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두 종류의 용기가 있다. 총 앞에서 도망치지 않는 용기와, 총을 든 자가 대통령이고 왕자이고 억만장자일 때도 "당신이 나쁜 짓을 했다"고 소리치는 용기. 버지니아 주프레(Virginia Giuffre, 1983~2025)는 두 번째 종류의 용기를 택했다. 그리고 세상은 그 대가로 그녀를 끝까지 혹독하게 대우했다.
과일 쟁반처럼 돌려진 소녀
주프레는 1983년 8월 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1946~ )의 휴양지 마러라고(Mar-a-Lago) 리조트에서 관리인으로 일하는 평범한 노동자였다. 일곱 살 때부터 지인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고, 열네 살에는 거리를 전전하며 예순다섯 살 인신매매범의 손에 넘어가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어느 복지관 보고서에나 나올 법한, 너무도 익숙한 빈곤과 학대의 연쇄였다.
열여섯 살이던 1999년, 그녀는 아버지 덕분에 마러라고 온천 시설 직원으로 취직했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 운명의, 혹은 재앙의 조우가 이루어진다. 영국 상류층 출신 사교계 명사 길레인 맥스웰(Ghislaine Maxwell, 1961~ )이 그녀에게 다가와 "마사지 치료사 자리"를 제안했다. 시급이 무려 200달러라고 했다. 열여섯 살 아이에게 달콤하지 않을 리 없는 제안이었다.
맥스웰의 실제 정체는, 억만장자 금융인 제프리 엡스타인(Jeffrey Epstein, 1953~2019)의 오른팔이었다. 엡스타인은 전 세계 권력자들의 '비밀 취미'를 위해 어린 소녀들을 공급하는 조직을 운영하고 있었다. 주프레는 그렇게 이 그물에 걸려들었다.
훗날 그녀는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신은 과일 쟁반처럼 돌려졌다고. 전용기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비며 엡스타인의 '친구들'에게 넘겨졌다고. 그 '친구들' 가운데는 당시 영국 왕실의 앤드루 마운트배튼-윈저(Andrew Mountbatten-Windsor, 1960~ , 이하 앤드루, 2025년 10월 왕자 칭호 박탈)도 있었다. 그리고 실명을 밝히지 않은 "잘 알려진 총리"도 있었다고 회고록에 썼다.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는 인명부다.
"그는 땀을 흘리지 않는다", 그래서 무죄?
2019년 엡스타인이 뉴욕 연방교도소에서 의문스러운 죽음을 맞이했을 때(공식 사인은 자살), 세계는 잠시 술렁였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권력자들의 이름이 담긴 파일들은 수년간 봉인되었고, 피해자들은 다시 침묵 속에 방치됐다.
앤드루는 2019년 BBC 생방송 인터뷰에서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해명을 내놓았다. "나는 땀샘 질환 때문에 땀을 흘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주프레가 우리가 함께 춤추다 내가 땀을 흘렸다고 주장하는 것은 거짓이다." 영국 국민들은 기가 막혀서 웃었다. 이 인터뷰는 두고두고 홍보(PR) 역사상 최악의 위기대응사례로 회자된다. "땀 안 흘림 = 무죄" 논리라니, 법학대학원 입시 문제로 써도 손색이 없을 기상천외한 논리였다.
결국 앤드루는 2022년 민사 합의금을 지불했다(추정 규모 약 300만 파운드, 약 55억 원). 그리고 2025년 10월, 남은 왕족 칭호를 모두 박탈당했다. 2026년 2월 19일에는 영국 무역 특사로 재직하던 시절 엡스타인에게 영국의 국가 기밀정보를 유출했다는 혐의(공직비위)로 체포됐다가 11시간 만에 석방됐다. 기소는 아직 안되었지만 수사는 계속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그의 예순여섯 번째 생일이었다. 주프레가 세상을 떠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다.
맥스웰은 2021년 아동 성매매 관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엡스타인의 공범이 처벌을 받는 데 거의 30년이 걸린 셈이다.
