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신양, 14년간의 회화 작업 집대성한 대규모 개인전… ‘박신양의 전시쑈: 제4의 벽’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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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신양, 14년간의 회화 작업 집대성한 대규모 개인전… ‘박신양의 전시쑈: 제4의 벽’ 개최

문화매거진 2026-03-10 11:17:06 신고

▲ 세종문화회관, 배우 박신양 개인전 '박신양의 전시쑈: 제4의 벽' 포스터 
▲ 세종문화회관, 배우 박신양 개인전 '박신양의 전시쑈: 제4의 벽' 포스터 


[문화매거진=황명열 기자] 무대 위 캐릭터에 완벽히 몰입하는 ‘메소드 연기’의 대명사, 배우 박신양이 이제 캔버스 앞에서 관객과 마주한다. 배우가 아닌 인간 박신양의 14년간의 예술적 탐구를 집대성한 개인전 ‘박신양의 전시쑈: 제4의 벽’이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막을 올렸다.

이번 전시는 2023년 평택 엠엠(mM)아트센터에서 열린 첫 개인전의 연장선이자 서울에서 처음 개최되는 대규모 전시다. 제목 ‘제4의 벽’은 무대와 객석 사이에 존재한다고 가정되는 가상의 벽을 뜻하는 연극 용어다. 박신양은 이 경계를 허물고 관람객을 자신의 작업 세계와 감정의 깊은 층위로 초대한다.

▲ 전시 전경 / 사진: 세종문화회관 제공 
▲ 전시 전경 / 사진: 세종문화회관 제공 


공간 구성부터 기존 미술관의 관습을 과감히 벗어난다. 흔히 ‘화이트 큐브’라 불리는 정제된 전시 환경 대신, 전시장 벽면을 건설 현장에서 사용하는 거푸집 ‘유로폼’ 1,500여 개로 둘러싸 거칠고 생생한 작업실 분위기를 재현했다. 관람객이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작가의 창작 현장 속으로 들어온 듯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장치다.

▲ '박신양의 전시쑈: 제4의 벽' 개막에 앞서 자신의 작품 '투우사 3'을 설명하고 있다 / 사진: 민음사 제공
▲ '박신양의 전시쑈: 제4의 벽' 개막에 앞서 자신의 작품 '투우사 3'을 설명하고 있다 / 사진: 민음사 제공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장치는 배우들의 참여다. 15명의 배우가 ‘정령’으로 등장해 전시장 곳곳을 누비며 작품과 관객 사이를 매개한다. 동화 ‘호두까기 인형’에서 영감을 받은 이들은 작가가 자리를 비운 사이 살아 움직이는 붓과 물감, 팔레트의 정령들로 설정됐다. 광대 분장을 한 배우들은 그림 속 동작을 흉내 내거나 자신들만의 언어로 소통하며 관람객의 능동적인 참여를 유도한다.

박신양 작가는 “전시는 보통 작품을 바라보는 평면적 구조이지만, 이번 전시는 작가의 작업장에 초대되어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함께 경험하는 방식”이라며 “사람들을 덜 긴장하게 만들고 싶어 ‘전시’라는 말 대신 ‘쑈’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설명했다.

200여 점의 작품은 배우로서 40년, 화가로서 14년을 살아온 그의 내면을 비추는 기록과 같다. 대표 연작 ‘투우사’ 시리즈는 표현이라는 행위를 투우사가 맞서는 ‘소’에 비유한 작업이다. 거친 소와 마주 선 투우사의 긴장된 눈빛에는 무대 위에서 완벽을 추구해야 했던 배우 박신양의 고독과 압박이 스며 있다. 작가는 투우사와 소라는 양극단의 존재가 결국 모두 자기 자신임을 고백하며, 겹겹이 쌓인 붓질로 강렬한 에너지를 화면에 분출한다.

▲ 박신양 '당나귀 13', 2017, oil on canvas, 150F, 2273×1621cm / 사진: 민음사 제공
▲ 박신양 '당나귀 13', 2017, oil on canvas, 150F, 2273×1621cm / 사진: 민음사 제공


인간의 실존적 고뇌는 ‘당나귀’ 연작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묵묵히 짐을 지고 길을 걷는 당나귀의 뒷모습에서 예술가이자 한 인간으로서 짊어진 삶의 무게를 발견했다. 짐을 지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끝내 걸음을 멈추지 않는 당나귀의 형상은, 스스로를 위로하고 긍정하는 작가의 태도를 상징한다.

사물을 바라보는 그의 독특한 시선은 ‘사과’ 연작에서도 드러난다. 초등학교 시절 “사과를 사과답게 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혼이 났던 기억은 오히려 그를 다시 붓 앞에 서게 만들었다. 작가는 예쁘고 빨간 사과가 아닌 작업실 구석에서 천천히 시들고 썩어가는 사과의 변화를 포착했다. 그는 “동그랗고 빨개야만 사과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해체되고 일그러진 형상 속에서 사과의 본질을 탐색한다.

특히 이번 전시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키릴’ 연작은 러시아 유학 시절 예술을 논하던 친구에 대한 깊은 그리움에서 탄생했다. 작가는 대상의 외형을 규정하는 ‘선’을 과감히 지워버리고 색채와 질감의 중첩만으로 감정을 표현했다. 이는 단순한 인물화가 아니라, 가장 순수하게 예술에 몰입했던 시기의 감각을 복원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박신양이 그림을 시작한 계기도 개인적인 위기와 맞닿아 있다. 그는 14년 전 허리 수술과 갑상선 이상으로 건강이 악화되며 ‘그리움’이라는 감정과 마주하게 됐고, 이를 치유하기 위해 붓을 들었다. 그는 “그림에서 선(線)은 거짓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대상에는 선이 없기 때문”이라며 짧고 빠른 터치를 겹겹이 쌓아 올리는 독특한 화풍을 구축해 왔다.

이번 전시와 함께 에세이집 ‘감정의 발견: 우리는 모두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도 출간됐다. 책에는 예술을 통해 감정을 성찰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딸에게 보내는 편지, 미술 전문가들의 비평이 담겼다. 그는 “그림을 판매하게 되면 작품 외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줄어든다”며 이번 전시에서도 작품을 판매하지 않는 원칙을 유지했다.

일부 평단에서는 연극적 장치와 회화적 메시지가 다소 분리되어 보일 수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박신양의 시도는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고 관객에게 ‘나도 그려보고 싶다’는 감각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실험으로 평가된다.

배우와 화가라는 두 정체성이 충돌하며 탄생한 이번 ‘전시쑈’는 오는 5월 10일까지 이어진다. 관람료는 성인 기준 2만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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