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1세대 빈티지 컬렉터 사보는 말한다. 우리의 공간은 지금보다 훨씬 더 다채로워질 수 있다고. 거실과 방은 물론 침실과 화장실, 심지어 늘 스치듯 오가는 현관까지 말이다. 오는 4월과 10월, 노블레스 컬렉션에서 두 차례 전시를 앞둔 사보 작가를 그의 아틀리에에서 만났다. 한국에서 바우하우스라는 개념이 아직 먼 나라 이야기고 빈티지는 곧 골동품을 의미하던 시절, 1990년대 초 독일로 미술 유학을 떠난 사보는 바우하우스와 운명적으로 조우하며 빈티지 수집에 빠져들었다. 어린 시절 서울 원남동 한옥에서 지내며 오래된 것이 품은 가치를 알아보는 눈을 자연스럽게 키운 덕분일까. 디자인과 무관했던 한국 청년이 독일 빈티지에 그토록 깊게 빠져든 건 어쩌면 예견된 일인지 모른다. 이후 도서관을 드나들며 디자인을 공부하고, 벼룩시장을 뒤지고, 길가에 버려지다시피 한 빈티지를 건져 올리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가 모은 것은 단순히 물건이 아니라 분위기와 시간의 결이었다. 그렇게 독일과 한국에 창고를 몇 개나 둘 정도로 불어난 소장품과 함께 2000년대 초부터 한국에서 컬렉션 전시를 이어갔다. 사보에게 전시는 소장품을 보여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누군가의 공간, 나아가 삶을 바꾸는 일이라 믿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많이 보고 충분히 느껴야 해요. 그래야 시간이 지나도 자연스럽게 내 공간에 그 경험이 스며들죠. 유행을 좇기보다는 ‘진짜 멋’이 무엇인지 몸으로 익히는 과정이 필요해요.” 디지털 이미지가 많은 경험을 대체하는 시대, 사보가 노블레스 컬렉션에 만들어낼 장면은 어떤 감각을 선사할까? 다가오는 사보의 새로운 전시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그간 수집한 컬렉션을 주제로 여러 번 전시를 열었습니다. 오는 4월과 10월에는 노블레스 컬렉션에서 두 차례 전시를 앞두고 있죠. 전시를 기획할 때 중요시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동시대 사람들의 니즈를 본질적으로 파악하려 해요. 근래 조명, 책상, 의자 등 단일 오브제에 대한 개별 수요가 높아졌는데, ‘지금 머무는 공간’을 더 잘 꾸미고 싶어 한다는 뜻이죠. 하지만 현실은 대부분 아파트에 삽니다. 그중 현관은 가장 획일적인 공간이에요. 한쪽 벽에는 신발장, 천장에는 센서 등이 있는 것처럼 모든 집이 거의 비슷하죠. 이번 노블레스 컬렉션에서는 현관을 주제로 전시를 기획 중입니다.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서로 다른 시간대의 현관을 연출할 생각이에요.
현관은 순전히 내부 진입을 위한 기능적 공간이잖아요. 주제로 삼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현관은 집의 이미지를 여는 첫 장면이자 공간의 아이덴티티가 시작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독일 뷔르츠부르크에 사는 친구 집에 갔을 때 아름다운 현관을 보고 놀란 적이 있어요. 독일에는 100~200년 된 집도 문을 열면 ‘이런 분위기가 가능해?’ 싶을 만큼 멋진 현관이 많습니다. 그 경험을 떠올리며 이번 전시를 구상했어요. 저는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공간을 예술적으로 풀어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구와 오브제, 조명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풍경이 나타나고, 관람객은 그 안을 거닐며 자기 집 현관을 떠올릴 거예요. 단순히 신발만 신고 벗는 좁은 공간이 아니라 각자 개성을 담는 장소로 다시금 인식되길 바랍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이어온 수집이 30년을 넘었습니다. 1993년 독일 유학 시절 만난 바이센호프지들룽이 결정적 계기가 됐죠. 바우하우스의 정신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처음 마주한 바이센호프지들룽은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1927년 미스 반데어로에를 비롯한 여러 건축가가 만든 주택단지인데, 지금도 사람들이 살고 있죠. 공간이든, 가구든 잘 유지하려면 사용되어야 한다는 걸 그때 깨달았어요. 이후 바우하우스 디자인에 빠져들었고, 건축부터 작은 벽 등까지 그 흐름에서 나온 사물을 닥치는 대로 탐닉했습니다. 방학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림 판 돈도 컬렉팅에 다 썼죠. 바우하우스 디자인은 미니멀하지만 ‘분위기’가 있어요. 공간의 규모와 관계없이 환경을 합리적이고 편안하게 만들고, 미적 감각까지 담아내죠.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는 이유입니다.
