60시간에서 1백 시간이 소요됩니다. 상상력과 장인정신, 그리고 오늘날의 감각이 만날 때 아카이브가 얼마나 동시대적으로 되살아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컬렉션이라고 생각해요.

MC 아카이브의 명징한 유산이 때론 크리에이션의 제약으로 느껴진 적은 없나요?

GF 거의 없어요.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지금 봐도 전혀 낡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가시처럼 뾰족한 ‘에핀(Épine)’ 힐이나 구 형태의 ‘마를렌(Marlene)’ 힐을 떠올려보세요. 실험과 자유가 언제나 메종의 DNA라는 걸 보여주죠.

MC 당신이 정의하는 로저 비비에의 ‘헤리티지’란 무엇인가요?

GF 시대에 적응하며 나아가는 것. 제가 메종에 합류하자마자 스니커즈를 선보인 이유도, 무슈 비비에 역시 분명 자신만의 방식으로 스니커즈를 디자인하고 싶어 했을 거라 믿기 때문이었죠.

MC 앞으로 하우스의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기억될 당신의 ‘오리지널리티’가 담긴 아이템을 고른다면요?

GF ‘아이 러브 비비에(I Love Vivier)’요. 제가 처음 선보인 실루엣인데, 반응이 좋아서 무척 기뻐요. 제 디자인 방식을 잘 보여주는 아이템이기도 하고요. 역사적인 버귤 힐의 곡선을 더 길게 현대적으로 변형했고, 하트 모양의 데코르테 입구가 다리 라인을 부드러워 보이게 하는 제품이에요. 감성적이면서도 그래픽적 요소가 공존하는데, 이런 균형은 제가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입니다.

MC 먼 훗날 로저 비비에라는 책에서 게라르도 펠로니라는 챕터가 어떻게 묘사되길 바라나요?

GF 컬러와 여성성, 뚜렷한 개성을 바탕으로 영화적 상상력과 여성들의 실제 삶을 연결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기억되고 싶어요. 여성들의 일상에서 살아 움직이는 디자인을 남기고 싶습니다.

1953
ROGER VIVIER FOR QUEEN ELIZABETH II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을 위해 신발 디자인을 맡은 로저 비비에. 영국 디자이너를 선호하던 전통을 깨고 치열한 경쟁 끝에 선택됐다. 그 후 루비를 세팅한 금빛 레더 샌들은 프랑스 패션의 상징으로 남았다.

1960
ROGER VIVIER FOR CHRISTIAN DIOR

당시 미국 슈즈 브랜드 델먼과 독점 계약을 맺고 있었지만, 크리스챤 디올과의 협업을 추진했다. 로저 비비에는 디올 고객을 위한 맞춤 슈즈와 패션쇼 모델을 디자인하며 하우스 내에 전속 아틀리에를 운영했다.

1963
VIRGULE HEEL

1963년 로저 비비에는 상징적인 버귤 힐을 공개했다. ‘쉼표’를 뜻하는 이름처럼 앞으로 뻗다가 우아하게 휘어지는 곡선으로 새로운 힐의 형태를 제시했다.

1965
BELLE VIVIER

로저 비비에는 이브 생 로랑의 몬드리안 컬렉션을 위해 크롬 모티프가 돋보이는 블랙 레더 펌프스를 디자인했다. 이후 카트린 드뇌브가 이 구두를 신고 출연한 영화 <벨 드 주르>의 인기에 힘입어 ‘벨 비비에’라는 이름으로 널리 사랑받았다.

1992
TALON ÉPIN

장미에서 영감을 받아 수십 년간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인 로저 비비에. 1992년에는 가느다란 장미 줄기와 가시를 형상화한 ‘탈롱 에핀’ 힐을 공개했다. 연약함과 대담함을 동시에 담아낸 아이코닉한 디자인이다.

2019
I LOVE VIVIER

게라르도 펠로니가 아카이브의 버귤 힐에서 영감을 받아 선보인 ‘아이 러브 비비에’ 컬렉션. 부드러운 스웨이드와 레드 하트 디테일이 특징으로, 우아함과 장난기 어린 로맨티시즘이 어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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