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5월 열리는 미국임상종양학회 연례학술대회(ASCO 2026)를 앞두고, 혈액 검사만으로 수십 종의 암을 동시에 탐지하는 ‘멀티 캔서 조기검진(Multi-Cancer Early Detection, MCED)’ 기술이 종양학계의 핵심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공개된 사전 초록과 해외 의료 전문 매체 보도에 따르면, 미세한 암 DNA를 포착하는 액체 생검(liquid biopsy) 기반 검사들이 임상적 유용성을 입증하며 실제 의료 체계 편입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현재 전 세계 암 검진 체계는 유방암, 대장암, 자궁경부암, 폐암 등 일부 암종에만 제한돼 있다. 그러나 ‘멀티 캔서 조기 검진’는 단 한 번의 혈액 채취만으로 여러 암을 동시에 선별할 수 있어, 암 관리 전략 자체를 바꿀 잠재력을 지닌 기술로 평가된다.
혈액 속 ‘암 DNA’ 포착… 50종 이상 암 탐지
‘멀티 캔서 조기 검진’은 혈액 속에 떠다니는 순환 종양 DNA(ctDNA)나 세포 유래 유전 물질을 분석해 암의 존재를 찾아내는 방식이다. 암세포는 성장 과정에서 DNA 조각을 혈액으로 방출하는데, 이를 초정밀 유전체 분석과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분석해 암 여부와 발생 장기를 추정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진단기업 그레일(GRAIL)이 개발한 Galleri(갤러리) 검사다. 이 검사는 한 번의 혈액 검사로 50종 이상의 암 신호를 탐지할 수 있으며, 암이 발생한 장기 위치까지 예측하는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대규모 임상 연구에서는 이 검사에서 특이도 99% 이상, 위양성률 약 0.4% 수준의 높은 정확도가 보고됐다. 또한 수만 명 규모의 PATHFINDER(패스파인더) 연구에서는 검사로 발견된 암의 절반 이상이 1~2기 초기 단계였으며, 상당수가 기존 국가검진으로는 발견하기 어려운 암이었다. 췌장암, 간암, 난소암처럼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는 진단이 쉽지 않은 암을 조기에 포착할 가능성을 보여준 결과다.
기존 검진보다 더 많은 암 발견 가능성
‘멀티 캔서 검진’의 잠재력은 실제 임상 연구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2만 명 이상을 대상으로 진행된 연구에서는 Galleri 검사를 기존 검진 프로그램에 추가했을 때 표준 검진만 시행했을 때보다 약 7배 많은 암을 발견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발견된 암의 상당수가 간, 췌장, 난소 등 기존 국가 검진 프로그램에서 다루지 않는 암종이었다. 이는 암 검진 체계가 특정 장기에 한정된 방식에서 벗어나 ‘전신 암 탐지’ 개념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종양학계에서는 이 같은 기술이 자리 잡을 경우 암 관리 전략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치료 기술 발전만으로는 암 사망률 감소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암을 가능한 한 초기 단계에서 발견하는 것이 생존율을 크게 높이는 핵심 전략이라는 것이다.
액체 생검, 치료 영역에서 검진 영역으로
혈액 기반 액체 생검 기술은 이미 암 치료 영역에서 빠르게 활용되고 있다. 폐암 등에서 표적치료 돌연변이를 확인하는 검사나 치료 반응을 추적하는 ctDNA 분석이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에는 치료 후 재발을 예측하는 미세잔존암(MRD) 검사에도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치료 과정에서 활용되던 액체 생검 기술이 이제는 증상이 없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조기 검진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한 변화로 평가된다.
다만 전문가들은 멀티 캔서 검진이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고 지적한다. 일부 연구에서는 초기 단계 암의 탐지율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으며, 실제 검진 프로그램에 도입될 경우 비용 대비 효과와 위양성으로 인한 추가 검사 문제도 검증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양학계에서는 멀티 캔서 조기 검진을 ‘암 정복 전략의 다음 단계’로 보고 있다. 현재처럼 특정 암종을 개별적으로 검사하는 방식이 아니라, 단 한 번의 혈액 검사로 여러 암을 동시에 탐지하는 시대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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