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로드] 지난주 한국 증시는 이란 사태를 기폭제로 사상급 급락과 급반등을 오가며 ‘공포와 탐욕’이 뒤섞인 극단적 변동성을 연출했다. 그러나 미국발 경기 둔화 우려와 중동 전쟁 장기화 가능성이 겹치면서 이번 주에도 불확실성이 증시를 짓누를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연합인포맥스와 한국거래소 집계에 따르면 6일 코스피는 전주보다 659.26포인트(10.56%) 급락한 5,584.87에 한 주 거래를 마쳤다. 6,300선에 근접했던 지수는 주초 이틀 동안에만 1,200포인트 가까이 밀리며 유가증권·코스닥 시장에서 한때 시가총액 1,000조원 이상이 증발했다.
특히 4일 코스피는 하루 만에 12.06% 폭락해 2001년 9·11 테러 직후 기록한 12.02% 낙폭을 20여 년 만에 갈아치웠다. 같은 날 코스닥도 코로나19 팬데믹 공포가 극에 달했던 2020년 3월 19일(-11.71%)을 뛰어넘는 14.00% 급락을 기록했다.
극단적 투매 이후 5일에는 이례적인 ‘V자 반등’이 연출됐다. 코스피는 9.63%, 코스닥은 14.10% 급등하며 직전 이틀 낙폭의 절반가량을 만회했다. 코스피의 일간 상승률은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이던 2008년 10월 30일(11.95%) 이후 두 번째로 컸고, 코스닥은 당시 세웠던 사상 최대 상승률(11.47%) 기록을 새로 썼다. 6일에는 코스피가 5,580선에서 강보합으로 마감하며 간신히 안정을 찾는 모양새를 보였다.
투자심리의 공포 수준을 가늠하는 ‘한국형 공포지수’ 코스피200 변동성지수(VKOSPI)는 주중 한때 83.58까지 치솟으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가 6일 62.72로 마감, 과열된 공포 국면에서는 다소 후퇴했다.
수급 측면에서는 외국인과 기관이 대규모 매도에 나선 반면 개인이 폭락장을 ‘기회’로 받아들이며 대거 매수에 나선 구도가 뚜렷했다. 지난주(3∼6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7조451억원, 기관은 4조3,165억원을 순매도했다. 반대로 개인은 홀로 10조6,486억원을 순매수하며 하락장을 떠받쳤다.
외국인은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직후인 3일에만 5조1,487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 하락을 주도했다. 코스피가 5,000선 근방까지 밀린 4일에는 저가 매수 유입으로 2,302억원 순매수로 돌아섰지만, 5일(1,446억원), 6일(1조9,418억원)에는 다시 매도 규모를 키웠다.
외국인 주간 순매수 상위 종목으로는 삼성전자우, 셀트리온, 삼성생명, HD현대중공업, 현대건설 등이 꼽혔다. 반면 삼성전자(5조4,108억원), SK하이닉스(1조9,303억원), 현대차, LIG넥스원, S-Oil 등은 대규모 순매도 대상이 됐다.
코스닥 시장에서는 지수가 한 주 동안 38.11포인트(3.20%) 떨어진 1,154.67에 마감했다.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2조2,314억원, 1조4,865억원을 순매수한 반면, 개인은 3조5,958억원을 순매도했다. 대형 기술주와 방산·에너지 관련 종목을 중심으로 수급 쏠림이 나타났다는 평가다.
해외 증시도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와 미국 경기 둔화 우려에 동반 약세를 보였다. 6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0.95%,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1.33%, 나스닥지수는 1.59% 각각 하락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4월 인도분 가격은 12.21% 급등한 배럴당 90.90달러에 마감, 2023년 9월 28일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 노동부가 발표한 2월 비농업 부문 고용이 9만2,000명 감소해 시장 전망치(5만9,000명 증가)를 크게 밑돈 ‘쇼크’ 수준의 고용지표도 투자심리를 냉각시켰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2월 비농업 고용이 예상과 달리 감소세로 돌아서면서 경기 둔화 우려가 부각돼 미국 증시가 하락 출발했다”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무조건 항복 없이는 협상이 없다고 언급하며 국제유가가 급등한 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강경 발언은 이란과의 갈등이 단기간에 봉합되기 어렵다는 인식을 강화하며 ‘전쟁 장기전’ 우려를 키우고 있다.
여기에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사모신용 펀드 환매를 제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신용시장 경색 우려가 커졌고, 장 마감 무렵에는 오라클과 오픈AI가 일부 데이터센터 확장 계획을 철회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반도체·기술주 중심으로 낙폭이 확대됐다.
글로벌 위험자산 선호를 가늠하는 각종 지표도 약세를 보였다. MSCI 한국 증시 상장지수펀드(ETF)는 0.79% 상승했지만, MSCI 신흥지수 ETF는 0.54% 하락했다.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3.93% 급락했고, 러셀2000지수와 다우 운송지수도 각각 2.33%, 3.52% 떨어졌다. 한국 증시와 연동성이 높은 코스피200 야간선물은 3.22% 급락, 이번 주 국내 증시 출발에 부담을 예고했다.
시장에서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촉발된 이번 전쟁이 시장 기대와 달리 단기간에 종료되기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전쟁 장기화와 고유가, 미국 경기 둔화 우려가 동시에 부각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당분간 확대 국면을 이어갈 수 있다는 진단이다.
서 연구원은 “이번 주 시장은 11일 발표되는 미국 2월 소비자물가지수(CPI)와 18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에 주목할 것”이라며 “최근 미 연준은 물가 하락 속도가 정체되자 금리 인하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고, 시장은 3월 FOMC 금리 동결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11일 CPI가 전년 동월 대비 3%대 초반에서 정체되거나 반등할 경우, 올해 금리 인하 횟수가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미 국채 금리가 반등하며 기술주에 압박을 줄 수 있다”며 “13일 발표되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 역시 연준이 중시하는 지표인 만큼 결과에 따라 위험자산 선호가 크게 출렁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국내 투자자들은 11일 한국의 3월 1∼10일 수출 실적과 함께 일본 1월 노동자 현금수입(9일), 미국 2월 NFB 소기업 지수·기존주택매매·중국 2월 수출(10일), 미국 1월 주택지표(12일), 미국 1월 개인소득·소비·PCE 물가지수·내구재 주문·미시간대 소비자심리지수·JOLTS 구인 공고(13일) 등 잇따른 주요 지표 발표도 주시해야 할 전망이다.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 미국 통화정책 경로, 실물지표 악화 우려가 뒤엉킨 가운데 한국 증시는 개인의 ‘저가 매수’에 힘입어 일단 기술적 반등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전쟁의 향방과 미국 물가·금리 경로가 뚜렷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반등세가 지속적인 추세 전환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신중론이 우세하다. 투자자들로서는 단기 변동성 확대를 전제로 한 보수적 포지셔닝과 리스크 관리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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