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여수 앞바다에 자리한 작은 섬 금오도. 봄이 시작되면 이 섬 풍경부터 달라진다. 겨울 내내 잔잔하던 마을 주변 밭이 어느 순간 짙은 초록으로 물든다. 해안가 모래밭을 따라 자라는 방풍나물이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바닷바람을 맞고 자란 이 나물은 향이 진하고 식감이 아삭해 봄철 식탁에서 귀한 재료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금오도 주민들에게 방풍나물은 단순한 봄나물이 아니다. 이 섬에서는 한철 수확으로 1년 살림을 보태는 중요한 작물이다. 그래서 주민들은 방풍밭을 두고 “우리 집 곡간”이라고 부른다. 봄이 오면 마을 곳곳에서 사람들이 방풍을 캐는 모습이 이어지고, 섬 전체가 바쁜 계절을 맞는다.
금오도에는 약 45가구가 모여 산다. 규모는 작지만 방풍철이 되면 섬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진다. 방풍나물은 이른 봄 어린순이 올라오는 시기부터 채취가 시작된다. 이후 봄이 깊어지기 전까지 두 차례 더 수확이 이어진다. 짧은 기간 동안 세 번 정도 수확을 하는 셈이다. 이 시기에는 대부분의 주민이 하루 대부분을 방풍밭에서 보낸다.
오랜 세월 섬에서 살아온 주민들은 방풍나물이 예전부터 돈이 되는 작물이었다고 말한다. 가격은 예전만 못하지만 지금도 섬에서 손꼽히는 소득 작물이다. 특히 날씨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비가 내려도 크게 망가지지 않고 가물어도 비교적 잘 자라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주민들은 방풍을 “섬에서 가장 든든한 작물”이라고 말한다.
방풍 수확철이 되면 섬 밖에 살던 자식들도 금오도를 찾는다. 아들과 며느리, 손자와 손녀까지 모여 일을 돕는다. 특히 무거운 마대를 옮기는 일은 젊은 가족 몫이다. 방풍을 가득 담은 마대는 30kg 가까이 나가기도 한다. 연세가 있는 부모가 혼자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은 무게다. 그래서 자식들은 봄마다 시간을 내 섬으로 들어온다. 부모가 평생 지켜온 밭에서 함께 일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수확한 방풍나물은 대부분 당일 바로 육지로 보내진다. 그만큼 신선도가 중요하다. 밭에서 캐낸 나물이 곧장 판매로 이어지기 때문에 농사와 소득이 빠르게 연결된다. 이때 어르신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손주들에게 용돈을 건네는 것이다. 아이들은 예상치 못한 선물에 웃음을 터뜨리고 어르신들은 “농사지어 손주들 주려고 사는 거지”라며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일이 끝난 뒤에는 가족들이 함께 밥상을 차린다. 방풍나물은 여러 방식으로 요리해 먹는다. 살짝 데쳐 무치면 향긋한 나물 반찬이 되고 장아찌로 담가도 좋다. 전으로 부치면 향이 더 깊어진다. 특히 고기와 함께 먹으면 입안이 개운해져 식사가 한층 풍성해진다.
◆환절기 건강 챙기는 봄 제철 식재료, 방풍나물
봄이 찾아오면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몸이 새로운 기운을 맞는다. 그러나 환절기에는 일교차가 커 몸이 쉽게 지치기 쉽다. 이럴 때 제철 식재료를 챙겨 먹는 식습관이 몸 상태를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중에서도 3월에는 방풍나물이 봄철 건강 나물로 꼽힌다.
방풍나물은 미나리과 식물로 예부터 약재로 사용됐다. 바닷바람을 막아 준다는 뜻에서 ‘방풍’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몸을 따뜻하게 하고 감기 기운을 완화하는 데 쓰였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이 나물에는 플라보노이드와 사포닌 성분이 들어 있다. 이런 성분은 면역 기능을 돕고 세포 손상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또한 항염 성질이 있어 봄철 꽃가루로 인한 불편함이나 기관지 자극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혈관 건강에도 보탬이 된다. 방풍나물은 혈액 흐름을 부드럽게 하는 성질이 있어 손발이 차가운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 혈액 순환이 원활해지면 몸이 쉽게 붓는 증상 완화에도 보탬이 된다.
또한 간 기능을 돕는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체내 노폐물 배출을 돕는 성질이 있어 식사 후 속이 더부룩할 때 먹기 좋다. 소화를 돕고 위장을 편안하게 하는 성질도 있어 봄철 입맛이 떨어질 때 곁들이기 좋다. 항산화 성분이 들어 있어 피부 건강을 관리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방풍은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줄기는 약 1m 정도까지 자라며 뿌리는 방추형 모양을 띤다. 갯방풍이나 갯기름나물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어린잎을 먹을 때 향이 가장 좋다. 쌉쌀하면서도 향긋한 맛이 특징이다.
◆ 향과 식감 살리는 방풍나물 먹는 방법
방풍나물은 조리 방법에 따라 풍미가 크게 달라진다. 가장 흔하게 먹는 방식은 무침과 장아찌다. 어린잎을 살짝 데쳐 양념에 버무리면 특유의 향이 살아난다.
무침은 시금치나물처럼 조리한다. 먼저 억센 줄기와 변색된 부분을 손질한다. 깨끗이 씻은 뒤 소금을 넣은 끓는 물에 살짝 데친다. 이후 찬물에 헹궈 물기를 짠 뒤 먹기 좋은 길이로 자른다. 여기에 고추장이나 된장, 고춧가루, 다진 마늘, 파를 넣어 버무린다. 마지막으로 참기름과 통깨를 더하면 향긋한 방풍나물 무침이 완성된다.
장아찌는 식초와 간장을 섞은 양념에 절여 오래 두고 먹는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전이나 된장국에 넣는 방식이 있다. 부침가루 반죽에 방풍나물을 넣어 노릇하게 부치면 향이 진하게 살아난다. 된장국이나 수제비에 넣으면 국물에 향이 배어 봄철 입맛을 돋운다. 쌈 채소로 활용하거나 튀김 재료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봄이 짧게 지나가는 금오도에서 방풍나물은 삶을 이어 주는 작물이다. 밭에서 캐낸 초록 잎은 가족의 밥상이 되고 한 해 살림을 보태는 힘이 된다. 향긋한 나물 한 접시에는 섬사람들의 땀과 계절이 함께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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