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건의 조용한 시간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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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1 00:00 기준

장동건의 조용한 시간 속에서

맨 노블레스 2026-03-05 01:13:14 신고


 재킷과 셔츠 모두 Dries Van Noten. 
레더 재킷과 팬츠 모두 Brunello Cucinelli, 레더 스카프 Herme` s,
슬리브리스 톱과 슈즈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강남 일대의 반짝이는 고층 빌딩 사이에서 우리가 찾 은 호텔은 눈에 띄지 않는 존재에 가까웠다. 도로에서 한 발짝 물러난 포르테 코셰르, 절제된 파사드. 그 담 담한 태도가 묘하게 장동건을 닮아 있었다. 스카이 로 비를 거쳐 2304호 객실에 들어서자, 한낮의 서울이 통째로 시야에 들어왔다. 전면 유리창으로 쏟아지는 겨울 햇빛이 실내를 환하게 채웠고, 도시의 소음은 얇 게 걸러진 채 방 안에는 고요함만 맴돌았다. 빛을 정 면으로 받은 장동건의 얼굴은 스크린에서 보던 것보 다 부드럽고, 오랜 스포트라이트를 견뎌온 사람 특유 의 침착함이 느껴졌다. 화려한 수식 없이도 충분히 존 재감이 또렷한 사람. 잘 건조된 부빙가 나무 식탁에 앉은 그는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도시의 전경을 바라봤다. 아주 고요하고 선명한 꿈속에 들어온 기분이네요. 20대 중반, 호텔의 전화 교환수 옆을 지키는 택시 드라이버를 연기한 적이 있거든요. 

최종 합격자 명단이 나오는 날, 친구한테 어머니 심부름 같이 가자고 꼬셔서 여의도 MBC로 갔죠. 저보다 친구가 먼저 제 이름을 발견하더니 “네 이름이 왜 여기 있느냐”고, “대학은 허구한 날 떨어지는 놈이 이건 뭐냐”는데 저도 얼떨떨하더라고요. 

<홀리데이 인 서울> 말이죠? 그런 기분 익숙지 않나요? 일상에서 내가 연기한 배역을 마주친 듯한 경험. 도시 곳곳에 그런 장치가 있죠. 제주도에 가면 <연풍연가>가 생각나고, 요즘은 보기 힘들지만, 공중 전화 박스를 보면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떠오르고. 길가의 전봇대만 봐도 여전히 <친구>의 마지막 장면이 그려지고요. 

한 해만 지나도 그리워지는 순간이 수없이 많아요. 부쩍 그리운 시절은 없나요? 가끔 유튜브에서 잊고 있던 모습을 보면 감회가 새로워요. 데뷔 초엔 <가요 톱 10> 같은 음악 방송에서 노래도 불렀거든요. 당시엔 한없이 모자라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사람들이 좋아해주면 감사하면서도 양심에 찔려 인정 할 수가 없었죠. 부족한 능력을 들킬까 봐 무섭기도 했고요. 


재킷과 셔츠, 팬츠, 스카프 모두 Dries Van Noten. 

화이트 재킷과 팬츠 모두 Loro Piana, 
슬리브리스 톱과 스카프 모두 스타일리스 소장품. 

고민이 많은 시기였겠네요. 인생이 휘몰아치는 느낌이었어요. 1992년 MBC 21기 공채 탤런트에 합격하고 얼마 되지 않아 <우리들의 청춘> 시즌 2 주인공으로 캐스팅됐어요. 보통 2, 3년은 방송국 직원처럼 전화받고 소품실 정리하다 엑스트라부터 시작하는데, 너무 갑작스러웠죠. 연기는커녕 대본조차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 보니 첫 촬영부터 정신이 없었어요. 어찌어찌 하는데 다음 작품 섭외가 왔어요. <일지매>라는 사극이었죠. <우리들의 청춘>은 우울한 재수생 역할이니 제가 갖고 있는 모습으로 때우기라도 하는데, 사극은 다르잖아요. MBC에 계약된 직원이니 작품을 거절할 수도 없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2년 계약이 끝나면 연기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어요. 

