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한 줄 평
“완고하고 견고한 유혹 사이를 걸으며 내 안의 통증을 마주하고 있다.”
▲시 한 편
<한밤의 안부> - 김희경
한밤에 부고가 떴는데요
어둠에 결박당한 내 몸이
자꾸 신의 거처를 기웃거려요
여러 모양의 석상들은 아직도
검은 고독 속을 헤매고 있어요
상비약은 떨어진 지 오래고
뻗쳐오르는 넝쿨 때문에 매일 불면이에요
시간을 담보로 미래를 요구하는 과거는
희망을 견인할 능력이 없어요
따라서 지붕 위에 푸른 잔디를 심어야 해요
무채색의 화환을 보았나요
흑백은 끝끝내 채도가 낮아요
여지없이 비가 내리는
그런 날엔 한밤에도 유채색 꽃들이 펴요
부디 평안을 빌어요
씨앗을 뿌리는 자세여야 해요
그래야 나도 당신도
화려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시평
이 시가 수록된 시집은 프랑스 파리를 여행한 경험에 관해 쓴 연작이다. 이를 참작하면 한밤에 받는 부고는 여행 중에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과 프랑스의 시차는 8시간, 파리가 한밤이면 서울은 (이른) 아침이다. 물리적 거리 때문에 시적 화자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위로 문자나 전화, 조의금을 보낼 수 있지만, 직접 찾아가 조문하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무력함에 “자꾸 신”을 찾고, 몸과 마음이 아파 “상비약”을 찾는다. 고인과 어떤 관계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상당히 친하다는 건 확실하다. 가보지 못하는 미안함과 상념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오랜 인연에 따른 슬픔으로 불면의 밤이 깊어진다. 통증이 “넝쿨”처럼 기어오르고, 고인과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앞으로 함께할 수 없는, 희망이 없는 미래에 대한 공포도 스며든다. 그럼에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지금까지의 관계를 바탕으로 좋은 기억의 씨앗을 심어야 한다. 그것이 최고의 추모일지도 모른다. 지상보다 높은 “지붕 위”는 현 세계가 아닌 사후 세계에 대한 암시일 수 있다. 그곳에 “푸른 잔디”를 심는 행위는, “무채색”을 “유채색”으로 만드는 일 중 하나다. 즉 사후 세계에 대한 축원이다. 어쩌면 물리적 거리나 시간을 핑계로 조문하지 못한 자책과 조화를 보내는 마음에 대한 완곡한 표현일 수도 있다. 무채색을 유채색으로 변하게 하는 “비”는 희망의 상징이면서 시적 화자의 마음에 대한 화답이다. 또한 그 비에 대한 화답은 “씨를 뿌리는” 일이다. 마음의 축원에 비로 화답하고, 그 비로 “유채색 꽃들”을 피우는 일 말이다. 그런 일련의 과정이 후손의 성장으로 이어지고 확장하려는 마음이 배어 있다면 비약일까. “화려한 일상”은 슬픔에 함몰되지 않으려는 처절한 ‘생의 의지’이자, 작별 인사다. 속으로 울지만, 웃으며 이별하고자 하는 애이불비(哀而不悲)의 마음이다. (김정수 시인)
▲김정수 시인은…
199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사과의 잠』 『홀연, 선잠』 『하늘로 가는 혀』 『서랍 속의 사막』과 평론집 『연민의 시학』을 냈다. 경희문학상과 사이펀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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