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최소라 기자] 국회가 자사주 소각을 원칙화하는 ‘3차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증권업계의 희비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역대급 실적을 바탕으로 ‘주주환원 랠리’에 올라탄 대형사와 달리, 자사주 비중이 높은 중소형사들은 소각 시 유통물량 부족으로 인한 ‘상장폐지 리스크’라는 외통수에 걸리며 진퇴양난에 빠졌다. 9조원대 사상 최대 이익을 낸 증권가가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을 향한 거센 파고 속에서 체급별 ‘양극화’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역대급 실적이 키운 환원 여력
4일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국내 27개 증권사의 지난해 합산 순이익은 9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종전 최고치인 2021년(8조5000억원)을 넘어선 사상 최대 실적이다. 코스피 지수 상승과 거래대금 회복이 실적 견인차 역할을 하면서 배당 및 자사주 소각을 위한 기초 체력이 충분히 확보하면서다.
신승환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원은 “위탁매매와 금융 부문이 실적 개선을 주도했다”며 “특히 4분기 증시 호황에 따른 주식 및 집합투자자산 운용 이익이 5조6000억원에 달했다”고 설명했다.
◇저PBR 늪 탈출구 된 자사주 소각
자사주 소각은 발행주식 수를 줄여 주당순이익(EPS)을 높이고, 자기자본 축소를 통해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다. 이는 증권업종의 고질적인 저주가순자산비율(PBR) 구조를 깨뜨릴 핵심 열쇠로 꼽힌다.
강승건 KB증권 연구원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로 잠재적 매물 폭탄(오버행) 우려가 영구적으로 사라졌다”며 “이는 경영진의 적극적인 수익성 개선 노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형사 ‘속도전’…대신·미래에셋 등 대규모 환원
대형 증권사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대신증권은 상법 개정안 발효 시점부터 6개 분기에 걸쳐 보유 자사주를 소각한다. 전체 자사주 24.3% 중 18.4%를 없애기로 하며 업계에서 가장 선제적인 실행 계획을 밝혔다.
미래에셋증권은 현금과 주식을 병행하는 입체적 환원을 택했다. 총 4653억원 규모의 배당과 함께 보통주 약 1177만주 등을 소각한다. 삼성증권과 키움증권도 각각 3572억원, 3011억원 규모의 현금배당을 결정하며 화답했다. NH투자증권은 지난해 52%의 주주환원율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자사주 매입·소각 기조를 유지할 방침이다.
◇중소형사 ‘상폐 리스크’에 고심 깊어
반면 자사주 비중이 극단적으로 높은 신영증권(53.1%)과 부국증권(42.7%) 등은 장고에 들어갔다. 자사주를 전량 소각할 경우 유통 주식 수 부족으로 상장폐지 요건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영권 방어 수단인 자사주를 무조건 환원에 투입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제약도 크다.
SK증권의 경우 주가 반등으로 한숨을 돌린 사례다. 자사주 소각 기대감에 연초 643원이던 주가가 최근 1200원대로 올라서며, 7월 시행 예정인 ‘1000원 미만 종목 관리종목 지정’ 위기에서 벗어났다. 다만 사측은 “소각 여부는 미정”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대형사와 중소형사의 자본 여력 격차가 뚜렷해 주주환원 양극화가 나타날 수 있다”며 “결국 실적 안정성을 바탕으로 환원 정책을 지속할 수 있느냐가 향후 밸류에이션 재평가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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