그래서 한국예술종합학교 1기로 진학했군요. 당시 2학년까지 외부 활동 금지라는 교칙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외부 활동 금지는 큰 문제가 아니었어요. 이렇게 활동해봐야 얼마 못 갈 걸 알고 있었거든요. 한예종도 막 설립되어 새로 생겼다가 없어지는 교칙이 많았는데, 2학년이 끝날 무렵 4학년 졸업까지 외부 활동 금지로 바뀌었죠. 배우 생활을 4년이나 멈추는 건 무리다 싶어 중퇴했고요.

삼수하면서 생계 수단으로 모델 일을 하다 배우가 됐는데, 배우가 된 덕분에 대학에 가게 됐네요. 학원비 받는 것도 눈치 보이고, 어머니가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주는데 면목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건설 현장에서 벽돌도 나르고, 이삿짐 센터도 나갔죠. 그런 와중에 재수 학원 근처에서 캐스팅 명함을 받았어요. 집에 가서 말했더니 아버지가 공부나 똑바로 하라고 엄청 혼내시더라고요.(웃음)

그래도 명함에 적힌 번호로 연락했군요. 아깝기도 하고, 궁금하잖아요. 광고 찍는 회사였어요. 회사에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니 몇 월 며칠에 공항으로 올 수 있느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게 인생 첫 촬영이었는데, 삼성에서 만든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마이마이’ 광고였어요. 

공채 탤런트에는 어떻게 지원하게 된 거죠? 어머니 친구가 MBC에서 공채 탤런트를 뽑는다며 권하셨어요. 밑져야 본전이다 싶어 지원했는데 1차 서류, 2차 실기, 3차 카메라 테스트까지 붙었어요. 최종 합격자 명단이 나오는 날, 친구한테 어머니 심부름 같이 가자고 꼬셔서 여의도 MBC로 갔죠. 저보다 친구가 먼저 제 이름을 발견하더니 “네 이름이 왜 여기 있느냐”고, “대학은 허구한 날 떨어지는 놈이 이건 뭐냐”는데 저도 얼떨떨하더라고요.

MBC 공채 탤런트마저 떨어지고 삼수에 매진했다면 장동건의 미래는 어떻게 됐을까요? 글쎄요. 성적에 맞춰 행정학과, 포르투갈어과, 체대도 시험 본 적 있어요. 체대 시험은 예비 합격자 3번까지 갔는데, 그때 붙었다면 지금 체육 선생님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웃음)

레더 재킷과 이너 톱, 데님 팬츠 모두 Loewe,
워치와 네크리스 모두 Chrome Hearts.
네이비 스트라이프 재킷 Golden Goose, 터틀넥과 링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부침이 나쁜 것만은 아니더군요. 대중과 평단의 시선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고. 연기를 하면서 얻은 것도 많지만 경험하지 못한 것도 많아요. 삶의 공백이 생긴 덕분에

그간 엄두를 못 내던 것들을 할 수 있었어요. 

배우를 시작할 무렵 막연하게 그리던 미래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미래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거대한 목표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단계별로 성장한 것도 아니니까. 눈앞에 주어진 걸 관성처럼 하다 보니 소모되는 느낌이 컸죠. 지금 돌이켜보면 어떻게 감당했나, 한편으론 대견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한예종 중퇴 후 복귀했을 때를 기점이라고 해야 할까요.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친구>, <해안선> 등 잘생긴 배우 이미지를 탈피하는 도전적인 작품을 많이 시도한 것 같아요.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었어요. 이런저런 도전을 하면서 배우의 얼굴보다 작품과 배역이 매력적으로 비치는 연기를 하고 싶었죠. “장동건 잘생겼지”라는 말은 자주 들었지만, “장동건은 연기가 진짜 좋아”라는 말은 못 들었으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의 예상을 벗어나는 작품을 많이 시도했어요.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고, 그간 보지 못하던 새로운 모습을 봤다는 말을 들으면 성취감도 컸고요.

