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실 미스터리를 팩션으로 풀어낸 서사…‘한복 입은 남자’, 의미 있는 마침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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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 미스터리를 팩션으로 풀어낸 서사…‘한복 입은 남자’, 의미 있는 마침표

뉴스컬처 2026-03-09 13:52:24 신고

[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창작 뮤지컬 한 편이 남긴 여운은 종종 공연이 막을 내린 뒤에야 또렷해진다. 무대 위의 이야기가 객석의 기억 속에서 다시 조합될 때, 그 작품이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비로소 드러나기 때문이다. 약 석 달 동안 이어진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 역시 그러한 여정을 남긴 채 막을 내렸다. 역사와 상상력, 전통과 현대의 미학을 교차시킨 이 작품은 창작 초연이라는 출발점에서 의미 있는 흔적을 남겼다.

충무아트센터 개관 2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작품은 EMK뮤지컬컴퍼니의 열 번째 창작 뮤지컬로 기획됐다. 공연은 지난 8일 마지막 무대를 끝으로 약 3개월간의 여정을 마쳤다. 초연 무대임에도 완성도 높은 서사와 무대 언어로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며, 창작 뮤지컬이 지닌 가능성을 다시 한 번 환기시켰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 공연 모습.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 공연 모습.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작품의 중심에는 조선 시대 과학자 장영실이 있다. 기록 속에서 갑작스럽게 사라진 그의 말년은 역사 속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한복 입은 남자’는 바로 그 공백에 상상력을 더한다. 조선을 떠나 유럽에 도달한 장영실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 서사는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을 오가며 전개된다.

이러한 설정은 역사 재현에 그치지 않는다. 작품은 세종대왕이 펼친 애민 정신과 과학 기술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 했던 시대적 열망을 조명하는 동시에, 신분의 장벽을 넘어 자신의 재능을 펼쳤던 장영실의 삶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극 속에서 그는 조선의 기억을 품은 채 낯선 세계를 살아가는 인물로 그려지며, 그리움과 사명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적 면모를 드러낸다.

극의 서사는 두 개의 세계를 축으로 움직인다. 1막에서는 조선이라는 시간과 공간이 펼쳐지고, 2막에서는 르네상스의 기운이 감도는 유럽이 무대 위에 등장한다. 서로 다른 문화권의 공간은 무대 디자인을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전통 미학을 기반으로 한 조선의 풍경과 유럽적 건축을 연상시키는 대형 구조물이 한 무대 안에서 교차하며, 관객은 마치 하나의 대서사를 따라 이동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시각적 장치만큼이나 음악 역시 작품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음악 감독 이성준(브랜든 리)은 전통 선율과 현대적인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결합해 독특한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 ‘대취타’나 ‘밀양 아리랑’ 같은 전통 음악적 요소는 팝적 감각과 어우러지며 무대 위에서 새로운 울림을 만들어냈다.

특히 주요 넘버들은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 서사의 깊이를 더했다. ‘비차’, ‘그리웁다’, ‘너만의 별에’ 같은 곡들은 장영실이 느끼는 그리움과 이상을 음악적으로 풀어내며 극의 정서를 강화했다. 전통적 정서와 현대적 감각이 겹쳐지는 음악은 관객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각을 동시에 제공했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작품의 중심을 단단히 잡았다. 장영실과 강배를 연기한 박은태, 전동석, 고은성은 각기 다른 해석으로 인물의 내면을 표현했고, 세종과 진석 역의 카이, 신성록, 이규형은 권위와 인간적 고민이 공존하는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이들이 만들어낸 무대는 역사적 인물의 전기를 넘어 인간의 선택과 운명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관객은 조선의 과학자 장영실을 바라보는 동시에, 자신의 삶과 이상을 돌아보는 순간과도 마주하게 된다.

마지막 공연을 마친 배우들은 작품이 남긴 시간을 각자의 방식으로 회고했다. 창작 초연이라는 특성상 연습 과정부터 무대까지 많은 고민과 논의가 이어졌고, 그 시간들이 작품의 토대가 되었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언급했다. 배우들은 관객의 응원이 공연을 이어가는 힘이었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제작진 역시 한국 창작 뮤지컬의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무대를 완성했다. 극작과 연출을 맡은 권은아, 작곡과 음악 감독을 맡은 이성준, 무대 디자인의 서숙진 등 제작진은 이전 작품들에서 쌓은 협업을 토대로 새로운 창작 작업을 이어갔다.

‘한복 입은 남자’는 역사적 인물을 새롭게 해석한 팩션 서사, 한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 음악, 그리고 시공간을 넘나드는 무대 미학을 통해 하나의 실험을 보여줬다.

공연은 막을 내렸지만 작품은 역사 속 공백을 상상력으로 채우는 일, 전통과 현대를 한 무대 위에 공존시키는 시도, 그리고 창작 뮤지컬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

초연을 마친 ‘한복 입은 남자’는 그러한 질문을 관객의 기억 속에 남긴 채 무대를 떠났다. 그리고 그 여운은, 다음 창작 무대가 어떤 이야기를 꺼내 들지 기대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시작점이 되고 있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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