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예술이 만나면 어떤 작품이 탄생할까? 수림문화재단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고등과학원(KIAS)과 함께 격년으로 과학 · 예술 융복합 전시를 이어오고 있다. 오는 4월 4일까지 김희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도파민 하이프〉는 현대인의 행동과 감정, 나아가 사회구조까지 움직이는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이 주제다. 이를 토대로 과도한 자극과 기대, 쾌락과 피로가 뒤얽힌 시대적 풍경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전시의 중심에는 서로 다른 영역을 깊이 파고든 두 인물, 미술가 정소영과 뇌과학자 장재선의 오랜 대화가 있다. 여기에 오디오 비주얼 프로덕션 컬렉티브 ‘업체’와 양자물리학자 최상국, 미디어 작가 그룹 ‘무진형제’, 극단 ‘다페르튜토 스튜디오’도 참여해 서로 다른 분야가 한 공간에서 만들어내는 낯설고도 새로운 감각을 확장했다. 정소영 작가와 장재선 박사의 만남, 그 어디에도 없던 그들의 특별한 협업 스토리를 들어보았다.
근래에 도파민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양상을 살펴보면, 약물 혹은 SNS 중독 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도파민이라는 전시 주제를 어떻게 받아들였나요?
장재선 도파민은 정말 흥미로운 주제예요.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쇼츠를 볼 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기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가 혐오스러워지는 경험을 하잖아요. 전시를 통해 사람들이 도파민의 아이러니한 측면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했어요.
정소영 도파민은 너무 쉽게 쓰이다 보니 그 의미가 많이 희석된 것 같아요. 세로토닌이나 아드레날린이라는 물질도 있는데 유독 도파민이 유행하는 지금의 현실이 제겐 한 편의 ‘시대상’처럼 느껴지거든요. 때마침 반가운 주제였죠.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행위와 도파민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장재선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자극을 받을 때 우리 몸에서는 도파민이 분비됩니다. 생존이 위협당할 때 땀과 함께 흐르는 아드레날린과 달리 도파민은 기대를 벗어난 놀라움과 기쁨에서 비롯하죠. 우리는 압도적인 규모나 아름다운 작품을 보면 감탄하게 됩니다. 심지어 잔혹한 이미지에서도 경탄을 느낄 수 있어요. 일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자극을 제공한다는 점이야말로 미술의 순기능입니다. 못 보던 것을 보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역할이죠.
1년간의 대화를 통해 작품을 완성했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방식의 협업을 이전에도 경험해본 적이 있나요? 두 분께 어떤 경험으로 남았는지 궁금합니다.
장재선 처음 해보는 형식의 협업이었어요. 하지만 영화, 음악, 공연 등 예술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예술이 만들어내는 감정은 결국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기에 뇌과학은 예술과 만나기 좋은 분야라고 늘 생각해왔고요. 작가님의 작품 세계를 처음 접했을 때는 예상 밖의 설치 작품도 많아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협업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과 기대가 동시에 들었습니다. 첫 만남은 작년 5월 김희수아트센터에서였는데,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흥미로운 이야기가 이어졌어요. 그렇게 가을까지 이어진 긴 대화가 작품으로 발전했습니다.
정소영 과학자와 함께한 건 처음이 아니지만, 이렇게 긴 시간 대화를 축적해가며 작품으로 발전시킨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과거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서 한국해양과학기술원 거제 해양시료도서관 연구자들과 협업한 적이 있고, 지질학자나 미생물학자에게 자문도 받았죠. 장재선 박사님과의 대화를 통해 인문 · 예술과 과학이 생각보다 깊은 접점을 갖고 있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인간을 연구함으로써 인간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말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그 당시 마침 과학자 아닐 세스의 〈Being You〉를 읽고 있었는데, “현실은 우리가 함께 동의하는 시뮬레이션”이라는 명제에 서로 크게 공감했습니다. 예술 역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믿는 체계’라는 점에서 과학과 닮았다고 느꼈어요.
그러한 공감과 논의 끝에 설치 작품 ‘우리는 예측을 현실로 구현한다(We Predict into Existence)’를 완성했습니다. 실제 전시장에서 마주하니 어땠나요? 함께 나눈 대화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을 텐데요.
장재선 도파민 중독의 원리에 대해 작가님께 여러 번 설명하면서, 그걸 그대로 시각화하면 미술관이 아니라 과학관 전시가 되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어요.(웃음) 그런데 전시장에서 작품을 마주했을 때, 핵심 메시지를 감각적으로 풀어낸 모습이 새롭고 반가웠습니다.
