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팬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순간, 이정후가 나타났다. 그렇게 마이애미행 티켓까지 남은 아웃카운트가 1개로 줄었다. 우연이 아니다. 한국의 수비 강화 시스템이 만든 필연이었다.
한국이 17년 만에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8강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9일 일본 도쿄 도쿄돔에서 열린 2026 WBC C조 조별리그 4차전 호주와의 경기에서 7-2로 승리, 조 2위를 확정하며 마이애미에서 열리는 8강전에 진출하게 됐다. 한국이 WBC 토너먼트에 오른 건 2009년 2회 대회 이후 17년 만이다.
한국의 조 2위 가능성은 30%에 불과했다. 이미 4경기를 다 치른 대만이 2승 2패, 호주는 2승 1패를 기록 중이었다. 1승 2패였던 한국은 반드시 승리하고, 3팀 이상 동률일 때 적용하는 실점률(실점을 아웃카운트)을 최소로 줄여야 했다. 호주전에서 2점 이상 내주지 않으면서 5점 차로 이기는 경우의 수뿐이었다. 0~15점 득실 기준으로 분포도로는 30% 확률에 그쳤다.
하지만 한국은 바늘구멍을 뚫고 기적을 만들었다. 대회 내내 불안감을 줬던 투수진은 거포가 많은 호주 타선을 딱 2실점으로 막아냈다. 대만전에서 효과적인 공격을 하지 못했던 타선은 빅볼과 스몰볼을 모두 해냈다.
그렇게 2위에 오를 수 있는 마지노선 스코어 7-2를 만들고 돌입한 9회 말 수비. 한국은 8회 말 1사 1·2루 위기에서 마운드에 올라 추가 실점 없이 넘긴 조병현을 그대로 믿었다. 조병현은 재리드 데일을 삼진 처리했지만, 크리스 버크에게 볼넷을 허용했다. 모든 야구팬이 초조하게 후속 타자 릭슨 윙그로브와의 승부를 기다렸다. 그리고 5구째 높은 포심 패스트볼(직구)을 타자가 공략, 맞는 순간 우중간을 가를 것으로 예상되는 빠른 타구가 뻗었다.
이때 이정후가 나타났다. 그가 벤트 레그 슬라이딩을 하며 공을 잡아내 이닝 두 번째 아웃카운트를 올렸다. 이 타구가 빠졌다면, 한국은 그대로 탈락이었다.
조병현은 후속 타자 로건 웨이드를 내야 팝플라이로 잡아냈고, 더그아웃에 있었던 모든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뛰어나와 마이애미행 진출을 함께 축하했다.
원래 이정후는 이 경기 3번 타자·중견수로 선발 출전했다. 우익수로 옮긴 건 9회 말 수비에서 KBO리그 넘버원 중견수 박해민이 투입된 영향이었다. 박해민은 앞선 9회 초 김도영이 선두 타자 볼넷을 얻어내 출루한 뒤 대주자로 나섰고, 호주 내야진 실책으로 3루를 밟은 뒤 안현민의 외야 뜬공 때 홈을 밟아 목표 득점인 7번째 점수를 채운 바 있다.
박해민이 대주자로 나서지 않았어도, 그가 9회 중견수로 투입될 건 분명했다. 리그에서 가장 넓은 수비 범위를 갖고 있는 중견수다. 더불어 이정후는 올 시즌부터 소속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우익수로 고정됐다. 대표팀 합류 전 시범경기에서 보살 2개를 잡아내며 강견을 증명했다.
결국 박해민이 중견수, 이정후가 우익수로 나서는 수비진이 구축됐고, 결코 커버 범위가 좁지 않은 이정후가 한국 야구를 마이애미로 이끄는 호수비를 펼쳤다. 모든 게 이유 있는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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