세상엔 무수한 디자인이 존재합니다. 그간 컬렉팅의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바우하우스 시대부터 1970년대까지 물건에 주로 마음이 가요. 장식성이 강한 아르데코는 선호하지 않죠. 아르데코가 상류층만 향유하던 디자인이라면, 바우하우스는 누구나 누릴 수 있도록 만든 디자인이잖아요. 또 저는 의자나 책상, 이렇게 한 카테고리만 모으지 않아요. 제가 수집하는 이유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거든요. 이를 두고 ‘공기를 수집한다’고 말하곤 하죠. 제게 수집은 종합예술이나 다름없습니다.
아래왼쪽 나무 조각을 도금한 1890년대 천사 오브제로 장식한 벽.
아래오른쪽 사보 작가
사보의 수집 역사에서 가장 큰 전환점은 언제였을까요. 제 공간을 마련한 거예요. 2005년 뉴욕에서 프리랜스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다, 한국에 돌아와 잡지사 미술부에서 편집 디자이너로 잠시 일했어요. 하지만 회사를 다니며 개인 작업을 할 수 없어 곧 그만두고 상수동에 7평짜리 작업실을 얻어 다시 그림에 몰두했죠. 이후 베이직하우스와의 컬래버레이션이 성공하면서 그 수익으로 카페 ‘사보 스페이스’를 열었습니다. 덕분에 제 컬렉션을 한 공간에 집약해 보여줄 수 있었어요. PKM갤러리 박경미 대표로부터 전시 제안을 받는 계기도 됐고요.
그러다 2015년 마장동 아틀리에로 와 그림 작업에 좀 더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죠. 이곳 역시 하나하나 흥미로운 사물로 가득합니다. 이 중 작가님 곁을 가장 오래 지킨 것은 무엇인가요? 찰스 & 레이 임스의 1950년대 로비 체어예요. 1995년 길에서 어떤 할머니가 버리려던 걸 우연히 받아온 게 인연의 시작이었죠. 문제는 집까지 가져가는 거였어요. 버스를 타야 했는데, 계속 승차를 거절당했거든요. 정류장에 의자를 두고 그 위에 앉아 책을 읽으며 한참 동안 기다렸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저를 보면서 웃었어요. 다행히 막차는 탈 수 있었습니다.(웃음) 그렇게 어렵사리 데려온 터라 지금도 제겐 각별한 의자입니다.
오브제 하나하나 각별한 사연이 깃들어 있겠네요. 전시를 계기로 소장품이 다른 이의 손에 넘어갈 때 아쉬움은 없나요? 저는 가구만 모은 게 아니라 과거 경험과 사람들의 관계까지 함께 수집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 손을 떠날 때면 아쉽지만, 그 오브제가 다른 사람에게 가서 더 잘 쓰이길 바라는 마음이 큽니다. 제게 컬렉션은 물건 이상의 가치가 담긴 존재예요. 전시를 통해 스토리텔링을 하는 이유도 결국 그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어서죠.
오랜 시간 컬렉팅을 이어온 1세대 컬렉터로서 현재 고민은 무엇인가요? 앞으로 ‘사보’라는 이름이 어떤 의미로 남기를 바라는지도 궁금합니다. 제가 올해 환갑인데, 제 컬렉션을 언제까지 창고에만 두는 게 맞을지 고민돼요. 기부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여건이 녹록지 않아 아쉬운 마음입니다. 사실 제 이름은 기억되지 않아도 괜찮아요. 전시나 인터뷰를 해온 것도 저를 알리기보다는 좋은 디자인을 알리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어요. 한국 사람들의 안목과 삶의 공간이 나아지는 데 기여했다는 정도면 충분해요. 국내에 더욱 다양한 리빙 아트가 도입돼 보다 다채로운 라이프스타일이 자리 잡기를 바랍니다.
오른쪽 1960년대 하비 구치니(Harvey Guzzini)가 디자인한 플로어 스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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