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이예서 기자】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현대로템이 다목적 무인차량(UGV) 사업을 두고 정면 승부를 벌이고 있다. 올해 상반기 사업자 선정이 예정된 이번 사업은 국내 무인 지상체계 주도권을 가를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6일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내 다목적 무인차량 사업의 기종결정 평가를 진행한 뒤 분과위원회 상정을 거쳐 사업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군이 병역 자원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추진 중인 ‘아미 타이거(Army TIGER)’ 프로젝트의 핵심 사업 가운데 하나로, 약 500억원 규모에 달한다.
해당 사업은 당초 지난해 5월 최종 사업자를 선정할 예정이었지만, 평가 초기 단계에서 참여 업체들이 제출한 성능평가 기준 해석을 두고 이견이 발생하면서 일정이 지연됐다. 최고성능평가는 항속거리와 최고 속도, 적재 중량, 원격 통제 거리 등 주요 항목의 성능이 높을수록 높은 점수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다만 현장 실물 시험이 아닌 업체가 제출한 제안서를 기반으로 서류 평가가 진행되면서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방사청 관계자는 “다목적 무인차량 사업은 관련 법령과 제안요청서에 명시된 기준에 따라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가 이뤄지고 있다”며 “최고성능 확인 과정 역시 객관성과 공정성에 문제가 없도록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참여 업체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우수한 장비가 전력화될 수 있도록 사업을 관리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다목적 무인차량은 병력을 대신해 수색과 근접 전투, 물자 수송, 경계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된 2t 이하급 원격·무인 운용 차량이다. 임무에 따라 각종 장비를 탑재해 운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사업에는 한화에어로와 현대로템이 참여해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화에어로는 아리온-스멧을, 현대로템은 HR-셰르파를 앞세우고 있다.
한화에어로가 내세운 아리온-스멧은 최대 550kg의 물자를 적재할 수 있으며 완전 전기 추진 방식으로 1회 충전 시 약 100km를 이동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최고 속도는 시속 약 40km 수준으로 알려졌다. 이 차량은 원격 조종을 비롯해 유선 추종, 경로 기반 자율주행, 지형을 스스로 탐색하며 이동하는 탐색 자율주행, 선행 병사나 차량을 따라 이동하는 추종 자율주행 등 다양한 운용 모드를 지원한다. 임무 환경에 따라 자율성과 통제 방식을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게 한화에어로의 설명이다.
무장 확장성도 강점으로 꼽힌다. 아리온-스멧에는 원격사격통제체계(RCWS)를 장착할 수 있어 5.56mm에서 7.62mm급 기관총 운용이 가능하다. 해당 시스템은 목표를 자동으로 추적하고 조준하며 이동 중 사격을 지원하는 기능을 갖춰 근접 교전 상황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실제 운용 환경을 고려한 시험 데이터도 확보하고 있다. 아리온-스멧은 국내 전방 GOP 산악 지대에서 시범 운용을 진행하며 경사로와 협소 통로 등 험지 환경에서 군수 지원과 정찰 임무 수행 데이터를 축적해 왔다. 이를 통해 자율주행 알고리즘과 장비 내구성을 지속적으로 보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해외 시험 경험도 강점으로 제시된다. 아리온-스멧은 2024년 미군의 해외비교성능시험(FCT) 대상 장비로 선정돼 미국 해병대 훈련장에서 성능 시험을 진행했다. 국내 방산기업의 무인차량이 해당 시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FCT는 미 국방부가 동맹국 장비의 기술 수준을 평가하고 미군 획득 사업과 연계 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해 운영하는 제도다.
한화에어로 관계자는 “군 다목적 무인차량 사업은 ROC(요구성능 기준)가 설정돼 있어 기본적으로 참여 장비들이 해당 성능 기준을 충족하는 것을 전제로 진행된다”며 “군이 요구하는 기본 성능은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리온-스멧은 미군 FCT 대상 장비로 선정돼 평가를 받은 경험이 있고 국산 RCWS 장착이 가능하다는 점이 차별화 요소”라며 “물자 수송과 정찰뿐 아니라 소규모 교전 상황에서도 활용될 수 있어 무장 체계와의 통합 운용 측면에서도 경쟁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맞서는 현대로템은 HR-셰르파를 앞세워 수주전에 나서고 있다. HR-셰르파는 6×6 구동 구조를 적용한 전기 기반 무인지상차량으로 자율주행 기능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피격 상황에서도 기동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공기 주입이 필요 없는 에어리스 타이어를 적용했으며 RCWS 장착도 가능하다. 이를 통해 정찰과 군수 지원, 환자 후송, 화생방 탐지, 원격 화력 지원 등 다양한 임무 수행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HR-셰르파는 2018년 개념 개발을 시작해 2020년 군의 신속시범획득사업에 선정됐다. 이후 GOP와 DMZ 일대에서 야전 시범 운용을 통해 기술 안정성과 운용 가능성을 검증해 왔다. 다양한 지형과 환경에서 원격주행과 경로점 주행, 선행 차량이나 병력을 자동으로 따라가는 종속주행 등 자율주행 기능은 물론 원격무장장치를 활용한 근접 전투 임무 수행 능력을 확인하며 기술력과 신뢰성을 입증했다.
최근 공개된 무인소방로봇이 HR-셰르파 플랫폼을 기반으로 개발되면서 플랫폼의 확장성과 범용성도 주목받고 있다. 군용을 넘어 재난·소방 분야까지 적용 가능성이 확인되면서 다목적 플랫폼으로서의 경쟁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HR-셰르파는 기본 플랫폼의 기동성과 안정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임무 장비를 탑재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며 “모듈화 구조를 통해 군·민수 영역 모두에서 확장 적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현대로템은 지상 무기체계 개발 경험이 무인차량 기술력의 기반이 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전차와 장갑차 개발이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은 아니지만 40년 이상 지상무기체계 사업을 이어오며 플랫폼 설계와 기동 성능 관련 기술을 축적해 왔다는 설명이다. 관계자는 “전차나 장갑차 역시 바퀴나 궤도를 기반으로 한 지상 플랫폼인 만큼 주행 성능과 구조 설계 등에서 쌓아온 노하우가 무인차량 개발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며 “이 같은 기술적 기반이 무인지상차량 개발에서도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업이 우리 군의 첫 다목적 무인차량 도입이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이번 사업을 통해 특정 플랫폼이 실제 군에 도입될 경우 해당 장비가 사실상 군 내 표준 체계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있다는 데 의미를 둔다.
업계 관계자는 “군이 특정 장비를 운용하기 시작하면 이후 운용 체계나 추가 도입 과정에서도 동일한 플랫폼이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다”며 “현재 확정된 후속 사업은 없지만 향후 추가 도입이나 후속 사업이 추진될 경우 이번 사업에서 선정된 업체가 유리한 위치에서 출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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