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오미경 기자]
“호르몬, 이제 감이 아닌 데이터다”
- ‘비침습적 호르몬 추정 알고리즘’ 기술로 실시간 개인 맞춤 헬스케어 앞당겨
- 철저한 과학적 검증과 근거 쌓아 흔들리지 않는 기술 선보일 것
우리는 수치를 믿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수치는 거의 보지 못한 채 살아간다. 심박수와 혈당, 수면 상태는 실시간으로 손목 위 디지털 기기에 떠오르지만, 기분의 급변과 체력의 저하, 몸의 노화와 변화에 깊이 관여하는 호르몬은 여전히 병원 안에만 머물러 있다. 김성진 식스레터스(주) 대표는 이 단절에 오래전부터 의문을 던져 왔다. 그는 호르몬을 ‘질병의 결과’가 아니라 몸이 보내는 가장 이른 변화의 신호로 바라본다. 한 번의 검사로 판단되는 수치가 아닌, 여러 기준에 따라 축적되고 비교되어야 할 데이터로서 말이다. 보이지 않아서 방치되어 온 이 지표를 일상의 언어로 번역하려는 시도, 그 질문에서 이 인터뷰는 시작된다.
왜 호르몬인가?
보이지 않는 신호를 따라간 사람
김성진 대표가 호르몬에 집중하게 된 시작은 단순한 아이디어나 시장의 유행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부 학사와 동 대학 의과대학 신경과학 석사과정을 마친 김 대표는 글로벌 바이오 제약회사를 거치며 제약산업의 한복판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고,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의 기술 상용화와 투자, 국제 전시 수상까지 경험하며 산업을 두루 거치는 동안 한 가지 공통된 한계를 반복적으로 목격하면서 문제의식을 느꼈다. 약은 점점 정교해지고, 치료 옵션은 늘어났지만, 그 약이 언제, 누구에게, 어떤 상태에서 가장 적절한지를 설명해 주는 기준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점이었다. 특히 개인차가 극단적으로 큰 영역일수록 의료 판단은 평균값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개인의 몸은 충분히 설명되지 못한 채 남겨지는 현실적 공백을 그는 오래전부터 문제로 인식해 왔다.
김 대표가 호르몬을 선택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같은 수치라도 누군가에게는 문제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이상 상태가 아니란 점에서 개인차가 극명하게 나뉘는 호르몬 지표는 그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었다. 게다가 몸의 거의 모든 변화에 관여하는 호르몬은 하루 중에도 크게 변화하고, 수면·스트레스·운동과 같은 생활 요소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단일 측정으로는 정확한 상태 파악이 힘들다는 점, 그런데도 대부분 호르몬 정보는 병원에서 한 번의 혈액 검사로 확인될 뿐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추적되지는 않는다는 문제, 검사 접근성을 낮추는 고비용 구조 및 여성 호르몬·멜라토닌 같은 특수 호르몬 검사의 현실적 한계를 직시하며 비어 있던 영역에 대한 그의 의문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즉, 호르몬은 평균 대비 높고 낮음의 기준이 아닌 ‘나의 과거 상태와 비교했을 때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에 초점을 맞춰 파악해야 할 하나의 건강 지표이며, 지금의 의료 시스템은 이 변화를 포착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그리고 오랜 생각은 곧 창업으로 이어졌다. 김 대표는 기존 의료를 대체하려는 기술이 아니라 의료 이전 단계에서 호르몬 모니터링을 통해 몸의 변화를 먼저 감지하고, 예방 및 관리 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고 싶었다. 병원에 가야 할 순간을 조금 더 일찍 알려주고, 자기 몸을 이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점을 제공하는 것, 그에게 호르몬은 치료의 대상이기 전에 가장 솔직한 몸의 신호였다.
모조킹(MOJO KING), 알고리즘을 현실로 옮기다
김성진 대표는 호르몬 모니터링의 핵심을 “호르몬 변화의 ‘방향’과 ‘패턴’을 읽어냄으로써 나에게 최적인 호르몬 상태를 아는 것”이라 강조한다. 그 필요성이 높은 대표적인 예로 탈모 치료를 들었다. 많은 사람이 탈모는 남성 호르몬 탓이라는 막연한 인식으로 정확한 진단 없이 약을 먹으며 효과가 없으면 용량을 늘리고, 우울감이나 성 기능 저하와 같은 부작용을 겪는 등 호르몬 상태에 대한 정확한 측정·추적 부재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까닭이다.
호르몬 모니터링의 필요성에 근거해 식스레터스(주)가 개발·고도화 중인 기술의 핵심은 ‘비침습적 호르몬 추정 알고리즘’이다. 이미 일상에서 사용 중인 스마트워치의 심박변이도(HRV)와 광학 기반 생체 신호(PPG)를 활용해 남성 호르몬 변화의 상관관계를 추정하는 것으로, 이 알고리즘은 단순히 이론에 머물지 않고 최근 스마트워치 기반 애플리케이션 ‘모조킹(MOJO KING, 이하 모조킹)으로 출시되며 현실로 구현됐다.