혼자서, 끝까지
주프레는 2000년대 초반 호주로 이주해 결혼하고 세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녀는 소송을 이어갔고, 언론 앞에 서서 진실을 외쳤으며, 다른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길을 닦았다. 2015년에는 실명을 공개하며 피해 사실을 증언한 최초의 여성이 됐다. 그 용기로 인해 수십 명의 다른 피해자들이 비로소 입을 열 수 있었다.
삶은 계속 가혹했다. 남편과의 관계가 파탄 났고, 2025년 들어서는 신장 질환으로 사경을 헤맸으며, 자녀들과의 접촉도 법원 명령으로 차단됐다. 그리고 2025년 4월 25일, 그녀는 호주 서부의 농장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마흔한 살이었다.
그녀의 회고록 『아무도 없는 소녀(Nobody's Girl)』는 그해 10월 유작으로 출판됐다. 그녀가 죽기 전 편집자에게 보낸 마지막 전자우편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고 한다. "이 책의 내용은 꼭 세상에 나와야 합니다. 취약한 사람들의 인신매매를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적 실패에 빛을 비추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죽는 순간까지 피해자가 아닌 증인으로 살았다. 그녀의 죽음은 개인의 패배가 아니다. 피해자를 끝까지 소진시키고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사회의 실패다.
한국에서 이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 이유
솔직히 말하자. 이 사건은 '저기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에도 권력자들이 어린 여성들과 얽힌 사건들이 있다. 기생수처럼 깊숙이 뿌리내린 '술자리 접대' 문화, 재력과 지위를 앞세운 성적 착취, 그리고 피해자들이 입을 열면 오히려 역풍을 맞는 구조. 2018년 미투(#MeToo) 운동이 한국을 강타했을 때,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이 "왜 이제야 나왔냐"는 말을 들으며 오히려 피고인 자리에 서야 했는지를 우리는 기억한다.
더 구체적으로 보자면, 성착취 관련 사건에서 권력자가 연루될수록 수사는 더디고, 피해자의 신뢰성은 더 많이 공격받으며, 처벌은 더 가벼워지는 경향이 뚜렷하다. 엡스타인 사건에서 미국 당국이 2008년 터무니없이 가벼운 합의로 사건을 덮었던 것처럼, 권력은 사법 정의의 저울을 기울인다. 이건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주프레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굳이 몇 가지로 정리하자면 이렇다.
첫째, 피해자의 증언을 믿는 문화가 필요하다. 주프레는 수십 년 동안 "거짓말쟁이"라는 딱지와 싸워야 했다. 심지어 2026년 공개된 미국 수사 문서 중 일부는 그녀가 "수시로 진술을 바꿨다"고 적시했다. 트라우마를 입은 사람의 기억이 언제나 일관될 수 없다는 것은 심리학의 기본 상식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피해자에게 완벽한 진술을 요구한다.
둘째, 조직적 은폐를 가능하게 하는 구조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엡스타인이 수십 년간 활개를 칠 수 있었던 것은 그 개인이 악해서 만이 아니었다. 그와 연루된 정치인, 금융인, 왕족들이 서로를 보호하는 생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도 유전무죄 무전유죄, 유검무죄 무검유죄의 비슷한 생태계가 있다.
셋째, 피해자에게 정의를 실현시키는 데 걸리는 시간의 문제다. 주프레는 결국 살아서 완전한 정의를 보지 못했다. 앤드루가 체포된 것은 그녀가 세상을 뜬 후였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 이 말이 한국어로 번역되는 순간, 그것은 그저 법언(法言)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된다.
지면서 바꾼 사람
버지니아 주프레는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람들을 적으로 두고,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방식으로 싸웠다. 그리고 졌다. 그러나 그 싸움이 없었더라면, 맥스웰은 여전히 파티장을 누비고 있었을 것이고, 앤드루는 여전히 왕자 행세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겨야 변화가 온다고 말한다. 하지만 역사는 종종, 지면서 바꾼 사람들을 기억한다. 그녀를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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