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랜 B’의 민낯…전체 물량의 일부만 우회 가능
국제에너지기구(IEA)와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현재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할 수 있는 파이프라인은 단 두 곳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동서 원유 파이프라인(페트로라인)은 설계 용량 하루 500만 배럴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는 지난해 3월 하루 700만 배럴로 확장했다고 밝혔으나 이 수준의 지속 운영은 아직 검증된 바 없다. EIA에 따르면 올해 초 기준 실제 가동 중인 물량은 하루 200만 배럴 수준이다. 아랍에미리트(UAE)의 하브샨-후자이라 파이프라인(ADCOP)은 하루 최대 180만 배럴 용량에 현재 하루 약 110만 배럴을 수출 중이다.
두 파이프라인을 합산해도 하루 260만 배럴(EIA 추산, 여유 용량 기준) 또는 550만 배럴(IEA 추산, 이론적 최대 가동 가정) 수준만 대체할 수 있다. 2000만 배럴의 13~28%에 불과하다. 에너지 컨설팅사 카마르 에너지의 로빈 밀스 대표는 “우회 경로를 활용하더라도 최소 1000만 배럴 이상이 노출돼 있다”며 “이는 충격을 완충하는 장치일 뿐 대체품이 아니다”고 단언했다.
이라크·쿠웨이트·카타르·바레인은 사실상 100% 호르무즈 의존 구조다. 이란의 고레-자스크 파이프라인은 초기 가동 목표 기준 하루 30만 배럴 규모이지만 2024년 9월 이후 선적이 중단됐고 현재 군사 공격까지 받은 상태여서 의미 있는 대안이 되지 못한다.
◇오래전부터 구상했지만…“사실상 불가능”
대체 운하 아이디어는 십수 년 전부터 검토됐다. 2015년 사우디 리야드에 있는 아랍세기연구소(Arab Century Centre for Studies)는 ‘살만 운하(Salman Canal)’ 구상을 공개했다. 페르시아만 연안에서 출발해 사우디의 루브알할리 사막(아라비아반도 남부의 세계 최대 모래사막)을 650km 가로지르고, 예멘을 300㎞ 통과해 아라비아 해와 잇는 총 950㎞짜리 수로다. 폭 150m, 수심 25m, 건설비 최소 800억 달러(약 119조원)가 거론됐다. UAE도 2008년경 하자르 산맥을 뚫어 걸프만에서 오만만 후자이라항으로 연결하는 180㎞ 운하를 별도로 검토했고 초기 비용 추산은 2000억 달러(약 297조원)에 달했다.
그러나 두 구상 모두 개념 단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UAE는 방향을 틀어 하브샨-후자이라 송유관(360㎞)을 2012년 완공했다. 사우디 지질조사소(SGS) 소장은 아랍뉴스 인터뷰에서 “험준한 산악·사막 지형과 막대한 비용 때문에 운하 건설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
◇지도엔 직선인데 왜…지형·비용·안보 등 문제
살만 운하 루트에서 예멘·오만 구간 일부는 해발 700m, 사우디 구간도 최고 해발이 300m에 달한다. 해수면 위 수백 미터 고지대를 통과하는 운하를 만들려면 파나마 운하처럼 거대한 갑문(Lock)과 양수 시스템이 필요하다. 파나마 운하(약 80㎞)와 수에즈 운하(약 193㎞)를 합해도 273㎞인데, 살만 운하는 950㎞의 사막과 산악을 동시에 뚫어야 한다. 오만 무산담 반도를 가로지르는 방안은 더욱 불가능에 가깝다. 해발 2000m가 넘는 바위산이 바다 바로 옆에 솟아 있어 대형 유조선(VLCC)이 통과할 수 있는 폭과 깊이를 확보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800억 달러는 2015년 당시 최솟값 추정치다. 최근 일부 분석에서는 최대 2500억 달러(약 371조원)까지 거론된다. 순수 건설비만 리야드 지하철 6개 노선 공사비(약 220억 달러)의 10배가 넘는 수준이다. 여기에 수십 년에 걸친 운영비와 군사 방호 비용도 추가해야 한다.
폭 39㎞의 호르무즈 해협도 봉쇄가 쉽지 않은 넓은 수역인데 우회 운하는 폭이 150m에 불과한 단일 통로로 구상했다. 미사일 한 발이나 자폭 드론 한 대로 수로 일부를 막아버리면 전체가 마비된다. 넓은 바다보다 좁은 인공 수로가 오히려 공격에 더 취약한 셈이다. 예멘 내전에서 보듯, 통과 국가의 정세 불안이 새로운 병목을 만들 수 있다. 홍해를 거치는 사우디 페트로라인 역시 후티 반군의 공격 위협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중동 에너지 전문지 MEES의 제이미 잉그램 편집장은 “사우디가 홍해 수출을 늘리는 것은 현실적 옵션이지만, 얀부에서 아시아로 향하는 유조선은 다시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지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새 운하가 완성된다 해도 천연가스 수출 문제는 별개다. IEA에 따르면 카타르와 UAE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출은 사실상 전량 호르무즈를 통해 세계 시장에 공급된다. LNG는 영하 162도에서 액화 처리한 뒤 전용 선박으로 수송하는 특수 화물이다. 새 수출 루트를 만들려면 운하뿐 아니라 초대형 LNG 액화·선적 터미널을 처음부터 새로 지어야 하며, 이는 수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카마르 에너지의 밀스 대표는 “가스는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대체 루트 자체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운하 외 다른 현실적 대안은 없나
단기적으로는 사우디 페트로라인을 통한 얀부항 수출 확대와 이집트의 수에즈-지중해 파이프라인(SUMED, 용량 하루 250만 배럴) 연계가 거론된다. 파키스탄은 이미 사우디에 얀부 경유 원유 공급을 공식 요청했다. 유럽은 노르웨이, 미국, 카스피해산 원유로의 대체 공급을 모색 중이다.
중장기 대안으로는 ‘역내 공동 파이프라인 네트워크’가 부상하고 있다. 쿠웨이트 석유화학기업 에쿠에이트(EQUATE) 전 최고경영자(CEO) 무하마드 후세인은 “걸프 국가들이 공동으로 오만만·아라비아 해로 연결하는 파이프라인 망을 구축하면 호르무즈 리스크를 구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현대 계량·모니터링 기술 덕분에 공동 파이프라인에서도 각국 물량의 정확한 측정·정산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역시 착공까지 수년의 외교적 합의와 천문학적 투자가 전제돼야 한다.
|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