모조킹은 시간대별, 주간·월별 호르몬 흐름을 시각화하여 자신의 호르몬 패턴을 연속적으로 관찰하고, 변화의 방향성을 읽어 실생활 관리에 적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또한, 사용자의 목적에 따라 다른 화면과 해석 방식을 제공하는 점도 눈에 띈다. 예를 들면, ‘운동 모드’는 고강도 근력 운동 전후의 테스토스테론 변화 폭을 비교해 회복 상태와 운동 강도를 점검하도록 설계, 운동의 질을 높이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데이트 모드’는 보다 가벼운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데 이른바 ‘테토남’, ‘에겐남’ 같은 분류를 통해 호르몬 변화를 일상적인 언어로 번역하고, 사용자가 자신의 상태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얼핏 단순한 엔터테인먼트 요소처럼 보이지만, 그 기반에는 연속 데이터가 숨어있다. 그리고 ‘의료 모드’는 변화 폭과 이상 신호에 더 집중하여 특정 시간대에 호르몬 패턴의 급격한 변화가 감지되면 병원 방문을 고려하도록 안내하는 방식이다.
식스레터스(주)는 현재 남성 호르몬 중심으로 ‘비침습적 호르몬 추정 알고리즘’을 기술 고도화하고 있으며 연내에 모조퀸(MOJO QUEEN)이란 이름 아래 여성 호르몬 영역으로도 확장해 생리 주기, 갱년기, 난임 관리까지 아우르는 다중 호르몬 추정 플랫폼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기술은 조용히, 그러나 과학적으로
김성진 대표의 행보가 흥미로운 이유는 그가 ‘속도를 조절할 줄 아는 창업가’라는 데 있다. “보여주기식 기능보다 과학적 근거를 쌓는 게 먼저”라는 그의 말은 시장이 원하는 화려한 기능보다 쌓여야 할 근거를 더 우선하는 식스레터스(주)의 프로젝트 추진 속도와 방향을 그대로 담고 있다. 실제로 식스레터스(주)는 지난 창업 1년 여의 시간 동안 기술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특허와 논문, 데이터 협업을 차분히 축적해 왔다. 미국 CDC(질병통제예방센터) 공공 데이터와 대규모 인구 기반 호르몬 데이터셋을 통해 ‘비침습적 호르몬 추정 알고리즘’을 학습·검증했고, 분당서울대병원, 영국 UK 바이오뱅크 등 국내외 협업을 통해 실제 의료 데이터 기반 분석을 완료 및 진행 중이다. 따라서 축적된 데이터와 철저한 과학적 검증의 선행으로 구현된 모조킹은 단순한 웰니스 앱이 아니라, 디지털 헬스케어와 의료 사이의 공백을 채워줄 혁신적 플랫폼에 가깝다.
이제 다음 단계로의 진입을 앞둔 식스레터스(주)의 전략 역시 명확하다. 김성진 대표는 초기에는 건강 관리 목적의 B2C 서비스로 시장에 진입하되, 이후 적극적인 임상과 알고리즘 고도화를 통해 의료기기 등록 및 미국 FDA 510(k) 인허가까지 확장하는 단계적 접근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 과정도 공격적이되 무리하지 않는다는 계획이다. 스마트워치 기반 플랫폼을 중심으로 안드로이드, 갤럭시 워치, 스마트 링 등으로 확장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으며, 대형 업체와의 파트너십 구축 및 건강 앱 기본 탑재 논의도 병행하고 있다. 여기에 디지털 마케팅을 통해 초기 사용자군을 확보하고, 피드백을 반영해 제품을 개선하는 빠른 시장 테스트 구조를 갖춰 시장 확장성을 탄탄하게 갖추겠다는 전략이다.
세계 시장을 향한 시선도 분명하다. 웨어러블 헬스케어와 디지털 생식 건강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가운데, 본격적으로 ‘호르몬’을 겨냥한 플랫폼은 드물기에 김 대표는 이를 ‘아직 정의되지 않은 미개척 영역’으로 바라보며 신뢰할 수 있는 기준선을 먼저 만들어갈 생각이다.
개척자가 다음을 그리는 방식
그리고 이 모든 확장의 설계 뒤엔 이미 산업 안에서 충분히 증명되어 온 김성진 대표의 이력이 놓여 있다. 글로벌 제약사에서 대규모 임상을 수행하고, 마케팅 수장으로서 대형 제약사들과의 협업 및 블록버스터 제품의 사업을 이끌었던 경험, ’CES 2026 Innovation Award 디지털 헬스케어 부문 심사 위원,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자문 위원으로도 활동해 온 시간은 단 몇 줄의 경력이 아닌, 김 대표가 기술을 다루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런 그가 지금 서 있는 자리는 더 크고 화려한 조직이 아니라 소수의 연구 인력으로 구성된 스타트업이다. 데이터 분석과 알고리즘 고도화를 직접 챙기고, 외부 신뢰 기관과의 협업을 끌어내며, 과학적 검증과 근거를 하나씩 끈질기게 쌓아가는 방식 속에서 그는 규모보단 밀도로 승부를 걸겠다고 말한다.
“기술은 결국 남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축적의 속도로 나아가겠습니다.”
유행을 좇고 평균을 답습하기보다 사회에 실질적 가치를 제공하는 기술 개발 및 적용에 방점을 두고, 보이지 않는 영역을 조용히 파고드는 길. 화려한 이력 위에 김성진 대표가 다시 연구자의 자세로 돌아온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아직 대중에게는 낯설지만, 헬스케어의 다음 방향을 미리 점유하고 있는 식스레터스(주)의 행보는 그렇게 조용히 산업의 기준을 바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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