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글로벌 인공지능(AI) 인프라 수요 확대로 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기)를 맞이했지만 정작 국내 반도체 장비 업체들의 실적 개선은 더딘 모습이다. 글로벌 메모리 가격 상승과 고객사들의 설비 증설에도 불구하고 전후공정 업체에 낙수효과가 온전히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9일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주성엔지니어링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312억5700만원으로 전년 대비 67.8% 급감했다. 같은 기간 유진테크는 516억7200만원으로 15.5% 줄었다. 두 업체 모두 증착 등 전공정 장비 업체로 주성엔지니어링은 SK하이닉스에, 유진테크는 삼성전자에 공급을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절정이던 4분기 실적만 놓고 보더라도 업체들 분위기는 얼어 붙어 있다. 한미반도체 영업이익은 276억4000만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61.6%, 원익IPS는 172억원으로 33.8% 감소했다.
지난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고대역폭메모리(HBM) 출하 증가와 범용 D램 비중 확대로 각 창사 이래 최대 성과를 기록한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가장 큰 원인은 혹한기 시절 고객사 물량 확보를 위해 공격적으로 펼친 저가 수주 탓이다. 낮은 단가로 계약했던 장비 물량들이 여전히 매출상 상당 부분을 차지하면서 외형 성장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반도체 장비 업체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지난해 1,2분기에는 실적이 부진하지 않았나"라며 "고객사가 사정이 좋지 않은데 장비 업체들 사정은 오죽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고객사들의 설비투자 결정과 실제 장비 입고 사이에 발생하는 수개월의 시차도 원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대규모 생산능력(CAPEX) 증설에 나섰지만, 장비 발주가 실적에 반영되기까지는 최소 6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국내 장비 생태계의 경우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낮은 후공정 분야에 치중되어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반면 부가가치가 높고 기술 진입장벽이 견고한 전공정 장비의 경우 네덜란드의 ASML이나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 등 글로벌 업체들이 대부분 장악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올해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분위기가 반전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차세대 생산시설 확대가 가시화되면서 장비 발주 모멘텀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평택캠퍼스 제4공장(P4) 준공을 연내로 앞당기면서 국내 협력사들의 수주 잔고가 빠르게 채워질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 역시 내년 상반기 준공을 목표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1기 팹 공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에 따른 대규모 장비 반입이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화될 전망이다.
반도체 장비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는 과거의 저가 수주 물량을 털어내는 체질 개선의 시기였다면 올해는 신규 수주가 실적에 반영되는 시기"라며 "국내 장비 업체들의 실적 턴어라운드가 하반기부터 가시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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