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뉴욕에서 학교를 다니며 각종 헤비 필카컬렉터들과 친분을 쌓던 본 필붕이는 한 컬렉션을 구경하던 중 말도 안되는 물건을 보게 된다…
그것은 바로 1926년 아그파에서 출시한 Mentor Wonder reflex
당시 기준 말도 안되는 f1.9의 조리개값을 가진 135mm Prolinear 렌즈가 달려나온 이 카메라는 당시 아주 느리던 르미에르 컬러 플레이트 작업이나 프레스용으로 출시되었던, 6X9 포맷의 중형 SLR 카메라다.
당대에 인기가 출중했던 Goltz & Breutmann 사의 Mentor SLR에 마운트만 아그파에서 새로 만들어서 자사 산하의 Riezschel 렌즈를 달아 출시한 것인데, 영국 카탈로그에만 등장하는 것을 보아 영국에서만 팔린 것으로 보인다.
(Prolinear 단면도)
당연히 엄청난 가격을 자랑했고 생산기간도 짧았던 물건인 만큼 너무나 귀한 카메라이다. 웹에 쳐봐도 Leitz Auction에서 팔린 기록 몇개 포함 여섯 일곱대 정도만 검색이 된다. 렌즈가 6X9 포맷이 커버가 되는 거의 유일한 f1.9짜리 렌즈라 컬렉터들은 카메라는 갖다 버리고 렌즈만 적출해서 쓰다보니…. 좀 환장하는 물건이긴 하다.
나한테 처음 이 카메라를 보여주셨던 컬렉터 분은 렌즈를 적출해서 대형카메라에 달아 쓰고 계셨는데, 중형 렌즈인 만큼 이미지 서클이 작아서 완전하게 사용을 하시진 못하셨다.
나는 속으로 바디 고쳐서 쓰면 안되나… 싶었지만 도면도 수리 매뉴얼도 없는 백년 전 카메라를 수리해서 쓴다는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니기에, 그리고 당장 내가 구할 일도 없을 줄 알았기에 그냥 생각만 하고 넘겼었다.
그러던 작년 초
띠용
이베이에 거의 걸레짝 시체 상태의 Mentor wonder reflex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올라왔고, 술김에 그냥 질러버렸다.
어느정도 예상했건만 더 처참한 상태의 물건이 왔다.
렌즈는 헤이즈 덩어리에 셔터는 아예 구동이 안되고 미러는 죽었고 나사도 몇개 없다.
뭐 당연한거긴 하다 백년이 넘었으니.
원래 스근하게 리스토어해서 쓸 생각이었던 나는 생각보다 더욱 쌉꾸릉내나는 상태에 잠깐 좌절했지만, 마음을 고쳐잡고 일단 카메라를 뜯었다. 렌즈는 바로 거인광학으로 보내고 카메라는 내가 고치기로 했다.
미러가 자연분해되서 렌즈를 빼자마자 지 혼자 마중나옴;;
당연히 셔터막과 미러 뒷면 라이트씰도 개판.
미러 자체도 은 도금이 다 벗겨져서 도저히 쓸 수 없는 상태.
그래도 일단 더 뜯는다.
셔터 컨트롤이 들어있는 사이드 프레임. 생각보다 구조는 단순한데 잘 맹글었다. 위의 노브로 셔터 슬릿 크기를 조절해서 셔터스피드를 대충 맞추고, 밑의 스프링 텐션을 조작해서 셔터가 움직이는 속도를 조절해 더 정확한 스피드를 맞추는, 아주 원시적인 형태의 포컬 플레인 셔터다.
옛 윤활유로 구동부가 범벅이 되어있어서 일단 분해.
본격적인 닦조칠 시작. 모든 부품은 초음파 세척기로 청소하고 실리콘 구리스를 발라서 둔다.
백년된 셔터막. 고무 코팅이 다 일어나서 핀홀덩어리인 상태에 이 연식의 독일제 셔터막 특징인 오래되면 습기먹어서 두꺼워지는 고질병에도 걸려서 구동 자체가 안된다.
일단 막무가내로 새 셔터막 재단.
재조립.
이쯤에서 중간 점검을 했는데, 메인스프링이 너무 오래되서 장력이 부족한 관계로 아무리 노력을 해도 벌브와 T 셔터는 살릴 수가 없었다. 아쉽지만 일단 쓸 일은 잘 없으니 넘김.
라이트 씰은 원본이랑 비슷한 재질의 검은색 기름종이로 만들어서 다시 넣었고, 이미 죽어버린 미러도 카메라용 미러를 커스텀 사이즈로 재단해서 파는 이베이 셀러에게 새로 주문해서 넣었다.
제일 중요한 렌즈도 운이 좋게 알 자체 상태는 나쁘지 않아서, 거광 사장님이 잘 클리닝 해주셨다.
볼만해졌다!
여기까지 딱 한달 걸림.
셔터도 구동이 되고, 미러도 렌즈도 핀 맞추고 깨끗한 상태에, 나는 이제 테스트롤을 찍을 생각에 잠을 못자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 당연한 문제를 하나 잊고 있었으니..
맞는 필름백이 없음;;;;
백년전 독일제 중형 SLR들은 호환성따윈 개나 줘버린 독일제 답게, 회사마다 백 마운트가 다 달랐고, 주로 대형 홀더의 작은 버전을 쓰지 롤필름 홀더를 잘 쓰지도 않았다 = 잘 맞는 순정 홀더는 구하는걸 포기하면 되는 것이다.
어댑터를 깎아서 만들지 않는 이상 사진을 찍을 수도 없는 개비싼 고철덩어리를 집에 두게 된 나는 그냥 두달 정도 이 프로젝트를 유기했다.
근데 살다보면
개띠용
이런 일이 다 있다.
같은 Mentor 사의 프레스 카메라인 Mentor II가 나는 한번도 본 적도 없는 전용 롤필름 홀더와 함께 이베이에 떠버렸다. 역시 이베이가 최고다.
바로구매
아주 잘 맞는다
바로 테스트샷. 6X9의 판형과 f1.9의 조리개값이 주는 심도는 진짜 갬동 그 자체였다. 몇롤 더 찍었지만 사람 얼굴이 안나온 사진이 저것 뿐이라 일단 한장만..ㅠ
그렇게 모든 수리가 완료된 Mentor wonder reflex.
이제는 내 카메라장에서 제일 귀한 몸으로 군림하고 계신다.
긴 뻘글 읽어줘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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