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헤드-136 자폭 드론 / Apichart Kamutchat 페이스북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이미 그 파괴력을 입증한 이란제 자폭 드론 '샤헤드-136'이 이번엔 페르시아만 일대를 전장으로 삼아 중동 전역을 불태우고 있다. 단돈 3만5000달러(약 5100만 원)짜리 드론 한 대가 수백만 달러짜리 요격 미사일을 소모시키는 이 비대칭 소모전은 미국과 동맹국들의 방공망을 빠르게 갉아먹으며 전쟁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2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샤헤드-136이 바레인,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의 건물들을 잇따라 강타했다. 바레인 수도 마나마의 고층 주거 건물을 타격하는 영상에서는 삼각형 형태의 드론이 건물 측면에 박히며 화염과 파편을 사방으로 날리는 장면이 포착됐다. 또 다른 영상에는 바레인 주재 미 해군기지 내 시설물을 타격하는 샤헤드의 모습도 담겼다. 두바이 주메이라 지구에서 촬영된 영상에는 1박 요금이 200달러에 달하는 고급 호텔 페어몬트 팜을 샤헤드가 강타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샤헤드-136은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산하 업체가 개발한 무인 자폭 드론이다. 최소 2021년부터 생산되기 시작했으며 이라크에서도 실전에 투입된 바 있다. 이란 혁명수비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 회사는 페르시아어로 '목격자'를 뜻하는 샤헤드 계열의 드론을 대량 생산해 왔다. 최고 속도 시속 185㎞로 비교적 느리지만 36~50㎏의 탄두를 탑재하고 최대 2500㎞까지 비행이 가능해 대규모 공격 시 방어망을 뚫고 상당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 드론 전쟁 전문가 세스 프랜츠먼은 "샤헤드 드론은 이란에 저렴한 공군형 무기 체계를 제공한다"며 "다른 무기에 비해 효율은 낮지만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가끔 고가의 방공 시스템을 피해 혼란과 공포를 확산할 수 있다"고 밝혔다.
더내셔널 등 매체에 따르면 이란은 UAE에 541기, 쿠웨이트에 283기, 카타르에 12기, 바레인에 9기의 드론을 발사했으며 요르단에도 수십 기를 쐈다. 블룸버그이코노믹스의 베카 바서 국방 책임자는 "올해 충돌 시작 이후 이란이 1200발 이상의 발사체를 발사했으며 대부분이 샤헤드 드론으로 추정된다"며 "이는 더 파괴적인 탄도미사일은 지속적인 공격을 위해 아껴두고 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이 드론들을 막아내는 데 드는 비용이 문제다. 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요격 미사일은 1회 요격에 1200만 달러(약 175억 원)가 들고, 패트리엇 요격 미사일도 1발당 100만 달러(약 14억6000만 원)에 달한다. 3만5000달러짜리 드론 한 대를 잡기 위해 수십~수백 배의 비용을 쏟아붓는 셈이다. 영국은 이 같은 고비용 요격 미사일 소모를 줄이기 위해 우크라이나에서 경험을 쌓은 전문가들을 걸프 파트너 국가에 파견해 건물 옥상과 도심 외곽에 중기관총과 대공포(AAA)를 배치하는 우크라이나식 방어 전술을 구축하도록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샤헤드 격추를 위한 최선의 방어 수단으로 라팔, F-16, 영국 타이푼 등 전투기와 대공포, 전파 재머를 결합한 '통합 방공' 체계를 꼽는다. 전투기는 첨단 레이더로 대규모 드론 편대를 추적한 뒤 27㎜ 기관포나 공대공 미사일로 격추할 수 있으며, 최후 수단으로는 제트 후류를 이용해 드론을 떨어뜨리는 전술도 쓸 수 있다. 항공 전력 전문가 팀 리플리는 "샤헤드는 직선으로 매우 느리게 날고 회피 기동을 하지 않는다"며 "관건은 드론을 조기에 발견해 도심에서 충분히 떨어진 곳에서 교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란의 드론 생산 능력이 방어망 구축 속도를 앞지르고 있다는 점이 우려를 키운다. 더내셔널에 따르면 이란은 현재 매주 수백 기의 샤헤드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군사 전문가 프랜시스 투사는 "숙련된 기술자 한 명이 필요한 부품을 모두 갖춘 상태에서 이상적인 조건이라면 10시간 교대 근무에 드론 12기를 조립할 수 있다"며 "샤헤드의 장점은 싸고 단순하다는 것이다. 차고에서도 만들 수 있으니 비싼 공장이 필요 없다. 모터는 단순하고, 항법 시스템은 아마 작은 회로 기판 하나일 것이며, 가장 복잡한 부품은 탄두인데 그마저도 그리 복잡하지 않다"고 말했다. 샤헤드 발사대도 10기 단위로 편성돼 이란 전역의 지하 주차장, 차고, 숲속 빈터 등에 분산 배치돼 있어 사전 탐지가 어렵다.
블룸버그가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사용 속도를 유지할 경우 카타르가 보유한 패트리엇 요격 미사일 재고는 나흘 치에 불과하다. 카타르 정부는 물밑에서 조속한 종전을 촉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중동 동맹국들이 의존하는 록히드마틴의 패트리엇 방공 시스템(PAC-3) 생산량은 지난해 약 600기에 불과했는데, 개전 이후 중동에서 이미 수천 발의 요격 미사일이 발사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란의 공세가 현재 강도로 유지될 경우 며칠 내로 중동 내 PAC-3 재고가 위험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다만 방어 측면에서 이란은 대응 수단이 거의 바닥난 상태다. 전쟁 발발 직후 러시아제 S-300을 포함한 지대공 방어망이 파괴되면서 미군과 이스라엘 전투기들은 아무런 제약 없이 이란 영공을 넘나들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지난 6월 이후 공습을 통해 이란의 탄도미사일 발사대 약 200기를 파괴하고 수십 기를 불능화했다고 밝혔다. 이는 이란이 보유한 발사대의 약 절반에 해당한다.
한편 미 중부사령부(CENTCOM)는 이란이 개발한 자폭 드론을 역설계해 만든 미군 버전 드론 'LUCAS'를 이번 이란 작전에 처음 투입했다고 밝혔다. 애리조나 소재 업체 스펙트레웍스가 역설계한 이 드론을 실전에 처음 배치했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안킷 판다 선임연구원은 "결국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 재고는 고갈되겠지만, 이란 정권 자체는 혼란 속에서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며 전쟁 결과가 어떻게 판정될지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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