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손성은 기자] 자사주 소각이 기업의 자율 선택을 넘어 법적 의무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지난 25일 국회를 통과한 ‘제3차 상법 개정안’은 기업이 취득한 자사주를 원칙적으로 1년 이내에 소각하도록 규정했다. 그간 경영권 방어 수단 등으로 활용되며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됐던 자사주 처리에 엄격한 제도적 잣대다.
이미 총주주환원율 50% 시대를 연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는 이번 변화를 기점으로 ‘밸류업 2막’에 진입하고 있다. 1막이 파격적인 환원율 확대를 통한 ‘양적 성장’이었다면, 2막은 경기 둔화와 금리 변동성 속에서도 정책을 유지할 수 있는 ‘자본 관리의 신뢰’가 핵심이다.
◇‘소유 분산’ 구조의 힘…자사주, ‘방패’ 대신 ‘가치 제고’ 도구로
4대 금융지주는 특정 대주주가 없는 대표적인 ‘소유 분산’ 기업이다. 외국인과 기관투자가의 비중이 압도적인 구조상, 자사주를 활용해 지배력을 인위적으로 조정하거나 경영권을 방어할 유인이 낮다.
실제 이들은 자사주를 경영권 수단이 아닌 ‘초과 자본 환원’의 핵심 도구로 활용해 왔다. 매입 후 장기 보유하며 시장을 기망하기보다, 즉각적인 소각을 통해 주당순이익(EPS)을 높이는 선진국형 방식을 채택했다.
이번 상법 개정은 4대 금융에 오히려 ‘호재’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기존의 소각 중심 정책이 법적 정당성을 얻으며 자본 배분의 예측 가능성이 극대화됐기 때문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외국인 지분율이 높은 특성상 환원 정책의 일관성은 기업 가치와 직결된다”며 “제도적 뒷받침이 밸류업의 가속 페달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적·자본’ 쌍끌이 행진…환원율 50% 고지 점령
밸류업 1막의 성공은 압도적인 실적과 견고한 자본 체력이 뒷받침했다. 지난해 KB금융은 전년 대비 15.1% 증가한 5조 8,430억 원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리딩뱅크의 위상을 공고히 했고, 신한금융(4조9716억원)과 하나금융(4조29억원) 역시 성장세가 견조하다. 우리금융 또한 3조1413억원의 순이익을 거두며 힘을 보탰다.
이러한 이익 체력은 파격적인 주주환원으로 이어졌다. KB금융의 총주주환원율은 52.4%로 올라섰고 신한금융 역시 50.2%를 기록하며 ‘환원율 50% 시대’를 열었다. 하나금융(46.8%)과 우리금융(36.6%)도 자본 확충과 환원 사이의 균형점을 찾으며 추격 중이다.
특히 자산 건전성을 나타내는 보통주자본비율(CET1)을 13% 내외에서의 안정적 관리가 주효했다. 그 결과 KB금융은 국내 금융지주 최초로 PBR(주가순자산비율) 1배 돌파라는 상징적 기록을 세웠으며, 신한(0.80배), 하나(0.75배), 우리(0.76배) 등도 과거 0.4배대의 극심한 저평가 국면을 완전히 벗어났다.
◇2막의 키워드는 ‘유지’…“속도보다 방향이 중요”
시장 전문가들은 이제 ‘더 많이, 더 빨리’라는 양적 경쟁을 경계한다. 금리 인하 국면 진입으로 순이자마진(NIM) 축소가 예상되는 가운데, 실적 변동성에도 불구하고 환원 기조를 지켜낼 수 있느냐가 진정한 시험대라는 뜻이다.
최정욱 하나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4분기 CET1 비율이 기대보다 안정적으로 관리되면서 자본 비율 하락 압력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상당 부분 완화됐다. 이제는 환원 정책의 ‘지속성’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는 단계”라고 말했다.
만약 향후 대손비용 확대 등 위기 상황에서 환원율이 후퇴한다면, 이번 밸류업 열풍은 단순한 ‘사이클 효과’에 그칠 수도 있다. 반대로 어떤 환경에서도 환원율 50% 수준을 수성한다면, 한국 금융주는 '저성장 고배당'의 구조적 체질 개선 모델로 완전히 탈바꿈하게 된다.
결국 밸류업 2막의 승부처는 숫자가 아닌 ‘신뢰’에 있다. 시장의 평가는 이미 시작됐으며, 4대 금융이 보여줄 정책 일관성이 곧 K금융의 새로운 몸값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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