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없다는 것은 시간이 드는 일이다. 그러면 빨래방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고, 버스 정류장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고, 무료 진료소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고, 중고품 가게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고, 은행이나 신용 카드 회사나 전화 회사와 어떤 수수료에 대해서, 어떤 작은 요금에 대해서, 어떤 실수에 대해서 통화하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67쪽)
사람들은 대부분 계급을 통제나 배제의 수단으로 여기기보다 재산이나 교육처럼 우리가 획득할 수 있는 속성들의 집합으로 여기기를 선호한다. 이 접근법에서 어떤 사람의 계급은 그가 경제 자본, 문화 자본, 사회 자본이라는 세 종류의 자본을 각각 얼마나 가졌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달리 표현하자면 그가 무엇을 소유하는가, 무엇을 아는가, 누구를 아는가다. -(98쪽)
만약 세상 모든 것의 가격에 사회적 비용이 반영된다면 많은 것이 지금보다 훨씬 더 비싸지리라는 생각이 든다. 생수도, 온라인 쇼핑도, 총알도 그럴 것이다. 한편 어떤 것은 그 저렴함 자체가 사회적 비용이다. 맥너겟이 저렴한 것은 거의 걷지도 못하는 상태로 사육된 닭들의 희생 덕분이고, 공장에서 분당 마흔 마리의 속도로 닭들의 내장을 제거하고 절단하는 노동자들의 희생 덕분이다. …… 자본주의는 어떨까? 나는 궁금해진다. 우리가 자본주의 자체에도 세금을 매길 수 있을까? -(131~132쪽)
내 생각에 그녀의 질문은 이 일의 즐거움이 어디 있느냐는 뜻인 듯하다. 즐거움은 만드는 과정에 있다는 것, 이것은 내가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과정 자체가 즐겁기만 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 과정은 작곡가가 잘 기록했듯이 까다로운 질문의 연속이다. 그런 질문들에 응답하는 데는 일과 노동이 둘 다 든다. 어쩌면 나는 새로운 단어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이것저것 고민한 끝에 나는 〈서비스〉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우리는 예술을 섬기는 거예요. 우리는 예술에게 굽히는 거죠.」 나는 학생에게 말한다. 즐거움은 바로 이 자세에, 일로써 우리가 더 나아지는 자세에 있다. 이것은 지배하는 즐거움이 아니라 지배당하는 즐거움이다. -(173쪽)
사람들이 일에서 바라는 것은 〈일용할 양식뿐 아니라 일용할 의미〉라고,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죽어 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라고〉 터클은 말한다. 터클이 인터뷰한 농부와 비행기 승무원과 매춘부와 주식 중개인 등등 중에는 자기 일을 무척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석공, 피아노 조율사, 제본업자, 그리고 목수 겸 시인인 사람이 그랬다. 잡역부는 자신이 잡역부인 것을 개의치 않았다. 그는 자신이 건물 엔지니어라고 불리기를 바라지 않았다. 〈날 그냥 잡역부라고 부르면 됩니다. 잡역부인 게 무슨 문제인가요.〉 하지만 그는 눈삽이나 자루걸레를 사용할 때 허리가 아픈 점에는 신경을 썼다. -(204~205쪽)
바틀비처럼, 나는 그렇게 안 하고 싶다. 이래라저래라 지시를 안 듣고 싶고, 주식 시장에 투자를 안 하고 싶다. 타인의 노동으로부터 이윤을 짜내는 체제에 돈을 안 넣고 싶다. 이것은 내가 그 계좌를 열 때 〈저위험〉 옵션을 고른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나는 상담사에게 이런 말을 하지는 않는다. -(223쪽)
그녀를 응시하면서 나는 성취에 대해, 그녀의 성취와 나의 성취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것이 돈과 얼마나 깊이 관계되어 있을지 생각해 본다. 만약 구겐하임 지원금이 없었다면, 나는 집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만은 확실하다. 내가 집 계약금으로 지불했던 돈은 그 대신 글을 쓸 시간을 사들이는 데 쓰였을 것이다. 「그건 선물이 아니었어.」 존은 말한다. 그 돈이 왔을 때 나는 그것을 내 일에 대한 보수로 여겼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투자였다. -(272쪽)
사람들은 프레카리아트를 계급으로 잘 인식하지 못하고, 프레카리아트 스스로도 그렇다. 프레카리아트에는 기결수와 망명 신청자와 싱글 맘과 예술가가 포함된다. 교육을 받았지만 그 분야로는 일을 찾지 못한 사람들도 포함된다. 또한 대학 학위가 없는데 자신들의 부모와 조부모가 했던 종류의 일, 가령 공장이나 광산의 일자리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포함된다. 이들이 모두 공통으로 갖고 있는 특징은 안정성 결핍이다. -(310쪽)
「시간과 돈을 보면 그 사람에게 중요한 게 뭔지 알 수 있죠.」 이 이웃은 언젠가 내게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시간과 돈을 음악과 연극에 써서, 콘서트와 공연을 보러 다닌다. 그녀는 예술에 투자한다. 나는 내게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면서도 내 시간은 글에 쓰고 내 돈은 이 집에 쓴다. 나는 땅을 파는 동안 한 가지 결정을 내린다. 나는 책 ─ 이 책 ─ 을 팔아서 나 자신에게 시간을 사 줄 것이다. 내가 이미 글쓰기에 써버린 내 시간이 제값을 스스로 치를 것이다. -(365~366쪽)
■ 『소유하기, 소유되기』
율라 비스 지음 | 김명남 옮김 | 열린책들 펴냄 | 424쪽 | 2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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