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전시현 기자 | 세계 최대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 USDT를 발행하는 테더가 지난 2월 25일(현지시각) 디지털 상품 거래 플랫폼 '웝(Whop)'에 2억달러(약 2900억원)를 전략적으로 투자했다.
이번 투자로 웝의 기업 가치는 16억달러(약 2조3400억원)로 평가됐다. 업계는 이를 단순한 지분 투자가 아닌 테더의 사업 모델 전환 선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USDT 공급량이 두 달 연속 줄어드는 이례적 국면에서 경쟁 스테이블코인 USDC에 온체인 거래량마저 역전당한 테더가 꺼내 든 승부수라는 해석이다.
◆ 공급량 석 달째 내리막
지난해 12월 30일 1873억달러(약 272조원)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던 USDT 공급량은 올해 1월 약 12억달러, 2월에는 약 15억달러가 추가로 빠져나가 지난달 25일 기준 1836억달러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두 달 합산 감소 폭은 37억달러에 달한다. 절대 수치는 크지 않지만, 두 달 연속 공급 감소는 2022년 '테라·루나 사태' 이후 약 3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경쟁 구도의 변화다. USDC는 올해 들어 유통량이 사실상 보합(752억달러→754억달러)을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미 지난해 온체인 거래량에서는 USDC가 USDT를 추월했다.
5일 코인데스크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USDC의 온체인 거래량은 17조3000억달러로 USDT(12조9000억달러)를 4조달러 이상 앞질렀다. 가상자산 데이터 분석 업체 코인메트릭스는 "2월 들어 전체 가상자산 시장의 유동성이 더욱 얇아지면서 스테이블코인 수요가 추가 압박을 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화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이를 "온체인 달러 유동성이 정점 구간을 지난 신호"로 해석하며, 스테이블코인 수요 구조 자체의 변화 가능성을 주목했다.
◆ 웝은 인터넷 마켓의 미래
이 같은 배경 속에 파올로 아르도이노 테더 CEO가 직접 나섰다. 그는 투자 발표와 함께 낸 공식 성명에서 "스테이블코인과 디지털 지갑은 사람들의 삶, 그들의 사업·일상·가족에 직접 내재화될 때 비로소 가장 강력해진다"며 "웝은 인터넷 마켓의 미래"라고 규정했다. 이어진 인터뷰에서도 "이번 투자는 수십억 명에게 효율적인 디지털 달러와 지갑 인프라를 제공함으로써 실물 경제 활동을 지원하겠다는 테더의 집중력을 반영한 것"이라고 밝혔다.
웝은 소프트웨어 툴·온라인 강의·유료 커뮤니티 등 디지털 상품을 사고파는 플랫폼이다. 현재 등록 이용자는 1840만명이며 전 세계 144개국 크리에이터들이 연간 30억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월간 총거래액 성장률은 25%다. 스티브 슈워츠 웝 CEO는 "다음 세대의 인터넷 비즈니스는 처음부터 글로벌하게 출발하고, 결제는 인터넷 그 자체처럼 자유롭게 이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WDK 통합과 USAT, 투 트랙 인프라
이번 투자의 핵심은 기술 통합이다. 테더는 웝 플랫폼에 자사의 지갑 개발 키트(WDK)를 내재화할 예정이다. WDK는 오픈소스 기반의 셀프커스터디 지갑 구축 툴킷으로 웝 이용자와 크리에이터들은 별도의 가상자산 거래소를 거치지 않고도 플랫폼 안에서 USDT는 물론 테더의 신규 스테이블코인 USAT로 상품 결제와 수익 정산을 처리할 수 있게 된다.
USAT는 테더가 올해 1월 미국 지니어스 법안에 맞춰 선보인 규제 준수형 스테이블코인이다. 연방 인가 가상자산 은행 앵커리지 디지털을 통해 발행되며, 딜로이트가 준비자산 감사를 맡는다.
테더 측은 "USAT는 기관과 플랫폼 모두를 위해 설계된 미국 규제 환경 내 달러 연동 코인"이라고 설명했다. WDK는 결제 외에도 대출·차입 등 탈중앙화 금융 기능과 크로스체인 상호운용성까지 지원하도록 설계됐다. 웝의 시리즈B 투자를 공동 주도했던 바인캐피털벤처스는 "이번 투자가 웝의 글로벌 결제 인프라 확장에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 '거래소 종속' 탈피 선언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투자를 테더의 사업 모델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주목한다. 그간 USDT는 거래소 간 자금 이동 수단, 혹은 투자 대기 자금으로 주로 활용돼 왔다. 가상자산 시장 호황기에 수요가 폭증하고, 침체기에는 발행량도 함께 쪼그라드는 시장 사이클 종속 구조였다.
한화투자증권은 "테더는 공급 둔화 국면에서 거래소 의존도를 낮추고 실사용·커머스 기반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질적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며 "이번 웝 투자는 스테이블코인의 위상을 투기 도구에서 인터넷 결제 인프라로 재정의하려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글로벌 결제 전문 매체 페이먼츠는 "테더의 웝 투자는 스테이블코인이 주류로 진입하는 상징적 전환점"이라고 평가했다. 핀테크위클리는 "2026년은 스테이블코인이 온체인 유동성 인프라로 실물 경제 활동을 신뢰성 있게 지원할 만큼 성숙하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 결제 규모가 2025년 약 15억달러에서 2026년 180억달러로 급증할 것이라는 추정치도 나온다.
◆ 규제·투명성·경쟁… 넘어야 할 세 개의 산
그러나 업계 안팎에서는 테더가 넘어야 할 산도 만만치 않다고 지적한다. 첫 번째는 규제 리스크다. 미국 지니어스법안은 외국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예일 법학 저널은 "일부에서 테더가 이 법의 최대 패자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고 전했다. 잭 리드 미 상원의원은 테더를 직접 겨냥한 추가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두 번째는 투명성과 신뢰 문제다. 로이터는 "테더의 준비자산이 갈수록 유동성이 낮고 변동성이 큰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S&P글로벌은 투명성을 문제 삼아 테더의 신용등급을 낮추기도 했다. 국내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규모 면에서는 압도적이지만 결제 인프라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려면 준비자산의 공개 수준을 지금보다 훨씬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 번째는 경쟁 심화다. USDC를 발행하는 서클은 지난해 4분기에만 7억7000만달러의 사상 최대 분기 매출을 올리며 기관 친화적 스테이블코인으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페이팔·리플 등 새로운 경쟁자들도 시장 점유율을 잠식 중이다. 올해 1월 기준 스테이블코인 조정 거래량은 월 8조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는데, 그 성장을 이끈 것은 USDT가 아닌 베이스 체인 위의 USDC였다.
테더는 웝 투자와 함께 USAT 출시, 앵커리지 디지털 지분 투자(1억달러), 암호화폐 카드 사업 진출 시사 등 공격적인 사업 다각화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포브스는 2차 시장 거래 기준으로 테더의 기업 가치가 3500억~375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며 "테더의 주요 주주들이 워런 버핏보다 부유해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아르도이노 CEO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이익이 지난해 추정치인 100억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자신했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이번 투자가 진정한 사업 전환인지 단순 홍보 행보인지는 웝 플랫폼에서 USDT·USAT 결제를 실제로 택하는 이용자 수가 판가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1840만 이용자가 거래소 없이 스테이블코인으로 디지털 상품을 사고파는 일상이 현실화되는 그날, USDT의 '거래소 코인' 낙인도 비로소 지워질 것"이라며 "결국 숫자가 아르도이노의 도박에 점수를 매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Copyright ⓒ 한스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