김기덕 감독의 <해안선>에서 연기한 간첩 잡는 해병은 아무리 영화지만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워야 하나 싶을 정도였어요. 강 상병을 연기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촬영 전 해병대 캠프가 정말 힘들었어요. 밤늦게 훈련 끝내고 막사로 돌아왔는데, 목이 말라 죽을 것 같더라고요. 어두컴컴한 데서 물이 담긴 드럼통이 있길래 막 퍼 마셨죠. 다음 날 아침에 보니 군복과 속옷을 빨고 모아둔 물이었어요. 고작 2박 3일이지만, 극한의 감각이 어떤 느낌인지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 있어요.


재킷 Maison Margiela. 

“오늘이 내가 앞으로 살아갈 날 중 가장 젊은 날이죠”라는 대사가 있는데,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아요. 오늘이 제일 좋은 날이구나, 지금이 제일 찬란한 순간이구나.

김기덕 감독이 실제로 군 생활을 한 위도에서 촬영한 걸로 기억합니다. 맞아요. 한 달 조금 넘도록 섬에 갇혀 촬영했는데, 맨날 들개처럼 해안선을 들쑤시고 다니니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더라고요. 그나마 2002 월드컵이 큰 위안이었어요. 촬영 끝나고 다 같이 모여서 응원하는 낙으로 버텼죠.

장동건 하면 <친구>의 동수, <태극기 휘날리며>의 진태를 대표적으로 떠올리지만, 개인적으로 <아나키스트>의 세르게이를 참 좋아합니다. <아나키스트>는 의미 있는 작품이에요. 21세기를 여는 대작이기도 하고 상하이 처둔(車墩)에 위치한 60만 평 규모의 ‘상하이 필름 스튜디오’에서 올 로케이션으로 촬영했는데, 당시 중국에 간다는 것 자체가 생소한 일이었어요. 중국 영화의 상징인 장소에서 한국 영화를 찍었다는 게 자랑스러웠죠. 여명이 부른 주제곡 ‘오늘이 마지막이기를’도 참 좋아요. 듣고 있으면, 1920년대 상하이 일본인 거리가 떠오르거든요. 지배 없는 세상을 꿈꾸며 청춘을 바친 독립투사의 얼굴도 그려지고요.

여명이 서툰 발음으로 부르는 한국말 가사가 오히려 애절하게 느껴지죠. 여전히 고국을 그리워하며 타국에 남아 있을 독립투사의 후손도 생각나고요. 여명이 개런티 없이 불러준 걸로 기억해요. 고맙죠. <아나키스트>는 요즘 들어 다시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감성이나 액션보다 현실적인 모습을 잘 담아낸 영화라 생각하거든요. 의열단원 다섯 명의 개성도 매력 있어서 지금 다시 만들어본다면 어떻게 탄생할지 궁금하네요.

2000년대 이후 장동건은 선과 악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는 경지에 올랐다고 봅니다. 그 무렵 다양한 작품을 경험하면서 성장하는 게 느껴졌어요. 어떤 역할이든 완벽하게 소화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죠. 여러 장르의 작품을 시도하다가 어떨 땐 비슷한 결을 가진 작품만 찍기도 했어요. 대중이 보기엔 자기 복제처럼 느낄지 모르지만, 심화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도 그럴 것이, 참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소화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궁금하네요. 한국 영화의 전성기를 연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제 필모그래피에서 첫사랑 같은 작품이에요. 배우로서 부족한 점이 많지만 안성기, 박중훈 이 두 사람과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러웠죠. 이런 질문 아주 오래전부터 받아왔지만, 여전히 어렵네요.

몇 개 더 꼽아볼까요? <친구>는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자식 같아요. 동수라는 역할을 잘 소화했고, 시대의 정서와 흐름을 잘 타기도 했고요. 흥행은 기대조차 안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스코어를 기록했잖아요. 얼마 전에 알게 된 건데, 소설 <태극기 휘날리며>가 초등학생 권장 도서래요. 소속사를 통해 연락이 왔는데, 어떤 초등학생이 <태극기 휘날리며>를 너무 감명 깊게 봐서 소설로 열 번을 넘게 읽었다고. 그래서 소설책에 사인해주었어요.

