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노 어더 랜드'를 외치는가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그들은 왜 '노 어더 랜드'를 외치는가

엘르 2026-03-03 01:03:39 신고

전쟁의 가장 큰 비극은 싸움을 원치 않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사실이다. 말 한 마디로 전쟁을 결정하는 위정자들에게는 적의 타깃이 되는 정도가 최대 리스크다. 전쟁을 원하는 사람들은 위정자로부터 권력을 이양받는다. 숱한 이들의 삶과 터전을 빼앗아 갈 그 권력 말이다. 장편 다큐멘터리 〈노 어더 랜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희생양이 된 한 마을의 비폭력 투쟁으로 이 현재진행형 비극을 폭로한다.


영화 〈노 어더 랜드〉

영화 〈노 어더 랜드〉


영화의 배경은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마사페르 야타 지역 20개 마을이다. 여기 사는 청년 활동가 바젤 아드라의 첫 기억은 다섯 살 때 이스라엘 군대에게 체포되던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는 활동가 출신 아버지를 따라 시위를 하고, 마을에서 벌어지는 모든 참상을 카메라로 기록해 왔다. 이들이 대를 이어 활동가가 된 건 이스라엘의 억압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은 1948년 제1차 중동전쟁부터 1993년 오슬로 협정을 거치며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만 남은 상황. 바꿔 말하면 이스라엘에게는 이 두 곳만 점령하면 세계 지도에서 팔레스타인을 없앨 수 있는 것이다.


영화 〈노 어더 랜드〉

영화 〈노 어더 랜드〉


이스라엘과 아랍권 국가들의 지난하고 지독한 싸움이 이어지는 한편에선 마사페르 야타의 건물들이 참혹하게 붕괴되고 있었다. 무장한 이스라엘 군대는 총 한 자루 없는 주민들의 집을 중장비로 뭉갠다. 표면적 목적은 군사훈련장 설립을 위한 민간인 거주지 철거. 그러나 모두가 아랍 마을 확장을 막으려는 이스라엘의 속내를 알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부서진 집 위로 몰래 집을 짓고, 또 부서지면 동굴에 들어가서 터전을 지킨다. 이를 바젤과 함께 기록하는 건 이스라엘 기자 유발 아브라함이다. 또래인 바젤과 유발은 금세 가까워지고, 출신국을 넘어선 우정을 나눈다.


하지만 바젤이 찍어 올리는 영상도, 유발의 기사도 큰 관심을 받지 못한다. 매일 집과 학교가 부서지고 마을의 누군가가가 끌려가는 가운데 적은 관심은 유발의 의욕을 꺾는다. 그런 유발의 좌절을 눈치챈 바젤은 말한다. "실패에 익숙해지고, 패자가 돼야 해." 그저 군대의 폭력을 기록해 세계로 발신하고, 군대 앞에서 시위를 할 뿐인 비폭력 투쟁이 단숨에 세상을 바꿀 리 없다. 뺏긴 나라를 찾아오고, 군부 독재로부터 민주주의를 지켰던 한국의 시민들도 그런 인내심으로 움직였을 지 모른다.


영화 〈노 어더 랜드〉

영화 〈노 어더 랜드〉


불도저를 끌고 온 군대의 총구 앞에서도 맨손으로 항의하던 주민들이 마을에서 점차 사라지기 시작한 건 이스라엘 정착민의 총에 맞은 사람이 나온 후다. 첫 번째 총격은 군인이었지만, 두 번째는 팔레스타인인을 쫓아낸 자리에 들어온 이스라엘 정착민 자경단의 총이 피해자를 냈다. 바젤과 유발의 기록이 유의미한 관심을 받았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론에 주춤했던 군대는 더 강한 억압으로 대응했다. 이스라엘 땅에서는 팔레스타인 번호판이 달린 차를 못 타게 하고, 마을의 우물을 시멘트로 메웠으며, 전기 발전기를 탈취했다. 시위를 주도한 바젤의 아버지를 체포하기도 했다. 패자를 자처한 바젤의 뭉근한 열정조차 식어버리려는 시점에서 기록은 멈춘다.


마을 사람들이 베르셰바의 임대 아파트로 이사가는 대신 "다른 땅은 없다(NO OTHER LAND)"며 군대에 맞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들이 지키려던 건 나라가 아니라 삶이다. 또 선조와 나, 후손을 잇는 뿌리이자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터전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싸우거나 말거나 자유롭게 스스로의 힘으로 설 수 있는 그저 한 뼘의 땅 때문에 목숨을 건다. 영화는 군사법에 억압받는 바젤과 일반법 체계 아래 자유로운 유발의 대비로 처절한 투쟁을 전한다. 그러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살상을 주고 받는 현실의 한 단면엔 오로지 자유를 갈급하는 팔레스타인의 한 마을이 있었음을 외친다. 바젤의 카메라는 멈췄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기록들, 〈노 어더 랜드〉는 지난해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4일 개봉.


관련기사

Copyright ⓒ 엘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