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LY CHAVARRIA
라틴계 출신의 윌리 차바리아는 가난했던 성장 배경과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을 출발점으로 삼는 디자이너다. 남성복을 재구성하며 패션계의 판도를 뒤흔든 그. 차바리아는 불안정한 시대에 맞선 저항과 반란을 옷을 통해 선언한다.
말그대로 타이밍은 완벽했다. 2025년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며 반이민과 반LGBTQIA+ 정책을 본격화했다. 불과 나흘 뒤, 차바리아는 파리에서 첫 쇼를 열었다. 미국 성공회 교회에서 진행된 컬렉션명은 ‘타란툴라(Tarantula)’. 이 쇼는 정체성과 다양성, 공동체를 기리는 자리였다. 아일랜드계 미국인 어머니와 멕시코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캘리포니아 샌호아킨 밸리의 농부들 틈에서 자랐다. 그는 혼혈이라는 점과 가난했던 유년 시절, 성정체성을 결코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요소로 삼는다. 그의 쇼룸에는 나이와 체형이 모두 다른 라틴계 소수자들이 모여 있었고, 성모마리아 문신으로 온몸을 채운 훤칠한 남자 모델도 자리했다. 차바리아가 품고 있는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짙은 레드 벨벳 소재의 수트, 넓은 라펠 위로 장식된 거대한 붉은 장미, 아이보리 컬러의 카우보이 모자에 달린 꽃 등, 차바리아는 일요일에 입는 성스러운 옷처럼 컬렉션을 존엄하게 만들고자 했다. 쇼는 트럼프에게 자비를 호소했던 마리안 에드거 버드(Mariann Edgar Budde) 주교의 연설로 마무리됐다. 단 한 번의 쇼로 그는 파리와 패션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 후 2024년 프랑스 패션예술진흥협회(ANDAM) 수상, 2025년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리며 한 해의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차바리아는 갑자기 등장한 신예가 아니다. 그는 10년간 뉴욕에서 꾸준히 쇼를 열어왔다.(파리에서 공개한 ‘타란툴라’ 컬렉션은 그 10주년을 기념한 쇼.) 초창기에는 아디다스와 협업한 컬렉션처럼 스트리트웨어 중심으로 전개되었지만, 점차 정교한 테일러링이 돋보이는 룩을 선보이며 브랜드를 확장했다. 개인 레이블을 운영하기 전에는 랄프 로렌과 캘빈 클라인에서 커리어를 쌓았다.
2025년 6월, 두 번째 파리 쇼를 앞둔 어느 날 파리 9구의 한 거리에서 그를 만났다. 옷걸이에는 핑크, 옐로, 청록색 같은 강렬한 원색의 옷들이 걸려 있었다. 이전 시즌엔 레드와 블랙에 집중했다면, 이번 컬렉션은 전혀 다른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프레피 스타일에서 영감을 얻은 색이에요. 이 색들이 상징해온 사회적 지위에 대해 질문하고 싶었죠. ‘누가 이런 색을 입을 자격이 있는가’ 하고요. 저는 학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접근할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이 색을 선물하고 싶어요. 럭셔리를 특권이 아닌 ‘진실의 행위’로 재정의하고 싶습니다.” 직원 가족이 국경에서 강제 분리됐다는 소식을 전하며 인터뷰를 시작한 지 5분 만에 눈물을 보인 그는 말을 이어 나갔다. “지금의 정치적 상황에서 저는 저항, 아니 반란을 일으키고 싶어요. 이런 시대일수록 저와 같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여야만 합니다. 트럼프식 담론은 빈약하고 어리석으며, 무엇보다도 위험하죠.” 트럼프의 재집권을 예상한 분석가들이 많았던 만큼 그의 파리 진출이 정치적 맥락과 맞닿아 있는지 묻자 그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전혀요. 저는 더 넓은 시장이 필요했을 뿐이에요.” 이틀 뒤 살 플레옐(프랑스 파리 8구에 위치한 유서 깊은 콘서트홀)에서 열린 두 번째 쇼 ‘휴런(Huron)’은 그 의도를 정확히 증명했다. 휴런은 그가 자란 도시이자, 현재 이민세관단속국(ICE)이 단속을 강화한 지역이기도 하다. 호세 펠리시아노의 노래 ‘California Dreamin’’이 흐르자 라틴계 모델이 미국시민자유연맹(ACLU)과 협업한 순백의 티셔츠를 입고 등장해 무릎을 꿇었다. 뒤이어 34명의 라틴계와 흑인 모델들이 차례로 등장해 같은 자세를 취했다. 이는 마치 추방을 기다리는 이민자를 연상시켰고, 객석에는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차바리아가 ‘옷’이라는 매개체로 현 정세에 대한 저항의 목소리를 높이는 일종의 선언과도 같았다. 뒤이어 멕시코 가수이자 성소수자임을 밝힌 비비르 퀸타나(Vivir Quintana)의 노래가 나왔고 쇼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반전됐다. 터키석 색 수트, 흰 장미가 꽂힌 챙 넓은 검은 모자, 연분홍빛 넥타이로 차바리아식 테일러링을 선보이는가 하면 과감한 컬러를 활용한 다채로운 룩도 연이어 등장했다. “색은 사진가 기 부르댕(Guy Bourdin)이 촬영한 샤를 주르당(Charles Jourdan)의 캠페인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그는 실제로 샤를 주르당과 신발 파트너십을 맺었다. “이 협업은 파리에서 쇼를 여는 것과 같은 맥락이에요.
