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조별리그 11타점 수확해 2009년 김태균과 한국 최다 타이
박상영 빙의한 '할 수 있다' 포효…"대회 전 긴장했는데 시원해"
(도쿄=연합뉴스) 이대호 기자 = 한국 야구가 기나긴 조별리그 탈락의 늪에서 벗어나 17년 만에 상위 무대를 밟는다.
쾌거의 중심에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역대 한국 타자 최다 타점 타이기록을 세우며 '한국의 보물'로 우뚝 선 문보경(LG 트윈스)이 있다.
한국 야구대표팀은 9일 일본 도쿄 도쿄돔에서 열린 2026 WBC C조 조별리그 호주와의 최종전에서 7-2로 승리했다.
승리의 일등 공신은 단연 문보경이었다.
문보경은 5타수 3안타 1홈런 4타점의 맹타를 휘두르며 타선을 이끌었다.
특히 0-0으로 맞선 2회초 LG 트윈스 동료이기도 한 라클란 웰스를 상대로 선제 2점 아치를 그린 뒤 더그아웃을 향해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펜싱 금메달리스트 박상영을 연상케 하는 "할 수 있다"를 포효해 명장면을 탄생시켰다.
조별리그에서만 타율 0.538, 2홈런, 11타점, OPS(출루율+장타율) 1.779라는 게임 같은 성적을 낸 문보경은 2009년 대회에서 김태균이 세운 한국 타자 단일 WBC 최다 타점(11개)과 벌써 어깨를 나란히 했다.
경기가 끝난 뒤 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난 문보경의 얼굴에는 홀가분함과 기쁨이 교차했다.
취재진이 8강 진출을 확정한 순간의 기분을 묻자 그는 "소속팀 LG가 우승했을 때보다 더 좋았다는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다"며 벅찬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눈물을 흘렸냐는 질문에는 "네"라고 웃으며 답한 뒤 "막혀있던 게 뚫린 느낌이다. 대회 전부터 걱정도 많고 긴장도 많이 했는데 엄청 시원하게 뚫렸다"고 털어놨다.
그간 국제대회 부진으로 '우물 안 개구리'라는 뼈아픈 비판을 들어야 했던 한국 야구다.
문보경은 "8강에 올라가서 한국 팬들이 좋아하시고, 야구 인기가 더 올라간다면 좋을 것 같다"며 "일단 우리가 증명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서 좋다"고 힘주어 말했다.
현재 압도적인 페이스로 WBC 타점 1위를 달리고 있어도 본인은 덤덤했다.
문보경은 "그런 건 솔직히 상관없다. 위로 올라가서 다행일 뿐"이라며 "지금이 내 야구 인생의 최고점 아닐까 싶다. 저도 이만큼 잘 쳤던 적이 없었다. 가장 감이 좋을 때와 대회 기간이 겹쳐서 다행"이라고 미소 지었다.
'LG의 보물을 넘어 한국의 보물이 됐다'는 찬사에는 재치 있는 농담으로 화답했다.
그는 "애국가 (배경 영상)에 넣어 주십시오. 어떤 장면이든 들어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해 주변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홈런을 칠 때마다 한국이 이긴다는 기분 좋은 징크스에 대해서도 "그러네요. 미국에 가서도 열심히 해보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미국행 티켓을 거머쥔 문보경의 시선은 이제 더 높은 곳을 향한다.
그는 "그냥 8강에 가서 좋다. 어떤 팀과 만날지 모르지만, 세계 최고 선수들이 많으니까 좋은 투수들의 공을 쳐보고 싶고, 최고의 성적을 내고 싶기도 하다"고 의욕을 보였다.
미국에서 기대되는 만남에 대해서는 동료들을 먼저 언급했다.
문보경은 "(이)정후 형이랑 야구해서 정말 행복하다. 정후 형이 한국에 있을 땐 다른 팀이었는데, 이제 같은 팀에서 저마이 존스, 셰이 위트컴 같은 선수들과 뛴다. 이런 선수들과 함께 야구하는 게 그저 행복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날 선제 홈런을 빼앗은 소속팀 동료 웰스를 향한 격려도 잊지 않았다.
문보경은 "정말 좋은 공을 던지더라. 신고식은 제가 확실히 했다"고 씩 웃은 뒤 "제 감이 너무 좋았고, 운도 따랐다. LG에 돌아오면 정말 잘했으면 좋겠다"고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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