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패션 위크 한가운데, 가장 날 것의 아이디어가 충돌하는 실험실이 있습니다. 익숙한 하우스 브랜드의 노련함 대신, 아직 규정되지 않은 감각과 태도가 뒤섞이며 전혀 다른 방향의 실루엣이 탄생하는 자리이죠. 2000년 런던에서 룰루 케네디가 설립한 ‘패션 이스트’는, 런던 패션 위크 공식 일정 안에서 신진 디자이너들이 컬렉션을 선보일 수 있도록 지원하는 비영리 플랫폼입니다. 선정된 디자이너들은 재정적 후원과 멘토링을 받으며, 자신의 이름으로 독립적인 쇼를 올리게 되는데요. 이곳은 하나의 경향을 제시하기보다, 서로 다른 시선이 한 무대에 모여 각기 다른 분위기의 컬렉션을 볼 수 있죠.
@fashion_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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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W 앤더슨
이 무대를 거쳐 간 이름들만 보아도 패션 이스트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은 조나단 앤더슨인데요.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 JW 앤더슨을 막 시작하던 시절, 그는 이 플랫폼을 통해 런던에서 컬렉션을 선보이며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당시부터 성별의 경계를 흐리는 실루엣과 클래식을 비틀어 재구성하는 방식이 두드러졌죠. 구조를 변형하고 익숙한 아이템의 쓰임을 바꾸는 시도는 지금의 조나단 앤더슨을 떠올리게 할 만큼 일관된 태도였습니다.
야체크 글레바
IMAX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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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2026 가을 겨울 시즌의 포문을 연 이름은 누구였을까요? 그 첫 장면을 맡은 인물은 야체크 글레바입니다. 이번 런던 패션 위크에서 패션 이스트 무대에 다시 얼굴을 비춘 야체크는, 발레를 연상시키는 부드러운 색조와 힘을 뺀 드레이핑이 컬렉션의 분위기를 완성했습니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 재학 시절부터 이어온 무용과 신체 움직임에 관한 연구는 이번 시즌에도 긴장과 이완의 균형으로 드러났죠. 익숙한 테일러링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비율을 미묘하게 비트는 방식 역시 그의 시그니처라 할 수 있습니다.
고야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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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패션 이스트를 통해 성공적인 데뷔를 한 고야고마입니다. 에이셉 라키의 의상 작업과 피비 파일로 팀에서의 경력은 그의 디자인에 창의성과 절제의 균형을 더했습니다. 군더더기를 덜어낸 테일러링과 또렷한 실루엣은 단정하면서도 단단한 인상을 남겼는데요. 일상과 런웨이 사이 어딘가에 놓인 옷들은 과장되지 않았지만, 완성도는 분명했습니다. 특히 독특한 트렌치코트의 테일러링과 코트의 볼륨을 아래에서 한 번 잡아주며, 실루엣에 또 다른 방향성을 만들어냈죠. 이 밖에도 볼륨은 과감하게 부풀리고, 직선은 날카롭게 세우며, 완성보다 도전을 택해온 패션 이스트의 기질을 닮아 있습니다.
메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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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메이휴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판타지 속 르네상스 궁정에 들어선 듯한 경험을 선사했는데요. 모델들이 걸어 나온 런웨이는 빛바랜 유화 속 풍경을 연상시키는 색감과 질감으로 가득했습니다. 또한 룩과 매치한 페도라와 트라이콘햇, 서로 다른 길이와 소재를 겹겹이 쌓아 올린 레이어링은 보물을 찾아 나선 탐험가의 흔적처럼 느껴졌죠. 그의 실험적인 디자인 방식은 벽화·인테리어 장식 등 시각적 공간 작업을 했던 그의 독특한 경험 덕분에 완성되었다고 하는데요. 런웨이를 가득 채운 모든 디테일과 레이어링은 마치 판타지 속 궁정의 피날레를 보는 듯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쳇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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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이스트에서 이름을 알린 뒤, 화려하게 독립을 선언한 디자이너를 만나볼까요? 바로 이번 2026 가을 겨울 시즌, 자신의 이름으로 첫 단독 쇼를 펼친 쳇 로입니다. 네온 불빛과 상점의 풍경, 활기찬 에너지가 살아 있는 홍콩의 밤시장은 룩 하나하나의 디테일과 질감을 관객이 온전히 느끼게 만드는 공간이 되었는데요. 특히 관객이 직접 컬렉션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설계된 점에서도 주목받았죠. 시각장애인과 저시력 관객을 위한 터치 투어를 마련하고, 런웨이에서도 오디오 설명과 촉각적 요소를 결합함으로써 모두가 컬렉션의 결과 질감을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패션 이스트 시절부터 보여준 독창적인 소재에 대한 실험은 한층 성숙한 형태로 드러났죠. 촉각과 시각, 기억을 함께 나누며, 디자이너의 세계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컬렉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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