윌리 차바리아 2025 F/W 컬렉션.
럭셔리를 특권이 아닌 ‘진실의 행위’로 재정의하고 싶습니다. 지금의 정치적 상황에서 저는 저항, 아니 반란을 일으키고 싶어요.이런 시대일수록 저와 같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여야만 합니다.
윌리 차바리아 2026 S/S 컬렉션.
제 기반을 넓히기 위한 것이죠.” 더 정교해진 룩들은 그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사람들은 가난했지만 옷을 입었어요. 등교할 때도, 들판에 일을 하러 갈 때도 말이죠. 저는 디자인을 통해 그 감각을 되살리고 싶어요.” 그에게 있어 아름다운 옷은 곧 존엄을 뜻한다. 이번 시즌 수트 공정을 이탈리아의 장인들에게 맡긴 것 또한 같은 이유다. 세련된 색감과 소재로 완성된 이 옷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굉장히 복잡한 질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명품을 구매하는 이들은 대개 젊지 않아요. 하지만 저는 패션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들은 명품을 예전과 같이 바라보지 않죠. 다음 세대에게 있어 명품은 지위가 아닌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문화적 언어인 셈이에요.” 윌리 차바리아의 브랜드 정체성은 해체적이다. 2026 S/S 컬렉션은 남성성과 파스텔 컬러, 오버사이즈 실루엣이 섬세한 디테일과 함께 충돌한다. 마치 기 부르댕과 아디다스의 캠페인이 한데 뒤섞인 느낌이랄까. 또한 차바리아는 시장의 다양성을 겨냥한 마케팅 전략도 놓치지 않는다. 모든 룩이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럭셔리한 수트는 아니며, 로고가 새겨진 양말이나 젊은 세대를 위한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대의 티셔츠도 함께 선보인다. 쇼에 등장한 스포츠웨어 라인 역시 이번 컬렉션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다. 저항의 목소리를 높인 쇼 오프닝과 테일러링 파트가 끝난 뒤, 배기 실루엣의 쇼츠와 오버사이즈 티셔츠, 로고 양말을 신은 라틴계 마초들이 캣워크 위로 강렬하게 등장했다. 이들은 모두 공개 캐스팅을 통해 선발된 모델이었다. “1천 명 이상을 만났어요. 에이전시들은 브랜드의 정체성을 투영할 수 없는 전형적인 모델을 제안했습니다. 허나 저는 미의 기준에서 벗어나 각자가 가진 분위기와 걸음걸이를 보려 했죠.” 대화가 모델들의 타투 이야기로 흘러가자, 윌리는 자신의 몸에 새긴 타투의 의미를 하나씩 설명했다. 그중에는 아름다운 성 마리아 막달레나 문신도 있었다. 뒤이어 그의 작업 세계에 자주 등장하는 종교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 이처럼 한 주제에서 다른 주제로 자연스럽게 파생되는 그의 이야기를 경청해 보니 (이미 자신의 브랜드를 중심으로 한 영화 프로젝트까지 이야기했다) 차바리아는 패션이 아닌 다른 일을 했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아요. 2010년 초, 저는 제 파트너와 집 맞은편에 위치한 비어 있는 작은 상점을 발견했습니다. 그곳에서 집에 쌓아두었던 1950년대 이전 미국 빈티지 가구들을 가져와 팔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중 갑자기 제 이름을 건 패션 브랜드를 론칭하고 싶었습니다. 이후 2015년 가게를 전부 흰색으로 칠한 뒤 저의 첫 컬렉션을 세상에 선보였고요. 네 벌의 오버사이즈 룩이 전부였지만 운이 좋게 곧바로 일본에서 반응이 왔었죠.” 현재 58세인 그는 뉴욕에서 60여 명의 팀원과 함께 일하고 있다. 가끔 패션을 조금 더 일찍 시작하고 싶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25살이라는 나이에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건 조금 힘들어요. 이 업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시작하는 편이 낫죠. 오히려 일찍 시작한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고요. 저는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 많아요. ANDAM 파이널리스트에 오르고, 파리 남성 패션위크 캘린더에 자리를 확보한 것처럼 이제는 여성복 라인을 확장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최근 그는 디자인 총괄인 레베카 멘도자(Rebecca Mendoza)와 함께 방향을 정립 중이다. 모델 파리다 켈파(Farida Khelfa)가 차바리아와 함께 쇼 피날레 인사를 나설 때 입었던 붉은 트렌치코트 룩에서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아디다스와 샤를 주르당, 로레알(립스틱)과의 협업은 물론 곧 출시될 향수 ‘산토(Santo)’, 브랜드의 미래를 지키기 위한 투자 유치까지. 차바리아는 자신의 정체성에서 시작된 순간을 잊지 않으면서도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의 최종 목표는 분명하다. 세계 최고 디자이너들이 모인 곳에 함께하는 것. 이를 위해 그는 한순간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2026 S/S 컬렉션은 부모님을 처음으로 파리에 초대한 쇼다. 그러나 차바리아는 부모님과의 시간을 뒤로한 채, 곧바로 다시 쇼룸으로 돌아갔다. 전 세계 바이어들의 신랄한 평가에 대한 두려움을 표하며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저에게 패션은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는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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