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 레퍼런스① 작업의 단서에 이어
[문화매거진=MIA 작가] 레퍼런스는 어디서,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답은 그리 어렵지 않다. 사실상 곳곳에 널려 있다. 그만큼 레퍼런스를 찾는 방법에는 특별한 게 없다. 대표적으로 이미지 검색 사이트를 뒤져 보거나 작업 노트 쓰기, 산책하기, 전시 보기 등이 있다. 나의 경우 여기에 과거의 작업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까지 레퍼런스를 탐색하는 방법에 포함하는 편이다.
가장 먼저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기. 아주 일상적인 행위라 만만해 보이지만, 이 일에도 나름 훈련이 필요하다. 나는 특히 대학교 시절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지독한 훈련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 지독함이란, 방법적인 면에서 거창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소위 말하는 ‘뻘짓’에 버금가는 일이 많았다는 뜻이다.
과제를 하는 시간 대부분은 작업에 불필요하게 여겨지는, 다소 광범위한 자료에까지 손을 대는 방식으로 낭비되었다. 이건 내가 주로 이용하는 이미지 검색 사이트인 핀터레스트라는 플랫폼의 특징도 한몫하는 것 같다. 가령 핀터레스트에서 몇 장의 이미지를 저장하면, 알고리즘은 곧바로 사용자의 취향을 파악해 비슷한 이미지들을 끝없이 보여준다. 마치 원했던 것처럼 느껴지는 이미지들이 계속 등장하는 탓에 중심 콘셉트가 뭐였는지 생각나지 않을 지경에 이르러 다시 초반에 저장했던 이미지로 돌아오는 일이 다반사였다.
지금은 해결 방법을 찾았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보는 시간과 저장하는 이미지 개수에 아예 제한을 두는 것이다. 너무 간단한 해법이지만 여기에 다다르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물론 작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자료만을 찾는 일은 이상적인 바람일 수도 있다. 내가 ‘뻘짓’이라 여긴 엉뚱하고 이상한 시간에서 의외로 반짝이는 무엇을 발견할 수도 있고, 그런 불필요함이 필연적으로 개입하는 게 바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과정의 특성이기도 하니 말이다. 다만 생각의 확장이 걷잡을 수 없어지면 초기의 좋은 아이디어가 퇴색되고 그것을 회복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 그러니 리서치 기간이나 시간에 제한 시간을 두는 선택은 여전히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렇게 조건의 제약을 두는 것에서 나아가, 레퍼런스를 잘 정리해 보려는 노력의 하나로 자료를 찾으면서 작업 노트 작성을 병행하는 습관을 자연스럽게 들였다. 이때의 노트는 하나의 제동 장치다. 시각이 직관적으로 매력적인 이미지를 빠르게 쫓아가기 바쁠 때, 작업노트를 쓰면서는 어떤 아이디어를 선택하고 버려야 할지 판가름한다.
반대로 산책은, 앞의 노력들을 조금은 뭉뚱그리는 시간이다. 산책할 때만큼은 본 자료와 적어둔 낱낱의 생각의 제동을 풀고 어디로든 흘러가게 만든다. 산책이 그런 것이라고 의식적으로 되새김하거나 떠올리는 건 아니지만, 작업에 집중하는 시기에는 저절로 그렇게 된다. 무엇인가 선명하게 붙잡으려는 노력이 불가능한 상황일 때, 오히려 불필요한 요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자취를 감추고 정말 필요한 하나의 생각만이 선명해질 때가 있다. 산책은 그런 순간을 선사한다.
특정한 공간을 몸으로 통과한다는 점에서 전시 관람은 산책과 결을 같이 한다. 때로는 전시 콘텐츠 그 자체보다 전시장에 머무는 행위에 목적을 두기도 한다. 산책이 무분별하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 속에서 영감을 또렷하게 만들어 준다면, 전시 관람은 ‘덜 열린’ 길과 제한된 공간을 걷는 과정에서 또 다른 종류의 힌트를 남긴다. 두 행위의 공통점은 특별한 기대도, 명확한 목적도 없이 걷는 시간 속에서 엉켰던 생각들을 환기하는 데 있다.
마지막으로, 의외의 레퍼런스 탐색 방법은 과거 자신의 작업을 다시 들여다 보는 일이다. 완료된 작품은 물질적으로 하나도 변한 것이 없지만, 현재로 호명되면 희한하게도 내게 새로운 질문을 시도한다. 전에 듣지 못했던 질문이라기보다는 늘 품고 있었으나 잊어버렸기 때문에 반복할 때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는 차원의 그런 질문들 말이다.
이 과정에서 새로움은 의외로 별것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이는 무척 중요한 지점이라는 걸 작업을 거듭할수록 확신하게 된다. 어제 그린 그림을 다시 그리는 행위조차 새로움이 될 수 있다면 소위 ‘중요한 작업'이나 ‘아름다운 작업'이라는 수식어는 그리 대단할 게 없어진다. 그저 하던 일을 묵묵히 반복하는 것. 다음으로 나아가는 힘은 묵직한 결심이 아니라, 어제의 작은 낙서라도 오늘 다시 반복하는 사소함에서 나온다. 과거의 내 작업을 레퍼런스 삼는다는 것의 진짜 의미는, 그 반복 속에서 멈추지 않고 작업을 계속해 나갈 동력을 얻는 일과 맞닿아 있다.
Copyright ⓒ 문화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