<태극기 휘날리며>가 재개봉했을 때 아들과 같이 보기도 했잖아요. 그때 처음으로 아빠로서 위엄을 보였어요. 영화를 보고 나서 ‘우리 아빠가 대단한 배우구나’ 인정하는 눈치더라고요. 한 며칠 말 잘 듣더니 금방 돌아왔지만요.(웃음)


네이비 스트라이프 재킷과 팬츠 Golden Goose, 
터틀넥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SNS에서 가족과 키 순서대로 서서 찍은 사진을 보면서 장동건은 어떤 아빠일지 궁금했어요. 다른 아빠들과 다르지 않아요. 편한 친구처럼 지내려고 노력하죠. 딸은 제가 싫은 소리를 해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야무지고 똑 부러져서.(웃음)

아들이 질투할 수도 있겠는데요. 사춘기라 그런지 어쩔 수 없이 트러블이 생겨요. 아무래도 아들이 더 편해서 따끔하게 혼낼 때도 많은데, 먼저 결혼한 선배들 이야기 들어보면 사춘기 온 딸이 제일 무섭다고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라는데 걱정이네요.(웃음)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아이들이 커가는 시기에 내가 너무 바쁘지 않아서 다행이구나.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인 동시에 배우로서 부침으로 와닿기도 했을 것 같은데. 부침이 나쁜 것만은 아니더군요. 대중과 평단의 시선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고. 연기를 하면서 얻은 것도 많지만 경험하지 못한 것도 많아요. 삶의 공백이 생긴 덕분에 그간 엄두를 못 내던 것들을 할 수 있었어요. 요즘은 조용한 동네 노포에 앉아 친구들이랑 소주도 마시고요. 가끔 지하철도 타요.

일상을 살아가는 장동건도 좋지만, 개인적으로 스크린에서 좀 더 자주 보고 싶은 마음도 큽니다. <열대야>라는 영화가 곧 나와요. 편집은 끝났고 후반 CG 작업 정도 남았는데, 여름에 개봉하지 않을까 싶네요. <보통의 가족> 촬영이 끝나갈 무렵에 제안받았는데,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방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하드보일드 장르로 알고 있습니다. 방콕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두 인물이 마약 사건에 휘말려요. 저는 태국에 파견된 인터폴로, 마약 밀매 조직 소탕 임무를 맡았고요. 쫓고 쫓기는 와중에 사건의 내막을 알게 되고, 정의의 기준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이 또 다른 일이 벌어져요. 한밤중에도 열기가 식지 않는 방콕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지금도 여전히 연기가 재밌나요? 그럼요. 여전히 새롭고, 어렵고, 떨리는데도 계속 하고 싶으니까. 30년이 넘은 시간 동안 만난 모든 사람이 저를 만들어줬다고 생각해요.

장동건의 작품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남녀 간 사랑보다, 다양한 인간관계를 풀어나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도 호흡을 맞춰보고 싶은 배우가 있나요? 참 많은 배우와 작업했지만, 남자 배우와 재회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어요. 그리운 사람이 두 명 있죠. 안성기 선배가 다시 연기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어요. 지난 1월 세상을 떠나실 때 ‘후배들은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왜 일찍 가버리셨냐’며 서운한 마음에 혼자 투정도 부렸죠. 그리고 이선균 배우. 선균이는 저랑 한예종 1기 동기였거든요. 순수했던 학생 시절로 돌아가 선균이랑 신나게 연기해보고 싶어요. 앞으로 만날 기회가 없다는 게 아쉽네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연기를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서 “오늘이 내가 앞으로 살아갈 날 중 가장 젊은 날이죠”라는 대사가 있는데,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아요. 

에디터 강승엽 사진 안주영 헤어 공탄 메이크업 김성혜 스타일링 장현우 장소 협조 파크 하얏트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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