정소영 초반의 대화는 ‘도파민 중독’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어요. 요즘 “도파민 터진다”는 표현을 흔히 쓰는 현상에 집중해 우리가 어떻게 쾌락과 즐거움을 얻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었죠.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저는 장 박사님의 태도, 그러니까 뇌과학이 존재하는 이유와,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려는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더 관심이 갔습니다. 이전 작업에서는 주로 물질을 다루며 그 안에 담긴 서사를 드러냈지만, 이번엔 색과 빛, 원 같은 단순한 요소로 시각적 경험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택했어요. 반짝이는 조명이나 물의 미세한 움직임처럼 미묘한 시각 경험을 체험할 수 있죠.
도파민의 순환에 관한 이번 작품은 ‘우리의 의식적 경험이 뇌의 예측 과정에서 비롯된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 관점에 대해 좀 더 쉽게 설명해주시겠어요?
장재선 살아가기 위해 뇌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측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현대인이 원시시대처럼 동물에게 쫓기고 있진 않으나 우리 뇌는 만년 전과 다르지 않습니다. 일종의 보상을 받으며 현대사회로 진화하다 보니 보상회로가 가속화된 것뿐이죠. 스마트폰으로 짧은 영상을 계속 보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재밌을 거라는 예측, 그 예측이 맞아떨어졌을 때 주어지는 보상이 반복되니 계속 보게 되는 것이죠. 우리 뇌는 지금도 모든 상황을 예측하기 위해 기능하고 있습니다.
정소영 프리초프 카프라의 철학서 〈현대 물리학과 동양 사상(The Tao of Physics)〉처럼 동양 사상과 현대 물리가 만나는 지점을 살펴보면,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려는 방식은 시대마다 다르지만 그 본질은 같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과거에는 점성술이 세계를 설명하는 체계였다면, 지금은 데이터와 경제가 새로운 권력이 됐으니까요. 이번 작품은 결핍을 채우기 위한 쾌락이 도파민과 연결된다는 지점에서 출발, 인지적 감각에 대한 생각을 벽화와 빛으로 공간에 펼쳐 보인 결과예요. 과학이 바라보는 예술이 아니라 ‘예술가가 바라보는 과학’을 보여주고자 했죠. 컵에 물이 가득 차올랐다 빠지기를 반복하며 끊임없이 반복되는 도파민 메커니즘을 표현한 ‘Warm and Blue’를 보고 있으면 우리 뇌와 마음의 심연이 떠올라요. 물이 들어가고 나가는 것을 명상하듯 바라보면 뇌과학적 작동 원리를 자연스레 체감할 수 있을 거예요.
작품과 전시를 본 관람객이 얻어 가길 바라는 궁극적 메시지가 있나요?
정소영 그동안은 작업하며 소위 ‘대단한 것’들을 찾아다녔어요. 주상절리 같은 거대한 지질구조를 보며 지구의 시간을 생각하던 시기도 있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 단지 컵에 물이 채워졌다가 비워지는 장면만 봐도 그 안에 삶과 죽음의 리듬이 담겨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컵이 겹치며 생기는 교집합,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호흡과 반복의 리듬을 보며 일상에서 세계와 교감하는 방식에 더 관심이 생겼어요. 작은 것에 집중할 때 오히려 뇌가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이번 작품을 통해 관람객도 ‘지금 살아 있다’는 감각을 잠시나마 경험해보면 좋겠습니다.
흔히 과학자에게는 예술가의 상상력이, 예술가에게는 과학자의 탐구열이 필요하다고 하죠. 두 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무관한 듯 보이던 과학과 예술이 한층 가까워진 느낌입니다.
정소영 오래전에는 수학, 과학, 예술이 한 덩어리였잖아요. 지금은 각 분야가 세분화되며 과학이 산업과 연결되어 예술과 멀어진 듯 보이지만, 저는 결국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장 박사님의 과학적 태도가 무척 흥미로웠어요. 환경과 조건을 관측하고, 가능성을 탐색해 ‘결론’을 남기는 연구 방식은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장재선 보통 과학이라 하면 수식부터 떠올리지만, 사실 그림과 구조 같은 강한 시각적 요소가 깊이 자리한 분야입니다. 과학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결정적 순간들이 도리어 미적 감각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하늘에 닿는 돔을 만들고자 한 욕망에서 건축이 발전했고, 미술 분야에서는 원하는 색을 내기 위해 중세부터 물질과 재료를 끝없이 실험했으니까요. 결국 예술과 과학은 서로 다른 언어를 쓰지만, 모두 인간의 본능과 밀접한 관계라는 점에서 깊이 연결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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